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업인의 트레킹 이야기<32>...한국의 중심으로 농업도 발달한 곳

▲ 박성기 대표

[초이스경제 외부 기고=박성기 도보여행가, 도서출판 깊은샘 대표] 바야흐로 계절은 봄냄새를 가득 풍기기 시작했다. 등산이나 트레킹 하기 좋은 때다. 이번엔 2018년 2월24일(토) 걸었던 마니산 참성대를 소개한다.

강화의 마니산(摩尼山)으로 향했다. 한걸음씩 겨울을 밀어내고 싱그러운 봄이 걸어오고 있다. 도반(途伴)의 표정들도 한결 부드럽고 안온하다.

마니산이 있는 강화는 원래 해구(海口), 혈구(穴口)로 불렸다. 고려태조 23년에 처음 강화(江華)라 부르게 되었다. 강원도 정선에서 시작한 남한강이 흘러 북한강과 만나고 임진강과 만나 기침 한 번 크게 하듯 뱉어낸 곳에 강화가 위치한다. 개성에서 흐르던 예성강도 바다를 만나 가로막는 곳이 강화다. 강산을 휘도는 물이 혈맥으로 뛰다가 마침내 모여지는 곳에 강화가 있다. 또한 조수간만의 차에 의해 강화도 바닷길은 물살이 세서 함부로 건널 수 없는 천혜의 요새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강화의 옛 이름이 바다의 구멍인 해구이고 혈구인 모양이다. 이러한 지리적 배경은 역사적으로는 39년간 항몽의 중심지이며, 고려의 수도이기도 했다.

일대는 넓은 들판도 펼쳐져 있어 농업도 함께 영위할 수 있는 곳이다. 발아래 흥왕리 벌판이 눈을 확 트이게 한다. 조금만 더 있으면 이곳 들판에서의 농사짓기도 본격 시작되리라.

오늘 가고자 하는 곳은 강화도의 남쪽 화도리에 있는 마니산(摩尼山)이다. 마니산의 원이름이 마리산(摩利山), 머리산, 두악(頭嶽)이라 부르는데 머리 즉, 나라의 중심이라는 뜻일 게다.

기도가 잘 통하는 우리 민족의 신성한 영산 마니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마니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줄곧 계단을 이용하여 산을 오르는 방법과 단군로로 산을 오르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일행은 단군로 능선을 타고 마니산을 넘기로 했다. 단군로는 완만하여 따뜻해진 봄날과 더불어 휘파람이 절로 난다. 겨우내 잔뜩 불렸던 몸무게를 지고 오르는 도반의 숨소리가 쇳소리를 낸다. 나의 숨소리인지 도반의 숨소리인지 구분을 못하겠고 그리 즐거이 오른다.

▲ 막 능선길로 접어들었다. /사진=박성기 대표
▲ 단군로 능선길로 접어들자 보이는 흥왕리 벌판과 서해바다. /사진=박성기 대표
▲ 372계단에 새겨진 마니산 높이 /사진=박성기 대표

옹녀 계단을 지나 1시간 남짓 오르니 본격 능선에 접어든다. 여기서부터 정상 참성단까지는 1.3km가 남았다. 능선에 올라 오른편을 바라보니 발 아래로 흥왕리 벌판과 그 너머로 서해바다가 넘실댄다. 눈아래 벌판에선 곧 농삿일도 본격 시작될 것이다. 예부터 농업이 발달한 곳의 경제 사정도 좋았던 터라 이곳의 농토는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경제 수단일 게다.

봄기운이라고 하지만 아직 군데군데 응달에는 얼음이 얼어있다. 발끝을 곧추고 조심조심 길을 진행했다. 능선을 따라 계속 30여분을 오르니 턱 눈앞을 가로막는 철제계단이 보였다. 내 마지막 인내를 시험하는 듯 계단은 가파르게 이어져있다. 중력의 힘을 느끼며 무거운 몸을 계단에 실었다. 하나씩 372계단을 힘겹게 올랐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계단이 끝나고 눈앞에 참성단이 보였다.

▲ 참성단의 소사나무. /사진=박성기 대표

참성단(塹城壇)은 철망으로 둘러져있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기를 받고자 이곳에 제를 지내러 오다보니 훼손을 우려해서 그렇게 보호하는 모양이다. 오늘도 사람들이 줄을 지어 참성단에 오르고 있었다.

