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업인의 트레킹 이야기<31>...호반 낭만길 거쳐 이원 양조 마을 가다

▲ 박성기 대표

[초이스경제 외부기고=박성기 도보여행가, 도서출판 깊은샘 대표] 오늘은 2018년 2월 10일 토요일에 걸었던 대청호 오백리길 4코스를 소개한다.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의 신무산(神舞山, 897m)에서 발원한 금강은 수많은 지천들과 만나며 흐르다가 대청댐을 만나 대전시와 청주시, 옥천군, 보은군 등을 아우르는 우리나라 세 번째로 큰 호수 대청호가 되었다. 이러한 아름다운 호수를 따라 야트막한 산과 마을을 연결한 220킬로의 아름다운 길이 있다. 이 길을 대청호 오백리길이라 부르는데 총 21개 코스로 나뉘어져 있다. 오늘은 이중 4코스인 ‘호반 낭만길’을 걷는다. 또한 이원면의 물맑은 양조장 마을을 방문해서 술 빚는 과정을 살펴볼 생각이다. 이원면의 신토불이 막걸리는 이 고장의 경제적 자산이자 특산품이다.

▲ 말뫼사거리를 출발하면 나오는 풍경이다. /사진=박성기 대표
▲ 대청호 오백리길 표지 /사진=박성기 대표
▲ 억새 사이로 걷는 도반 /사진=박성기 대표

마산동 말뫼삼거리에서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대청호수로 옆 추동 방향 들길로 접어들었다. 길섶 사람 키를 넘는 억새는 가는 바람에 한들한들 고개를 숙이며 걷는 자를 반긴다. 입춘(立春)이 지났는데도 끝날 줄 모르고 춥던 며칠 전의 기억은 벌써 싣고 온 봄기운에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봄을 품은 길은 부드러운 양탄자처럼 푹신하기만 하였다.

억새에 가려져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던 호수가 제 모습을 드러냈다. 짙은 코발트색이다. 동장군의 기세에 감춰뒀던 봄이 막 깨어나자 호수도 기지개를 켜는 모양이다. 호수 가장 자리로 언 곳과 얼지 않은 경계가 묘한 경계로 물속 그림을 그린 것만 같다.

▲ 우물터가 있는 풍. 예전 수몰전 민가가 있던 곳일까. /사진=박성기 대표
▲ 길에는 낙엽이 깔리고 꼭 가을의 모습이다. /사진=박성기 대표
▲ 고사목이 을씨년스럽다. /사진=박성기 대표

길은 꾸불꾸불 호수의 가장자리를 이어갔다. 어느새 길은 낙엽이 가득하여 가을의 느낌을 선사한다. 떨어진 나뭇잎은 길을 가득히 메꾸었다. 잠시를 그렇게 가자 다시 호수다. 그렇게 호수를 따라가다보니 말라죽은 고사목들이 보인다. 미세먼지가 가득해서인지 말라죽어버린 고사목이 을씨년스럽다.

아무렇게나 말라서 고사목이 되어버린 굵은 나무들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듯하다. 이 길이 호수가 아니었을 때 정정하던 나무는 댐을 막아 인공호수가 된 후 물에 수장되었다가 물이 빠지고 몸을 드러낼 때 이미 죽어버린 나무들은 말라서 그대로 고사목이 되어버린 것이다.

▲ 추동습지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사진=박성기 대표
▲ 추동습지 모습 /사진=박성기 대표
▲ 추동마을 비 /사진=박성기 대표

말뫼삼거리에서 3.5km를 걸어서 추동습지다. 호수를 따라 걷다보면 습지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습지는 온통 억새로 가득했다. 지나가는 바람에 고개를 숙였다 젖히며 흔들거리는 것이 호수와 어울려 참 좋다. 이곳에는 천연기념물인 원앙, 말똥가리, 흰목물떼새, 맹꽁이 등의 서식지라는데 계절 탓인지 보진 못하겠다. 전망대에 서서 습지를 보니 장관이다. 사진에 열중하다보니 시간가는 줄모른다. 전망대를 지나 차도를 건너서 추동마을로 향했다. 옛날부터 가래나무(楸木)가 많아서 ‘가래울’이라 부르던 지역을 한자로 잘못 음차하여 추동(楸洞)을 추동(秋洞)이라고 하였다. 대청호로 흘러들어오는 가래울 천을 따라 올라갔다.

▲ 호미고개임을 알려주는 비석 /사진=박성기 대표
▲ 걷는 이들의 흔적 /사진=박성기 대표

오백여 미터를 더 진행하니 대청호 자연생태관이다. 대청호 주변의 환경생태계를 전시한 것으로 대청호 주변에서 나오는 온갖 동식물의 표본을 전시한 공간이다. 지나치지 않고 들어서서 이곳저곳 살피니 시간이 많이 흘러갔다.

