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에 대한 존경심은 어려울 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한국이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 동참해 설비 수입을 중단하면 중국이 보복해야 한다고 일부 중국 언론이 바람을 잡고 있다.

이미 사드 보복을 경험한 한국 입장에서 일부 언론의 얘기만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동맹체제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는 현실을 맞설 수는 없다.

대부분 한국인들은 또 다시 중국과의 사업들이 또 다시 찬바람 맞는 일이 불가피할 것으로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만약 이른바 ‘한한(限韓)’의 찬바람이 또 다시 불어오더라도 3년 전 사드보복 때만큼의 충격에 못 미치는 이유가 있다. 그 때의 충격이 워낙 컸다는 것이다.

3년 전의 충격이 가장 큰 이유는 ‘역사적 실망’도 담고 있어서다. 중국이 2014년 영해갈등을 빚은 일본을 대하는 것과 똑같은 태도로 한국을 대하는 모습에서 그동안의 기대가 허상이었다고 깨달은 사람들이 많다.

최소한 한국에 대해서만큼은 353년 동안 두 차례나 침략에 맞서 함께 싸운 우정을 나눠 가졌다는 기대에 중국과의 우호를 강조하던 사람들이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수 백 년 동안 중국 해안을 어지럽히고 제국주의 침략시절 난징에서 대규모 학살을 벌인 적이 있는 국가와 하등 다를 것 없는 대접을 받는 게 현실이라고 깨달은 것이다.

예전, 중국 황제가 천자(天子)를 자처하며 세계 최강의 집단안보체제를 이끌었을 때, 천자의 도(道)는 명확하고 간단했다. 또한 사해 모든 나라가 저마다 처한 입장에 알맞게 왕도에 동참하면 되는 것이었다.

조선이 임진왜란 때 원조해 준 명나라 신종을 잊지 못해 사대부들의 묘비에 신종의 만력 연호를 썼다 해서 청나라와의 전쟁커녕 외교 분쟁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해 모든 나라가 저마다의 국경을 지키고 왕도(王道)만 지키면 되는 일이었다. 사소한 시비를 일으켜 이 평화를 깨뜨리고 주변 모든 나라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천자를 가장 위협하는 것임을 중국 스스로 알고 있었다는 점이 로마와 달리 수 천 년 동안 강대국 지위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이다.

조금 시간이 지난 일이지만, 트와이스 쯔위의 대만 청천백일홍기 소동도 이런 관점에서 유감스러운 여운을 남긴다.

트와이스의 대만 출신 멤버 쯔위는 대만 국기인 청천백일홍기를 들고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가 중국측의 거센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사진=뉴시스.
트와이스의 대만 출신 멤버 쯔위는 대만 국기인 청천백일홍기를 들고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가 중국측의 거센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사진=뉴시스.

만약 어떤 대만 배우가 청천백일홍기를 버리고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온 몸에 두르고 국제 영화제 레드카펫에 등장한다면, 중국인들은 이 배우를 과연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하나의 중국이란 원칙에서는 대만 젊은이들 역시 중국은 중국인 젊은이로 바라보게 된다.

중국의 젊은이가 어려서 모국의 상징으로 배우고자란 국기에 대해 일체의 존경심이 없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한 때나마 임금으로 섬긴 자에 대한 의리를 평생 잊지 않는 것은 중국인들이 옛 서적에 담아 한국을 비롯한 온 나라에 전해준 마음가짐이다. 한 고조 앞에서 팽월을 위해 곡을 한 난포, 위나라 신하로 유비의 죽음을 애통해한 원환의 고사 등 중국 서적에 이 도리는 수도 없이 많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하는 관점에서 대만의 청천백일홍기 문제는 복잡한 면도 있다. 대만의 강경독립파는 이 국기 또한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역사관을 담고 있으니 이를 바꿔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만 젊은이가 이 국기를 침대머리에 두고 있다면 이러한 강경독립파는 아니라는 것인데, 중국 여론은 그런 건 전혀 염두에 없는 듯하다.

강대국의 권위는 힘이 강성할 때보다 어려운 처지에 처했을 때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기는 법이다. 힘이 있을 때 휘두르는 힘은 존경심을 얻지 못한다.

어려운 때인데도 대국의 풍모를 잃지 않았을 때,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진정한 대국의 자취를 남긴다.

최근 들어, 중국은 1980년 이후 개혁개방을 통해 쌓아올린 국력을 섣불리 꺼내들고 있다는 인상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지금 중국은 절대로 과거 천자들 때의 최고 강대국이 아니다. 경제력에서 미국에 못 미치고 있고,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 중에 인구수에서 중국에 전혀 밀리지 않는 인도가 있다.

‘손권과는 친하고 조조와 대립한다’는 교훈도 실천을 못해서, 미국과 무역 갈등을 벌이는 와중에 인도 국경에서는 48년 만에 양국 군대가 대치하는 일도 있었다. 인구 1억 명의 필리핀과는 우호적인 언사가 오가다 남중국해 문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이 반복된다.

고려 문종이 1071년 거란의 군사압력을 무시하며 송나라와 국교를 맺은 이래, 948년 동안 고락을 함께 한 친구의 존재는 더 없이 소중한 때일 텐데, 중국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한국뿐만 아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시대에 특히 강조되는 ‘일대일로’ 역시 그 수혜국들이 사실은 수혜국이 아니라 재정적으로 종속국이 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남의 백성 또한 내 백성처럼 안위를 염려하는 천자 본연의 왕도는 국력이 남아돌아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 왕도를 갖췄기 때문에 천자는 남의 백성들로부터도 존경심을 얻어 그 지위를 수 천 년 동안 잃지 않았었다. 천자들과 함께 출발했지만 주변민족에 힘만 과시하다 응징을 받고 훨씬 일찍 퇴장한 로마 시저들과 달랐던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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