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업인의 트레킹 이야기<30>...어라연의 절경은 멋진 관광상품

▲ 박성기 대표

[초이스경제 외부기고=박성기 도보여행가, 도서출판 깊은샘 대표] 이번에는 2018년 2월 3일(토)에 걸은 정선 아리랑의 고장 영월 어라연을 소개하려 한다.

영하 10도가 넘는 수은주에 사람들 발걸음도 묶어놓은 모양이다. 여름이면 북적였을 영월 시외버스터미널에 빈 택시들이 줄을 서 손님을 맞고 있다. 지난주 들렀던 탓일까. 괜스레 더 가깝고 친밀하다. 마치 매일 이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국밥 한 그릇에 따뜻하게 언 몸을 녹이고 오늘의 출발지인 동강탐방소로 향했다.

이 곳은 잘 알려진 대로 정선아리랑의 고장이다. 정선아리랑의 소절 중엔 “눈물로 사귄 정은 오래가지만 금전(돈)으로 사귄 정은 잠깐이라며 이곳에선 돈 걱정 말고 놀다 가라”는 내용이 들어있다. 이 곳에 와서 만큼은 잠시나마 돈걱정, 경제걱정 내려놓고 뛰어난 경관을 즐기라는 뜻이 담겨 있으리라. 이 노랫말은 과장이 아니다. 겨울 어라연의 아름다운 경치는 이곳의 숨어있는 또 다른 '관광상품'이다.

▲ 거운분교 앞 동강 어라연 가는 길 표지판 /사진=박성기 대표
▲ 탐방로 입구 안내센터 /사진=박성기 대표

출발지인 봉래초교 거운분교 앞이다. 아침내내 산발로 내리던 눈발은 어라연 가는 길을 하얗게 덮으며 쌓여갔다. 추운 기온에 곱은 손을 움직여 채비를 단단히 하고 길을 출발했다. 건조한 눈은 바람이 불때마다 살짝 먼지처럼 들썩인다. 조금 쌓인 눈길이 더 미끄러웠다.

눈 위에 자국을 남기며 800여 미터를 오르니 잣봉, 만지 갈림길이다. 오른쪽으로 가면 어라연으로 가고, 왼쪽으로 오르면 잣봉이다.

▲ 잣봉, 만지 갈림길 표지판 /사진=박성기 대표
▲ 만지고개 직전 나무사이 길 /사진=박성기 대표

잣봉 오르는 길은 쉽게 내어주질 않았다. 가파른 길을 숨을 몰아쉬며 오르기 시작했다. 앞골재를 넘고 작은 마을을 지났다. 잠시 편안히 이어지던 길은 나무계단의 급경사를 만났다. 이곳만 오르면 능선길인 만지(滿池)고개다. 만지고개를 오르면 동서로 길게 늘어진 동강을 보리라는 생각에 뻐근해진 다리를 끌고 계단을 힘겹게 올랐다. 찬바람에 살을 에는 듯한 고통도 마다않고 가쁜 숨을 내쉬며 올랐다. 오르다 잠시 멈춰 쉴라치면 나무들 사이를 비집고 불어오는 찬바람에 잠시도 서 있을 수가 없다.

▲ 만지고개 능선에서 만난 동강을 닮은 소나무 /사진=박성기 대표
▲ 전망대에서 바라본 동강 /사진=박성기 대표
▲ 만지고개 능선에서 만난 동강 /사진=최원석 작가
▲ 표지 밑으로 끝없는 낭떠러지다. /사진=박성기 대표

만지고개 능선에 올랐다. 산 아래 굽이굽이 흐르는 동강은 마치 용의 승천과도 같았다. 우리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대부터 이어온 수많은 이야기들을 담고서 강은 그렇게 역동적으로 이어간다.

동강은 태백의 검룡소(儉龍沼)에서 출발하여 아우라지에서 송천과 합류 한 뒤 정선에서 오대천(五臺川)을 만나 거대한 맥을 이루며 흘러온 것이다. 동강은 영월에서 서강을 만나 남한강이 되어 흐르다 마침내 한강이 되어 서울을 지나니 우리가 살아온 수 천 년의 세월이 같이 흘러온 것이다.

▲ 잣봉 정상 /사진=박성기 대표
▲ 잣봉 갈림길 표지판이다. 어라연까지 급경사로 1km를 내려가야 한다. /사진=박성기 대표

전망대를 지나 537미터 잣봉에 도달했다. 잣봉에서 바라보는 어라연은 천하에 이런 경치가 없다. 우리나라에 이토록 아름다운 '관광상품'이 이 곳에 또 하나 숨어있다. 넘실대며 내려오던 동강이 잣봉 아래 어라연을 휘돌아간다. 멀리서 바라보는 어라연(魚羅淵)은 물속 조화가 많은 물고기 떼가 강물에서 유영하며 놀때 물고기들의 비늘이 마치 비단 같이 빛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표현이 문학적이어서 되새겨보며 음미해본다.

산발로 내리던 눈은 바람을 만나 아래서부터 위로 오르는 장관을 연출한다. 날이 추워 여유롭게 구경할 수가 없다. 길을 재촉해 어라연으로 내려갔다. 길이 수직처럼 깎아 지른다. 눈길에 가파른 길을 더듬으며 내려오니 아이젠을 했어도 불안하기만 한다. 난간처럼 이어진 밧줄을 잡으며 내려왔다.

