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을 위해 결단을 주저하지 않는 일관된 카리스마가 필요한 곳이라면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이동걸 박사는 ‘금융계의 위징(魏徵)’이다. 지금 산업은행의 이동걸 회장과는 한글로 동명이인이다.

한국인들에게는 유감스런 인물인 당태종을 중국 역사상 최고 성군으로 평가되도록 만든 일등공신이 위징이다.

‘정관의 치(貞觀之治)’로 유명한 당태종의 태평성대에서 실제로 일을 많이 한 사람은 위징보다는 방현령과 두여회다. 위징은 정책집행보다는 임금의 행동이 ‘왕도(王道)’를 저버렸을 때 서슴지 않고 직언하기를 무려 200번을 넘긴 사람이다. 그가 당태종과 나눈 문답은 이후 중국 뿐 아니라 한국 등 모든 유교권 왕조에서 올바른 통치의 교과서가 됐다.

“마상에서 천하를 얻을 수는 있어도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다”는 대화 또한 당태종과 위징이 나눈 것이다. 고구려 정벌의 부당함을 간언했던 것도 위징이다.

마주 대하기가 호랑이와 같다는 임금에게 200번의 간언이라면, 이것은 목숨에 연연해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태종이 이를 수용해 자신 또한 최고의 성군이 되기는 했지만, 끝내 위징의 사후 당태종은 그의 묘비를 부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고구려 원정에서 실패한 후 다시 위징의 묘비를 세워주면서 당태종은 반성과 함께 새삼 그의 빈 자리를 아쉬워하게 됐다.

이동걸 박사의 2000년 이후 경력 역시 위징처럼 높은 자리로 올라갈수록 편법에 저항해 원칙을 확립하는 행동으로 일관됐다. 이로 인해 자신의 자리를 내줘야 하는 일이 거듭됐다.
 

▲ 이동걸 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사진=뉴시스.

 

최근 일각에서 이동걸 박사의 산업은행 총수 기용설이 나온다.

언론이나 시중에서 제기되는 인사전망이 어디까지 맞고 어디까지 틀린지는 쉽게 가늠할 수 없다. 그가 이명박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 정책에 저항해 금융연구원장에서 물러난 지 8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그의 중용설이 나오는 것은 상당한 타당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위징의 쓴 소리’가 절실하기보다는,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든 전임자들과 달리 현장을 마구마구 뛰어다닐 돌격선봉장이 필요한 곳이다.

오히려 ‘위징의 곧은 카리스마’를 필요로 하는 더욱 커다란 국가기관이 이동걸 박사에게 더욱 적절할 듯  싶어서 하는 얘기다.

산업은행은 2007년 이전에는 줄곧 재무 관료들이 총재로 부임해, 사실상 정부정책의 돌격대 역할을 했다. ‘관치의 선봉’이란 비판도 있었지만, 자생기반이 아직 부족한 한국 은행업의 형편에 첨단 금융기법을 처음으로 시행해 보고, 막혀있는 자금시장의 숨통을 트는 과감한 금융이 산업은행의 전통적 소임이었다.

그러다가 2008년 이후, 시중은행 같은 소매영업을 하겠다고 갈팡질팡하더니 이는 사실상 철회되고 학자출신 회장이 부임했다. 이 기간 산업은행은 부실을 이유로 인수한 굵직한 자회사들에 대해 전혀 손을 대지 못했다는 심각한 비판을 받고 있다. 말하자면 산업은행 수뇌부가 현장을 뛰어다니지 않았다는 것이다. 끝내 자본금 잠식까지 우려돼, 한국은행 발권력을 동원하는 소동까지 빚어졌다.

지금의 산업은행 최고경영자에게 필요한 것은 현장 감각, 실무돌파력이다. 이런 덕목에는 불가피하게 딱딱한 금융원칙을 유보할 줄도 아는 성향이 따라붙는다. 곧은 소리를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선비의 면모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이동걸 박사는 2001년 금융연구원의 소신파 박사로서 당시 경제부총리의 경기진작을 목적으로 한 개혁정책 후퇴를 격렬하게 저항했다. 2004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일 때는 삼성생명이 고객자금으로 매입한 삼성 금융사 주식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부당함을 지적했다. 그는 끝내 금감위 조직 전체와 맞서는 선택을 했고 곧 자리에서 물러났다.

▲ 당태종에게 서슴지 않는 직언으로 '정관의 치'라는 태평성대를 이끈 명신 위징. /사진=위키백과 퍼블릭도메인.

2009년 금융연구원장에서 물러나게 만든 금산분리 완화 반대는 그 이후의 정책흐름에서 누가 옳았는지 명백히 드러난다.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중 산업은행 민영화를 위해 정책금융공사를 분리하고 금산분리도 완화했던 것들이 모두 원점으로 돌아간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이 아니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한 2013년이었다. 금산분리는 보수냐 진보냐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처럼 절대로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옳은 소리는 끝내 지키고 마는 카리스마가 절실히 필요한 곳이 현재 한국은행이다. 한국은행은 내년 3월 이주열 총재의 임기가 끝난다.

한국은행의 지금 상태는 이주열 총재가 있는 동안에는 금리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속수무책 그대로다.

가계부채나 국내외 금리격차 등 여러 여건으로 보아, 통화완화를 지속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당연히 통화긴축으로 정책 중심을 옮겨야 하는데, 현재의 한은으로서는 역부족이다.

앞선 정권의 ‘빚내서 집사라’ 정책에 마치 ‘자동문 중앙은행’처럼 금리 인하로 화답하고 심지어 전임 대통령의 발권력 동원 간섭에까지 굴복하고 말았다. 이런 중앙은행이 정권 바뀌었다고 새삼 긴축으로 돌아서자니 깐깐한 저항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의 진흙탕 싸움이 벌어진 배경이기도 하다.

문제의 핵심은 한국은행에 카리스마 회복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앞으로 금융통화위원회의 통화정책 회의를 네 번만 더 하면 새로운 총재가 부임하게 된다. 차기 총재가 시급히 한은의 위상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이 나라 중앙은행의 표류 상태는 기약없이 이어지게 된다.

이런 점에서, 수 십 년 세월 일관된 원칙에 한번 흐트러짐 없는 이동걸 박사만한 인물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의 학문적 배경과 전공, 그리고 경력을 살펴보면 전문성 면에서 앞선 총재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할 것이 전혀 없다. 또, 한은에 대한 열정보다는 장관급 자리를 탐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군상들과는 비교할 가치 조차 없다.

이 나라에 대단히 훌륭한 선비가 있음에도 국가는 지난 9년 세월 그에게 아무런 소임도 맡기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든 그에게 한 자리를 맡기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 분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곳이어야지, 엉뚱한 곳으로 가서는 오히려 정부나 당사자의 지금까지 명성에 누가 될 수 있는 일이다. 한국은행 총재같이 대통령이 임명권을 행사하는 영역까지 언급한 이유는, 기왕 인재를 중용하려면 ‘적재적소’를 정말 중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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