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서 배우는 경영통찰력(시리즈 6)...볼보 광고가 주는 교훈

▲ 김병희 교수

[외부기고=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우리나라 경영자들은 사진이나 광고에서 상품의 좋은 면모만을 보여주려는 경향이 강하다. 자동차 광고만 봐도 멋진 모델이 등장해서 자동차 운전을 하는 장면이나 자동차의 멋진 외관을 보여주는 데 치중한다. 물론 이런 성향이 모두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필요에 따라 상품의 손상된 장면을 보여주면서도 상품의 특성을 얼마든지 부각시킬 방법은 많다. 그런데도 부정적인 이미지를 제시하면 소비자들이 상품의 부정적인 인상만 기억하게 된다며 상품을 훼손한 사진이나 광고 이미지를 일체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경영자들이 뜻밖에도 많다.

긍정적 접근 방법이 최상이라는 고정관념을 갖는 경영자가 많은데 그런 판단이 늘 옳지만은 않다. 부정적 접근 방법(negative approach)으로도 얼마든지 놀라운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세상에 100퍼센트 완전한 상품이란 없다. 상품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언제 어디에서나 하자가 튀어나올 수 있고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소비자 손에 쥐어진 상품의 운명은 원래 그런 것.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덩샤오핑(鄧小平)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처럼 상품의 특성을 부각시킬 수 있다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접근방법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볼보(Volvo) 자동차 광고에서 그 근거를 살펴보자.

 

▲ 볼보 광고 /사진=김병희 교수 제공

 

볼보 북아메리카 지사의 광고 ‘찌그러진 자동차’ 편(1989)을 보면 앞뒤 범퍼가 심하게 파손된 자동차 그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자동차 광고에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이 광고에서는 자동차 광고에서 보통 반짝반짝 빛나는 새 차를 보여주던 관행과는 달리 대형 사고를 당해 찌그러져버린 자동차를 보여주었다. 볼보가 이토록 약한 차였나? 이런 생각이 들까 말까 하는 순간, “우리는 이처럼 생각하며 모든 볼보를 설계합니다”라는 헤드라인이 눈길을 끈다. 헤드라인에 있는 ‘이처럼’은 사고 나는 순간을 가리키는 게 분명한데, 사고로 형편없이 찌그러져버린 자동차 그림과 헤드라인이 어울리며 ‘안전’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충분하다. 보디 카피에서는 더 안전한 차를 만들기 위해 볼보가 자동차 설계를 어떻게 하는지를 상세히 설명했다.

두루 알다시피 볼보는 아서 가브리엘슨과 구스타프 라르손이 1927년에 설립한 스웨덴의 자동차 브랜드이다. 볼보는 최초의 모델인 야곱을 출시한 이후 사업 영역을 확장해 1946년부터 ‘안전’이라는 콘셉트를 줄곧 유지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광고는 볼보가 북미 시장의 유통망을 확대하던 기간(1971-1990)에 집행되었다. 볼보는 2010년에 중국의 자동차 제조업체 지리(Geeley)그룹에 매각되었고, 2012년부터 ‘당신께 맞춘 디자인(Designed around you)’이라는 새로운 슬로건으로 인간 중심의 디자인을 강조하고 있다.
 
이 광고를 본 소비자들은 볼보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가지게 될까? 부정적 접근을 싫어하는 경영인들처럼 볼보가 사고에 약한 차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큰 사고를 당하고도 차 안은 멀쩡하니 정말 안전한 차라며 볼보의 안전을 더 신뢰할까? 여러 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볼보가 더 안전한 차라는 인식을 확산하는데 이 광고가 크게 기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광고 창작자들은 자동차 광고의 보편적 접근 방법에서 탈피해, 소비자들을 대조(contrast)에 의한 선택적 지각으로 유도했다. 대조란 습관적으로 인식하는 일반적인 조건에 변화를 줌으로써 사람들이 대상을 지각하게 한다는 소비자 심리학 용어다.
  
우리들은 모두 매 순간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어떤 자극 앞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지만, 모든 자극을 다 받아들이지 않고 관심이 있는 자극만을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소비자들 역시 날마다 다양한 자극 앞에 노출되지만 그 중에서 극히 일부의 자극만을 지각하게 되는데, 이를 선택적 지각(selective perception)이라고 한다. 아무리 많은 제작비를 투자해서 만든 광고라도 소비자의 관심사가 아닌 경우일 때는 받아들이지 않는 반면, 소비자의 기대치에 맞을 때는 간단한 아이디어만으로도 주목을 끌게 된다.
  
소비자들은 자신의 마음에 드는 메시지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만, 자신의 기대에 어긋나는 자극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모두 선택적 지각의 맥락이다. 소비자의 선택적 지각은 그 자극이 어떠한 성질을 갖고 있는가 하는 ‘자극의 성질’과 개인의 욕구나 동기 같은 ‘개인의 특성’에 따라 결정된다. 볼보의 광고 창작자들은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장면을 바꾸고 변화를 주는 대조에 의해 소비자를 선택적 지각으로 유도하는데 성공한 셈이다.
 
경영인에게 있어 고정관념이란 고질적인 불치병이다. 고정관념이란 특정한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과잉된 일반화나 부정확하게 일반화된 신념이다. 경영자들이 매번 어떤 고정관념에 따라 의사결정을 한다면 나중에 가서 상당한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사태가 자주 벌어질 수 있다. ‘영국의 애플’이라고 하는 다이슨의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은 비즈니스에 있어서 적이 누구냐는 질문에 자신의 유일한 적(敵)은 고정관념이라고 했다. 1993년에 창업한 그는 먼지 봉투 없는 진공청소기, 날개 없는 선풍기, 초음속 헤어드라이어 같은 창의적인 상품을 개발해 회사를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고정관념을 타파했기에 가능한 성과였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가치는 물리적 세계와 가상적 세계의 융합이다. 도도하게 다가오는 산업혁명의 물결을 헤쳐 나가려면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만으로는 부족하다. 창의적 발상의 원천인 브레인웨어(brain-ware)가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 경영에서나 일상생활에서나 고정관념은 브레인웨어를 활성화시키지 못한다. 진화나 발전을 병들게 하는 암세포일 뿐이다. 이제, 몸 근육만 유연하게 만들려고 하지 말고 생각의 유연성도 키워야 할 때다. 찌그러진 자동차 광고처럼.

 

 

저작권자 © 초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