▲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상선암 /사진=박성기 대표
▲ 빛에 반사된 동강의 얼음이 아름답다. /사진=박성기 대표
▲ 동강 어라연의 물결 /사진=박성기 대표
▲ 꽁꽁 언 동강 위에서 바라본 하늘 /사진=최원석 작가

어라연 전망바위 갈림길이다. 전망바위로 갔다. 깎아내린 절벽 아래 어라연의 절경인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이 거센 물살을 받으며 우뚝 서있다. 신선들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노닐었을 법하다. 상선암 앞쪽 내가 서있는 전망바위 쪽 강은 얼음으로 꽁꽁 얼고 눈이 쌓여 하얀 설국이다. 거센 물살은 얼지 않고 고요한 강물은 꽁꽁 얼어버렸다.

어라연으로 내려섰다. 넓은 어라연은 꽁꽁 얼고, 상선암 쪽 거센 물길은 얼지 않았다. 햇빛에 비친 강물은 넘실대며 빛을 굴절시키며 은빛으로 반짝거렸다. 강가 빙점의 경계에서 얼기 시작한 얼음의 결정이 아름답게 빛에 반사되어 신비롭기까지 하다. 여기서부터 최종목적지인 거운분교까지는 5킬로가 남았다. 딱 반이 남은 셈이다. 5킬로는 산길로 왔으니 이제 남은 반은 동강 길을 따라 걷는다.

▲ 된꼬까리 강변에서 바라본 풍경 /사진=박성기 대표
▲ 만지나루의 전산옥 주막터 /사진=박성기 대표
▲ 만지나루를 지나서 걸었던 동강 강가의 역광 풍경 /사진=박성기 대표

언 강을 따라 걸어 내려갔다. 1킬로미터 내려가니 물살이 세져서 강에 얼음이 얼지 않은 된꼬까리 여울이다. 된꼬까리 여울의 유래는 강이 굽이가 되게(심하게) 꼬부라진 여울목을 말한다. 일행은 더 강으로 진행을 못하고 강 옆길로 올라섰다. 길은 너덜지대처럼 바위투성이이다. 지명탓이라 그런지 걷기가 옹색하다.

그런 길을 1km 내려오니 비로소 길이 편안해진다. 전산옥(1909~1987,全山玉) 주막터가 있던 만지나루다. 거칠게 흐르던 물이 천천히 숨을 고를 때쯤 만나는 곳이다. 정선에서 베어낸 통나무로 만든 뗏목을 타고 이른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가져오던 떼꾼들이 된꼬까리 거친 물살과 사투를 벌이고 내려와 전산옥 주막터에서 따뜻한 국밥에 술 한상에 쉬어가던 떼꾼들의 쉼터였다.

빼어난 미모와 입심을 가진 주모 전산옥의 구성진 정선 아리랑 한 곡조를 듣고는 떼꾼들은 쌓였던 노고를 노래 가락에 묻혀 흘려보내고는 다시 몸을 일으켜 뗏목을 저었을 게다. 뗏목을 저으며 한 가정의 경제를 지탱하느라 지쳐있던 떼꾼들에게 이곳 전산옥의 정선 아리랑은 '삶의 위로' 그 자체였을 게다.

만지나루를 지나니 강은 넓어지고 물의 흐름이 더디다. 강 옆으로 얼음이 얼어 강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한동안 걷다보니 온통 강이 얼어 하얗게 눈으로 뒤덮였다. 강위로 이는 거센 바람에 강위를 살짝 덮었던 눈들은 바람에 떠올라 하얗게 비산한다. 마치 태안 바닷가에서 가는 모래가 바람에 실려 날리던 모습이 연상되었다. 강 따라 거세게 부는 바람도 걷는 자에겐 행복한 힐링의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꽁꽁 언 강 위를 걷는 것은 한 겨울에 얻는 축복이다. 그렇게 걷다보니 다시 얼음이 얇아지고 물이 보인다. 멀리 거운교가 보이는 곳에서 다시 길로 올라섰다. 길은 산위로 가파르게 이어 올랐다. 아침에 지났던 잣봉, 만지 갈림길을 다시 만났다. 첫 출발지인 거운분교 가는 길은 쌓였던 눈이 다 녹아 아침의 모습과 대비되며 전혀 다른 곳처럼 느껴졌다. 출발지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네 시가 넘었다. 여섯 시간 전혀 다른 세계에 있다가 온 듯 다시 어라연이 그리워진다.

만지나루 주막과 떼꾼들이 부른 노래 가사가 귓전에 어른거린다.


눈물로 사귄 정은 오래도록 가지만
금전으로 사귄 정은 잠시 잠깐이라네.
돈 쓰던 사람이 돈 떨어지니
구시월 막바지에 서리 맞은 국화라
놀다 가세요. 자다 가세요.
그믐 초승달이 뜨도록 놀다가세요
황새여울 된꼬까리에 떼를 띄어 놓았네.
만지산의 전산옥(全山玉)이야 술상 차려 놓게나.
 
                                           -정선아리랑 중 한 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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