대청호 자연 생태관을 출발해 길을 나섰다. 습지공원을 거쳐 포도(鋪道)를 따라 오백여 미터 지나 좌측 길로 접어들었다. 길은 계속 걷기에 편한 길이다. 대청호 주변의 산들이 대부분 이삼백 미터의 나지막한 산이고 그나마 4코스는 산을 둘러가는 둘레길의 형태라 길의 높낮이는 거의 없다. 가사낭 골을 지나 가다보니 조그마한 오르막이 있고 오르막 위 길 섶으로 작은 돌비석에 ‘호미고개’라 써 있다. 그나마 조금 올라 넘으니 호미고개인가 싶어서 나도 모르게 싱긋 웃었다.

▲ 황새를 닮지 않은 황새바위 /사진=박성기 대표
▲ 같이 움직인 도반 /사진=박성기 대표

황새바위에 도착했다. 황새의 날개를 닮았다고 황새바위라 하는데 아무리 봐도 닮지 않았다. 바위 작명가의 눈에는 황새로 보였나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대청호 경치가 4코스에서 으뜸이다. 눈에 막힘이 없이 넓은 호수가 눈에 들어오니 시원하다. 좌측으로 지나왔던 길이 들쑥날쑥한 수변을 따라 눈앞에 가깝게 보인다.

황새바위를 출발해 가는 길에는 많은 무덤들이 보였다. 무덤의 묘비를 보면 이곳이 은진 송씨 집안이 세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꽃마을을 지나 원주산 자락을 둘러갔다. 지나는 동안 길옆으로 시들이 많이 전시되어있어 읽으면서 가다보니 화가의 집과 기와집 한 채가 있다. 이제 목적지가 얼마 안 남았다. 이원 양조장 마을을 들르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한다.

▲ 넓이 30센치의 제방길 /사진=박성기 대표

산등성이를 넘어가니 대청호반이다. 정면에 호반을 가로지르는 제방길이 보인다. 제방길 위로는 신상교가 있다. 쭉 뻗은 제방길을 따라 걸으니 신상교 다리 아래로 넓이 30cm 가량의 시멘트 보가 호수 가운데로 길게 놓여있다.

목적지를 가기 위해서는 시멘트 보를 건너야 한다. 칠십여 미터의 보를 건너는데 간이 콩알만 해졌다. 나중에 보니 보 아래로 얼은 얼음이 튼튼해서 깨지지 않을 정도의 단단함인데 그 순간에는 건너기가 두려웠다. 물이 많을 때는 보를 건널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대청호 오백리길 지도에는 이곳으로 건너라고 되어있다. 코스를 관리하시는 분께서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주시기 바래본다.

▲ 15도 원주를 걸러내는 과정. 원주에 물을 섞어 5도나 6도의 막걸리로 만든다. /사진=박성기 대표

도반 일행을 태운 버스는 30분 거리의 옥천군 이원면의 양조장 마을을 찾았다. 4대를 이어오는 술도가로서 아직도 가업을 지켜오는 집이 있다고 했다. 이곳의 한 양조장엔 한때 30명 넘는 직원이 술을 주조했다고 하니 시간무정이다.

이곳에서 양조장을 경영하는 강현준 이란 분을 만났다. 원래 건축업을 하다가 가업을 잇기 위해 하던 일을 그만두고 술을 주조하는데 전념하고 있다고 한다. 1930년대 금강변에 개업을 해 장사를 하다 수해를 입어 1949년 현재 위치에 양조장을 지었다고 한다. 이원지역 양조장에선 입국과 누룩을 이용하여 술을 만든다고 했다.

이원 지역에서 만드는 술의 종류가 눈길을 끈다. '향수' ‘시인의 마을’ 등 시의 제목을 딴 막걸리도 있다고 한다. 사연인 즉 옥천은 위대한 시인 정지용의 고향으로 그를 기리는 축제가 매년 5월 옥천에서 열린단다. 그래서 일까. 시인의 작품 ‘향수’를  막걸리 상품명으로 차용하였고, 옥천이 시인의 고향이기에 상품 이름을 ‘시인의 마을’이라 했다는 것이다. 시인의 마을은 직접 농사를 짓고 그 쌀로 술을 빚는다는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한마디로 전통 술과 예술의 만남이 우리의 이목을 끌어 당겼다.

우리의 정서가 흐르는 우리 것을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문득 신토불이~ 신토불이~ 하는 노랫가락이 절로 흥얼거려진다. 이곳의 신토불이 이원 막걸리는 이곳의 경제적 자산이자 특산품이다.

5월 둘째 주에 열리는 지용제 때 대청호 오백리길 9코스를 걷기로 하고, 옥천 지용제에 현장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길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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