MB정부 출범 후 금융감독기관장 면면을 살펴보며...

 이명박 정부들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수난의 연속이었다. 금융위원장만 전광우 진동수 김석동에 이르기까지 두번이나 바뀌었다. 금융위원장 임기가 3년으로 보장돼 있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금융감독원장 자리는 정권 핵심 지역인 TK(대구 경북) 출신이 연이어 맡아서인지 임기를 남겨두고 처참하게 중도퇴진당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들 역시 부실 저축은행 구조조정 문제(김종창), 나응찬 실명제 조사 지연(김종창) 금융위원회와의 갈등(권혁세) 문제 등으로 여러 구설에 시달려야 했다. 혹자에 대해선 자질 시비가 일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초대 금융위원장을 맡았던 전광우씨는 첫 민간인 출신 금융위원장이라는 점에서 적지않은 기대를 받았었다. 모피아 출신이 아니라는 점만 빼면 그의 경력은 화려했다. 세계은행 수석연구원에다 국제금융센터 원장, 우리금융지주 부회장을 거친 재원이었다. 그러나 그는 오래가지 못햇다. 2008년 금융위원장에 취임해 2009년 옷을 벗었다.
 
이명박 정권 초기 전광우 위원장이 해야 할 일은 아주 크고 중차대했다. 리먼 사태로 글로벌 위기가 닥쳐오면서 한국 경제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또 한 차례 커다란 위기를 맞고 있었다. 긴급히 손대야 할 부실 상호저축은행이 속출했다. 세계적인 부동산 경기 불황으로 건설회사들이 여기저기서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한계에 다다른 부실기업도 속출했다. 그러나 구조조정은 순탄치 못했다. 당시 김종창 금융감독원장과 호흡을 맞춰 부실기업을 솎아내고 부실저축은행을 퇴출시켜야 했지만 전광우-김종창 배터리는 만족스런 결과는 내놓지 못했다.
 
2009년 금융위원장이 모피아출신으로 바뀌었다. 진동수 수출입은행장이 금융위원장으로 바통을 이어받았다. 영남 정권이 호남(전북) 출신인 진 행장을 금융 위원장에 앉힌 것은 파격이었다. 모피아 출신이기에 가능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그러나 그 또한 오래가지 못했다. 2010년까지 2년도 채우지 못하고 김석동 전 기획재정부 차관에게 자리를 넘겨줘야 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 시절에도 금융감독원장엔 그의 모피아 선배인 김종창씨가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둘 사이가 썩 좋지는 않았던 걸로 전해진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청와대 주요 회의가 있을 때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을 대동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진동수 위원장이 오고 나서부터는 그런 모습을 보기가 힘들었다.
 
진동수 위원장도 부실저축은행 구조조정에는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자리를 떠야 했다. 훗날 나온 얘기로는 진동수 위원장 역시 저축은행 구조조정의 다급성을 알고 정권 핵심부에 공적자금을 투입해서라도 부실 저축은행을 솎아내자고 건의했던 걸로 전해진다. 그러나 일언지하 거절 당했고 그의 저축은행 구조조정 계획도 물거품이 됐다는 것이다.
 
2011년 부임한 김석동 위원장은 과감했다. 당시 금융권 최대 현안이었던 저축은행 구조조정에 당차게 손을 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반대가 있었지만 좌충우돌 했다. 구조조정 자금 마련이 여의치 않자 예금보험공사를 통한 재원마련에 나섰다. 수조원짜리 대형 부실저축은행이 가차없이 수술대에 오르기도 했다. 저축은행 부실에 연루됐던 검은 커넥션이 여기저기서 드러났다. 부실이 얼마나 심했던지 썩은 내가 진동했다. 전현직 실세와 부실 저축은행 오너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차고 들어갔다.
 
검찰도 비장했다. 당시 중수부 폐지론이 일던 차에 저축은행 수사를 잘 해서 만회라도 하려는 듯 매섭게 죄인들을 몰아쳤다. 금융감독당국 비리 연루자들도 속속 잡혀들어갔다. 감사원, 청와대 출신 비리연루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파장이 커질수록 김석동 위원장은 심각한 외압을 받는 것처럼 보였다. 부실 저축은행 퇴출 과정에 전정부와 현정부 인사들의 과오가 한꺼번에 노출됐기 때문이다. 부실저축은행 문제와 관련해 전정권의 실책이 부각될 땐 야당이 공격해 왔다. 현 정권 실세들의 부패고리가 드러날땐 현정부 실세들이 불평을 해왔다. 과거 잘못된 저축은행 정책을 폈던 현 정부 인사들도 비협조적이긴 마찬기지인 듯 했다. 김석동 위원장 또한 저축은행 추가 구조조정을 위해 공적자금 투입을 주장했으나 거절 당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더 이상 밀고 나가기가 어려워 대충 덮어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비관적인 얘기도 쏟아졌다.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세력이 많은 것 같다는 말도 새어 나왔다. 금융위가 나홀로 고군분투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처럼 보였다.
 
저축은행 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을 때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이 메가뱅크를 추진한다고 하자 일부 정치권 인사들은 김석동 위원장을 함께 공격하고 나섰다.
 
금융위원회의 상황이 편치 않아 보였다. 2010년5월20일로 기억된다. 필자는 이날 금융위 관계자와 저녁을 함께했다. 이 관계자는 “요즘처럼 위기감을 갖고 일한 적도 드물다”고 했다. 훗날 어떤 후환이 있을지 몰라 매일매일 일기를 쓴다고 했다.
 
그 즈음 김석동 위원장도 예전의 그가 아닌 듯 했다. 마음을 비웠다는 말을 자주 했다.
 
필자가 지난 5년간 재직했던 감독기관장들을 일일이 열거하며 과오나 성과를 거론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그들을 거울 삼아 잘못된 금융정책과 금융질서롤 바로 세워달라고 차기 정부에 요구하기 위해서다.
 
어쨌든 김석동 위원장 등이 추진했던 저축은행 구조조정은 아쉽지만 성과도 있었다. 부실저축은행을 완전히 정리하지는 못했지만 구조조정 과정에 얼마나 많은 부정과 부패가 도사리고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부패한 금융감독원 일부 직원이 부실 저축은행과 얼마나 결탁했는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감독원이 썩으면 금융기관이 얼마나 타락하는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청와대나 정권 전체의 도움없이 금융감독당국 혼자의 힘만으로 부실 금융기관이나 한계기업을 퇴출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모피아 출신중엔 일 잘하는 사람도 있고 일을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모피아가 아닌 민간 금융 전문가를 요직에 앉혀도 되는 일이 있고 안 되는 일이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분리해 놨더니 갈등만 더 커졌다는 사실도 경험할 수 있었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갖고 있어도 사람이 문제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모피아냐 모피아가 아니냐를 떠나 일 잘하고 카리스마 있는 인사를 금융감독기관장에 앉혀야 금융감독기관이 바로 선다는 결론도 얻을 수 있었다. 부실기업이나 부실 금융기관 구조조정은 한시도 미뤄선 안된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새정부를 향해 잘못된 금융 감독제도를 바로 잡아달라고 주문하는 것도 이같은 사실들 때문이다. 우리가 새정부를 향해 부실 기업 구조조정은 신속히 해달라고 주문하는 것도 이같은 경험들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금융감독기관장을 뽑을 땐 출신지역을 가리지 말고 무조건 능력있는 사람을 앉혀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