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피적인 현상을 뛰어넘는 지도층의 심도 있는 시각이 절실하다

▲ 사진 출처=뉴시스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뻔한 소리 말고 깊이 있는 시각을 내주는 지도층 인사와 엘리트가 절실하다.

일본이 지난달 사상 최초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자 증권가에서는 한국은행에도 상응하는 행동을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만약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면 증권업계는 득이 되면 됐지 손해날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확실히 그렇다. 물론, 특정 업종의 이해관계에서 금리 인하 주장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또 하나 함정이 있다. 4월 총선이다.

정부가 발 빠르게 이런저런 부양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이런 일들을 전혀 정치와 무관하게 해석하기도 어려운 시점이다. 물론 정책에는 때가 중요하다. 교과서의 원론이 아니라 현실을 풀어나가는 것이 정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가 때인 만큼, 장기적 충정과는 전혀 무관한, 오로지 표만 생각한 단기 부양몰이가 섞이지는 않을지. 당연히 의심할 수밖에 없는 때다.

이 모든 표피적인 것들을 뛰어넘어 좀 더 크게 내다보는 전문가는 없을까.

지금 미국이 통화정책의 긴축 기조로 돌아서는 것은 분명하다. 올해 여러 가지 상황변화로 인상 속도에 가감이 있을 뿐, 긴축 기조 자체는 당분간 유지될 것이다.

과거 사례에서 보면, 한번 시작한 긴축은 2~3년 지속된다. 이번 긴축 단계에서는 몇 차례나 금리 인상이 있을지 모르지만, 분명한 건 미국은 지금 밖에 나가 놀고 있던 돈들을 집으로 불러들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나가있는 돈을 불러들이면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유독 한국만은 떠나지 말라고 잡아둘 수단도 없다.

한국은 1990년대 후반 미국의 긴축 과정에서 외환위기를 겪은 교훈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 일본은 국내의 자금이 오히려 해외로 나가도록 유도하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의 의미는 이리저리 고쳐 생각해도 그렇게밖에 해석이 되지 않는다.

일본 돈이 해외로 나간다해도 갈 때가 그리 마땅치 않은 지금, 우리가 그렇게 바란 것은 아니지만 한국을 새로운 투자처로 여길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이런 국제적 금융 현상을 좁게 보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살만 국왕이 초래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초 90세로 서거한 이복형 압둘라 국왕의 후계자로, 그는 79세 즉위 첫해 동안 정치경제적인 패권적 행동을 지속했다.

예멘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벌이고 있고 석유시장에서는 미국의 셰일산업을 묶어버리는 대량생산 저유가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 그 결과로, 사우디아라비아 자체의 재정도 크게 악화됐지만 전세계적으로 저물가 현상이 극심해졌다.

물가가 너무 오르지 않으면 경제주체들은 지금 해야 할 행동을 뒤로 미룬다는 점에서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0%대 물가를 올리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근시적인 접근이다. 예전 같으면 유가가 낮아져 절약한 돈을 생산성 높은 곳으로 집중할 수 있었다. 1980년대 한국 경제가 누린 3저 효과 중의 하나가 저유가다.

근본적으로 지금 세계 경제는 생산성의 활로를 못 찾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사우디 국왕이 저물가를 고집한들, 에너지 수요가 가득하다면 미국 셰일 산업들이 문을 닫을 이유가 없다.

지금은 인류가 뭔가 뾰족한 새로운 장사를 할 것이 없는 상태다. 앞으로 어떤 기술 진보가 이뤄질지는 모르나 지금 단계에서는 경제의 차원을 바꿔줄 만한 기술 혁신이 모두 반영돼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저성장, 저물가는 당연하다. 이걸 억지로 띄우려고 할 때 거품을 조장하게 된다.

하지만 한국에서 저물가는 약간 차원이 다르다.

서민들은 저물가라는 얘기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당장 매달의 가계부에서 뜻밖에 덩치가 커지는 지출항목은 계속 등장한다. 물가지표 편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에 공개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록에서도 이런 논의가 심도 있게 진행됐다.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집세가 물가지표에서 비중이 크게 축소돼 있다는 것이다.

그런 서민들한테 대고 물가를 띄워야겠으니 부동산 거품도 좀 내야겠다고 하면 수긍할 리가 없다.

일본과 비교해 한국만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도 있다. 가계부채다.

가계부채가 막중하다는 건 어제오늘 얘기도 아니지만, 서민이 대출 늘려 어디다 썼느냐가 더욱 심각한 얘기다. 한국의 가계대출은 더 좋은 집 사기 위한 것보다도 생계형 대출이라는 것이다.

금리를 낮춰서 이를 더욱 조장하는 것도 심각한 죄악이지만, 이 상황에서 대출을 줄이겠다고 금리를 올린다면 서민의 생존권까지 위협할 수 있는 진퇴양난이다.

최근 3년 동안 경제에서 ‘창조’가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지만, 지금처럼 기존의 분석틀을 뛰어넘는 창의적 시각이 절실한 때가 없다.

한국의 5000년 역사에서 경제 지표 편제가 안돼서 그렇지, 인플레-디플레가 무수히 교차했을 것이다. 그런 속에서도 이 터전을 지켜서 오늘에 이르고 있는 민족이다.

그래도 돈은 세계적으로 돌고 돈다. 미국 돈이 떠나려고 하니 일본 돈이 찾아올 조짐도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무턱대고 성장률만 높이려 하지 말고, 올해 초 같은 극심한 불안정의 시기에 어떻게 하면 자손대대로 농사지을 땅은 지켜내는가 근본을 중시하는 것도 필요하다.

신제품 만들 기술도 없는데 서민들 씀씀이만 부추긴다면, TV에서 외국계 대부업체 광고만 하루 종일 쏟아져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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