제단에는 소사나무 한 그루가 서 있어 오르는 사람을 반겨주었다. 돌로만 이루어진 제천단에 가지를 뻗치며 홀로 우뚝한 소사나무가 신령스럽다. 많은 사람들의 기원에 대답하듯 소사나무 잔가지들은 가벼운 바람에도 제 몸을 그렇게 흔들어대고 있다.

▲ 참성단 제단. /사진=박성기 대표

참성단은 단군께서 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 전해지고 있다. 자연석으로 아래쪽은 둥글게 쌓아 기초를 튼튼히 하였고 위쪽으로는 네모의 모양으로 쌓았다. 단군왕검께서 직접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고 해서 제천단(祭天壇)이라 부르기도 한다.

공교롭게도 여기 참성대에서 백두산과 한라산의 거리가 똑같은 중앙이라니 신기할 따름이다. 그래서 여기가 우리나라의 중심이고 기도가 제일 잘 듣는 영험한 곳인 모양이다. 처음 지어진 것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고려와 조선조에 이르는 동안 보수와 수축을 계속해 와서 오늘에 이르렀다. 나라의 중요한 행사 때면 단군에 제사를 올리니 어려운 우리나라의 앞날이 잘 되기를 기원해본다. 이참에 우리 일행도 우리의 경제가 잘 풀렸으면 하고 빌었다. 남북 관계가 좋아졌으면 하는 희망도 함께 실어 보냈다.

▲ 참성단중수비 /사진=박성기 대표
▲ 마니산 정상에 선 등산인들 /사진=박성기 대표
▲ 암릉지대를 타고 넘다. /사진=박성기 대표

참성대를 뒤로하고 함허동천(涵虛洞天)으로 향했다.

참성단을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네모난 모양의 바위들이 무리를 이루고 서있는 곳에 다다랐다. 참성단중수비(塹城壇重修碑)다. 숙종43년(1717) 5월에 참성단을 새로이 보수한 내용과 참성단이란 이름을 붙인 사연을 바위에 새겨놓았다. 꼭 그 위치에 서서 글을 새기라는 듯이 우뚝 서있는 모습이 신기하다. 잠시 머물며 글을 새긴 이의 뜻을 되새기고는 다시 길을 이었다.

이 구간은 기암괴석의 암릉(巖陵) 구간이다. 마치 일부러 쌓은 듯 층층이 놓인 큰 바위들이 이어지며 길을 만들고 있다. 조금이라도 발을 헛디딜까봐 낭떠러지의 아찔함에 서늘하기만 하다. 응달진 곳에 얼음이 얼어있어 조심스레 손으로 바위를 짚었다.

그렇게 씨름하며 앞으로 진행하며 앞으로 나아가다가 바위에 미끄러져 앉아있는 다친 등산객을 보았다. 걱정스레 봤더니 우리에게 조심하라며 되려 걱정을 한다. 항상 산에서는 조심해야한다. 사소한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그분들이 119를 불렀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길을 이어나갔다.

▲ 함허동천 내려가는 길. /사진=박성기 대표
▲ 도반들이 기다리고 있다. /사진=박성기 대표

칠선교 다리를 건너 가파른 바위 위로 계단을 쌓은 칠선녀 선녀계단을 넘었다. 곧 길은 함허동천과 정수사와 갈림길을 만났다. 오늘 하산은 함허동천 방향이다. 얼마를 내려가니 능선과 계곡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다. 능선으로 길을 잡았다.

여름 계곡이었다면 당연히 계곡으로 가서 바위에 함허동천이 새겨진 맑고 깨끗한 물을 만났을 것을 겨울 끝자락 봄의 시작이라 그리로 가질 못했다. 함허동천(涵虛洞天)의 뜻이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잠겨있는 곳’이라니 얼마나 물이 맑고 깨끗했으면 하늘로 비유했을까. 나중 여름을 기약하고 능선으로 접어든 것이다.

이곳저곳 쳐다보며 구경하느라 해찰한 탓일까. 멀리 매표소 앞에서는 일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서두르지 않고 서서히 마니산의 정기를 온 몸으로 받으며 일행에게 다가갔다.

화도 마니산 매표소를 출발해 단군능선과 참성대를 지나 함허동천까지 걸었다.

마니산을 오른 날 북한에선 대표단이 남한으로 내려왔다. 언제 터질지 모를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마침내 평화의 전기를 마련하는 평화의 올림픽으로 자리하는 지금, 참성대에 올라 마음속으로 간절히 평화를 기원 해본다. 남북이 좋아지면 경제도 좋아질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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