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한국에 와 있는 외국 사람들이 한국인들에 대해 갖는 불만은 배려 부족이다. 일단 알기만 하면 참 호의적이고 친절한데, 공공장소에서 자기 혼자만 있는 듯 행동하는 사람이 많고 모르는 사람끼리 시선이 마주치면 절대 웃는 법 없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지나간다.

많은 외국인들이 이런 불만을 갖고 있으니 틀린 얘기는 아닐 것이다.

말을 아끼고 있어서 그렇지, 계속 이런 쪽으로 얘기를 붙여보면 한국인들의 배려부족은 외국인들에게 미스테리 수준이다. 이러면서 어떻게 오랜 세월 국가라는 커다란 공동체를 지켜왔는지 이해가 안 가는 것이다.

이 사람들이 이 미스테리에 답을 찾는 실마리를 본 것이 12일 100만 명 시위의 뒷모습이다.

시위대라면 의례히 거리를 부수고 난동을 일으켜야 마땅할 텐데, 오히려 청소를 하다니…. 이 또한 이 사람들의 상식에 벗어났다. 말하자면, 평상시 상식적 배려를 안 하는 사람들이지만 비상 상황에서는 상식을 경이로울 정도로 초월하는 면모를 또 갖추고 있는 것이다.

▲ 1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였던 12일 시위가 끝난 후 남아있는 시민들이 광화문 도로를 청소하고 있다. /사진=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혹자는 “외국인들이 무슨 호평을 그리 많이 했느냐”는 반론도 제기한다. 호평을 안했을지는 몰라도 최소한 매우 기이하게 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페이스북 곳곳에는 12일 심야 세종로가 정돈된 사진을 두고 “여기는 어디?” “무슨 시위?”라는 댓글이 붙는다.

현재 세계인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당선 반대 시위다. 이들에게 자세하게 광화문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있는 것은 서울에 와 있는 친구들이다.

한국과 축구로 악연(?)이 깊은 이란의 한 사람은 “저 사람들은 축구 경기가 끝나도 원래 저런다”는 의견을 남기고 있다.

미국의 한 사람은 최근의 트럼프 반대 시위와 12일 광화문을 비교하며 “미국은 왜 동맹국을 닮지 못하나”라는 의견을 달았다.

시위란 말 자체는 위력을 과시한다는 뜻이니, 다수 군중이 이성을 잃고 다 때려 부숴야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것 같은데 서울에서는 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순한 모습으로 시민들이 무슨 소원을 성취하느냐고 불평하는 강골분자도 있기는 하다.

그런데 한국의 시민사회는 이런 단순상식을 초월해야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한 차례 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시위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1997년 외환위기 직후의 ‘금 모으기 운동’이다.

국가의 빚을 국민들이 대신 갚아주겠다고 장롱 속 돌반지도 꺼내 모았다. 외국의 경제전문가들은 이런 행동이 오히려 금 시세에 영향을 줘서 역효과를 낼 것이라고 지적했었다.

금 모으기 때문에 금 시세에 따른 손해를 봤는지는 모르지만, 이 운동은 국가부도의 위기를 헤쳐 나오는데 큰 힘이 됐다.

단순히 시장의 상식을 벗어난 더 큰 원리가 작용했던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문제를 일으킬 때나 문제를 해결할 때나 상식의 경계를 전혀 구애받지 않고 넘나들고 있다.

지난 주말에도, 경복궁에서 청와대로 다섯 걸음, 열 걸음을 더 걸어 들어가려는 시위대의 본능보다 광화문 큰 길을 싹 정리하는 선택을 했다. 이런 상식의 전환이 오히려 더 큰 국민의 자취로 남게 됐다.

‘IMF 위기’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역시 정답은 ‘국민의 이름으로’가 되고 있다.

다만 하나, 차이가 있다면 ‘IMF 위기’때의 금 모으기는 이를 주도하고 기획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보였다.

지금은 백만 명이 모여도 쓰레기 하나 남기지 않는 이런 국민들을 제대로 등에 업은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

정치인들에게 일반 국민을 크게 뛰어넘는 심성을 가지란 기대는 버린 지 오래다. 다만 그 계통에서 밥 먹고 살아온 세월이 수십 년이면 정치공학적 기술을 발휘해서 국민의 열망을 잘 엮어보라는 것인데, 그런 기술마저 없고 간혹 저 혼자 튀어보겠다는 ‘툭튀’들만 자꾸 출몰하고 있다.

수준 높은 시민의식을 보여준 국민들이 만약 좌절하게 된다면, 그 다음 한국사회는 어떤 파국을 맞게 될 것인지 상상하기도 괴롭다.

물론, 5000년 역사의 경험을 가진 나라니 이번에도 시대가 호명하는 인물이 등장할 것으로 믿는다. 한국이 미국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무수한 시스템의 실패에도 생존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지금 그걸 처음 겪는 모양인데, 한국은 국가 지도자의 실패만 해도 여러 번 경험해 봤다.

상고시대에는 비가 안 온다고 부족장을 제물로 삼아 제사도 지내보고, 수 백 년 주기로 왕좌에서 쫓아내 멀리 외딴 섬에 가두기도 해 봤다.

쫓아내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제대로 된 사람으로 채우는 것이란 교훈을 여러 차례 경험했고 그것이 역사의 교훈으로 유전화됐다.

거리를 말끔히 청소한 것은 국민들이 보여준 잠재력의 극히 일부 겉모습이다. 이 저력은 곧 시대에 부응하는 카리스마 창출로 이어질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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