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근로시간 유연화를 위한 제도 개선방안 건의
"탄력‧선택근로제 단위기간 늘리고 절차 개선해야"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초이스경제 최원석 기자]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회장 허창수)는 15일 "경제의 디지털화, 코로나19 장기화 등으로 일하는 방식의 변화는 가속화되고 근로시간 유연화의 필요성이 증대되면서 과거 산업화 시대에 만들어진 낡은 근로시간 법제를 시대적 변화에 맞게 개선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며 "산업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합리적인 근로시간제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전경련은 이같은 내용의 '근로시간 유연화를 위한 제도 개선방안 건의서'를 마련해 이날 고용노동부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전경련에 따르면 근로시간 유연화를 위해 이번에 제시한 과제는 ▲탄력적‧선택적 근로시간제 개선, ▲특별연장근로 인가사유 확대, ▲고소득‧전문직 근로시간 규제 면제제도 도입, ▲재량근로시간제 개선, ▲근로시간계좌제 도입 등 총 5가지다.

전경련은 "산업구조의 디지털 전환 가속화, 코로나19 사태 장기화 등으로 재택근무, 시차출퇴근제 등 근로시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다양한 근무방식을 택하는 근로자들이 급증하고 있다"며 "지난해 재택‧원격근무를 하는 임금근로자 수는 114만명으로,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 9만5000명에 비해 12배(104만5000명 증가)나 높아졌다"고 전했다.

전경련은 또 "시차출퇴근제를 활용하는 임금근로자 수는 2019년 74만6000명에서 2021년 105만5000명으로, 2년 사이 41.4%(30만9000명) 늘었다"고 전했다.

전경련은 "현행 근로시간제도는 1950년대 집단적‧획일적 공장근로를 전제로 설계된 것으로, 현재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개별적이고 다양한 근로형태를 규율하기에는 부적합하다"고 전했다. 

전경련은 "한국의 근로시간제도는 주요 선진국들에 비해서도 경직적인 편"이라며 '한국은 연장근로시간을 1주 최대 12시간으로 제한한 반면, 미국은 근로시간의 제한이 없고 일본, 독일 등 주요국들은 월(月)‧년(年) 단위로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며 연장근로시간의 한도도 한국보다 폭넓게 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경련은 "근로시간의 제약으로 인해 실제 산업현장에서 여러 변수에 대응하는 데 애로를 겪는 경우가 많다"며 "이는 기업의 생산성을 저해하고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근로시간제도의 혁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전경련은 "주 52시간 근로시간 제한(2018년7월) 이후 탄력적‧선택적 근로시간제 활용의 필요성이 높아졌지만, 단위기간이 짧고 도입절차가 까다로워 실제 산업현장의 불규칙한 업무환경에서 기업들이 적시 활용하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전경련은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업무량이 많은 기간의 근로시간을 늘리는 대신, 업무량이 적은 기간의 근로시간을 줄여 평균 근로시간을 주 40시간에 맞추는 제도"라며 "우리나라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이 최대 6개월인데, 이는 주요 선진국들에 비해 짧은 수준인 만큼 단위기간을 최대 1년으로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활용률을 보면, 한국은 2021년 기준 4.6%로, 미국(생산직, 31.3%, 관리직, 73.9%), 일본(48.9%), 영국(13.1%) 등 주요국에 비해 저조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경련은 전했다. 

전경련은 "정산기간의 총 근로시간 범위 내에서 근로자가 자유로이 근로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경우, 최대 정산기간은 1개월이고 연구개발 업무에 한해 3개월로 제한하고 있다"면서 "이에 대해 전경련은 수개월 이상 중장기 프로젝트가 많고 과업예측이 어려운 IT‧SW, 바이오‧제약 등의 업종들은 짧은 정산기간으로 활용하기 곤란한 만큼 정산기간을 최대 1년으로 연장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전경련은 이어 "탄력적‧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하려면 과반수 노조 등 전체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가 필요하다"며 "대상 업무와 무관한 근로자들의 반대가 있을 경우 제도 도입이 지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직무‧부서단위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로 도입할 수 있도록 절차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전경련은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해외 원자재 수급 차질 등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기업 생존을 위해 집중적인 연장근로가 필요한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특별연장근로의 인가사유 범위가 협소하고, 도입 시 고용부장관의 인가와 근로자의 동의가 필요하여 급박한 사정 발생 시 실효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전경련은 ▲신기술‧신상품의 연구개발을 하거나, ▲경영상 사정 또는 업무 특성상 연장근로가 필요한 경우에도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경련은 "R&D, SW개발 등 비정형화된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전문직무의 경우, 근로시간의 측정 자체가 어렵고 근로시간과 성과가 비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면서 "일정 소득 수준 이상의 고소득 전문직의 경우, 주 52시간제, 초과근로 가산임금 지급 등 근로시간제도를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생산성을 저해하고 업무 비효율을 초래하는 등 부적절한 것으로 평가되는 만큼 근로시간 규제 적용을 제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미국과 일본 등 주요국들은 고소득 전문직을 대상으로 근로시간 규제를 배제하여 성과 중심 평가‧보상체계를 구축한 바 있다고 전경련은 전했다.

전경련은 "산업의 분업화‧고도화 및 근로형태의 개별화‧다양화로 재량근로시간제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대상 업무는 한정적이고 도입절차는 경직적이어서 활용에 제약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현행 재량근로시간제의 대상 업무는 연구개발, 정보처리시스템 설계, 방송‧디자인 창작 업무 등 전문 업무에 한정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와 노동법 체계가 비슷한 일본의 경우, 노동환경 변화에 맞추어 전문 업무 외에도 사업운영에 관한 기획‧분석‧홍보 등의 업무까지 대상 범위를 확대한 바 있다고 전했다.

전경련은 "우리나라도 일본과 같이 재량근로시간제 대상 업무의 범위를 기획, 분석, 홍보 등의 업무까지 확대하여 근로시간의 자율성을 폭넓게 보장할 필요가 있다"면서 "아울러 도입요건인 '전체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를 '직무 또는 부서 단위의 서면합의'로 개선하여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경련은 이외에도 현행 경직적인 근로시간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또 다른 방안으로 독일의 근로시간계좌제 도입을 제시한다고 했다. 근로시간계좌제란 업무량이 많을 때 초과근무를 하고 초과근로시간을 저축한 후 업무량이 적을 때 휴가 등으로 소진하는 방법으로 근로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제도라는 게 전경련의 설명이다. 아울러 독일의 경우, 250인 이상 사업장 가운데 1년 이상 단위의 장기 근로시간계좌제 도입 비중이 2016년 기준 약 81%에 달할 정도로 활성화되어 있는 것으로 조사된 만큼 독일의 사례를 참고하여 우리나라도 근로자가 자신의 생애주기를 고려하여 돌봄, 교육, 치료 등 필요에 따라 자율적으로 근로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전경련은 주장했다.

추광호 경제본부장은 "앞으로 근로시간의 자율성이 요구되는 근로형태의 다변화와 일‧가정의 양립 수요 확대 등 근로시간 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은 증대될 것"이라며 "근로시간의 유연화를 통해 다양한 근로형태의 근로자들이 상황에 맞게 근무하고 기업들이 산업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합리적인 근로시간제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