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증권 고객센터 직원들이 전하는 문의고객 천태만상

 어느 한가로운 오후에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키움증권 ooo입니다"

"여보세요... 계좌를 만들어볼까 하는데요"

중년 남자의 목소리였다. 나는 밝은 목소리로, "네, 고객님 키움증권은 온라인 전용 증권사이기 때문에 가까운 은행에서 계좌 개설이 가능합니다.~"

"……. 음…… 제가 지금 교도소에 있어서요…"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방금 뭐라고 한거지? 점심시간이라 나른했던 오후, 전화받기 전까지 연신 하품만 하던 나는 커피를 마시다가 하마터면 책상에 다 쏟을 뻔 했다.

흠칫 놀란 나와 말없는 고객사이에 짧은 침묵이 흘렀고, 그제서야 나는 당황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다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께서 방문하시면 계좌개설은 가능하지만 인터넷이나 유선으로는 개설이 어렵다고 말했더니, "가족들한테는 부탁하기 힘들고 아가씨가 대신 만들어봐요. 내가 지금 돈이 얼마 없긴한데, 심심해서 주식거래라도 해볼까해서 전화한거예요"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나도 "고객님 말씀은 이해합니다만, 현재로선 도와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하고 정중히 거절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가씨! 컴퓨터하고 있죠? 내가 이름이랑 주민번호 불러줄게요. 이름은 OOO이고..."

하지만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었다. 그 고객의 거듭된 부탁에 나는 "고객의 정보를 내 임의대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도와드릴 수가 없군요", 그렇게 말씀드리고는 "주변에 부탁할 사람이 없느냐"고 재차 물었다.

"지금 이 안에 있어서 대화할 사람도 없고 친구도 없고 외롭다니까,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아요? 이해할 수 있어요?"

고객은 오랜만에 듣는 나긋나긋한 사람목소리에 계속 통화하고 싶어했지만 증권업무에 불필요한 내용이 길어지면서, 나는 이만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저기요!! 내가 오죽하면 전화했겠어요? 그냥 내 말 좀 들어봐요~"

내 얼굴은 어느새 빨간 홍당무가 되어있었다. 통화상이지만 왠지모를 당혹감때문에 심장은 빨리 뛰고 있었고 도대체 왜 나한테 전화가 연결되었을까. 야한 농담이라도 하면 단번에 끊을 수 있는 핑계거리라도 있으련만 이 걸걸한 목소리의 아저씨는 도대체 끊을 마음이 전혀 없는 듯 했다.

"아~네 고객님..."

어쩔 수 없이 통화는 이어졌고 고객은 자신이 왜 교도소에 들어왔는지부터 사연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여자가 있었는데, 얼굴도 눈이 쌓인 것처럼 뽀얗고 새하얀게 참 착하고 이뻤는데 말이지... 나를 쳐다도 안보는거야 ... 휴"

짧은 한숨과 함께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물론 대화상대가 필요할 고객의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자꾸 다른 업무가 지체되는 것이 염려되었다.

"여보세요! 듣고있어요 지금?"

"잘듣고 있다"고 말하자, 고객은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연애상담을 시작했다.

"아가씨 근데 몇살이예요? 결혼했나? 내가 좋아하는 그 여자랑 목소리가 비슷한데? 편지에 뭐라고 써야 여자들이 좋아하려나? 좋은 말좀 추천해줘봐"

고객에게 개인정보사항은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는 갑자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니 뭐 그렇게 대단해? 왜 이렇게 불친절해? 다른 직원들도 다 그런가? 나 참 무서워서 뭐 물어보겠어? 내가 교도소에 있다고 무시하는거야 뭐야?"

아니라고 누차 말씀드려도 소용없었다. 개인정보를 알려드려야 친절하다고 느끼는걸까? 정말 난감했다.

"알았어요. 내가 좀 있으면 나간다이거야. 내가 공부해서 주식으로 돈 벌면 선물 딱사고 편지 멋있게 써서 그여자한테 다시 고백하려고 그래. 아가씨 근데 이름이 뭐야? 키움증권 거기 어디에 있는거야? 내가 나간다... "는 말과 함께 전화상태가 상당히 불안정해졌고 나는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며 전화를 끊었다.

비록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고객이었고, 교도소라는 말에 나도모르게 당황해 좀 더 마음써주지 못한 걸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부디 차가운 교도소 안에서 전화했던 그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진실한 마음이 전해져 더이상 외로울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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