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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물리쳤듯 코로나 재확산도 막을 것이다
정유재란 물리쳤듯 코로나 재확산도 막을 것이다
  • 장경순 기자
  • 승인 2020.05.26 1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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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난의 초기 단계에서 얻은 교훈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요즘 케이블TV로 시청하고 있는 1985년 '임진왜란'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컴퓨터 그래픽 기술도 없어서 미니어처 거북선과 판옥선을 만들었던 35년 전 작품인데도 드라마 수준과 사극으로서의 역사적 고증이 매우 충실하다.

무엇보다 전대미문의 국난을 맞아 극심한 좌절에 빠졌던 온 나라가 체계를 수습해가면서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 지금 세계적 상황에 비춰 시사하는 점이 대단히 크다. 특히 한국이 코로나19 바이러스 발생지 중국 바로 다음으로 전염병 확산에 맞서 싸운 상황은 전대미문의 15만 적병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무섭게 한양으로 치고 올라오던 때와 형세가 비슷했다.

역사 속 조상들에게 감정이입을 해 보면, 국난이 최초 발생했을 때의 두려움이 가장 먼저 찾아온다. 그 다음으로 간접 경험하는 것이 두려워하지만 말고 땅을 박차고 일어서게 만드는 분노다. 이리해서 어느 정도 나라의 운명을 지킬만하게 됐다 싶을 때 성취감과 완전히 적을 분쇄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하지만 이 갈림길에 오래 서있는 것을 허용치 않은 것이 임진왜란 발발 5년 후의 정유재란이다.

그러나 또 다시 쳐들어온 14만 적군을 맞이하는 조선의 대비태세는 예전과 달랐다. 일본군은 평양과 함길도까지 북진하던 5년 전의 전과는 꿈도 못 꾸고 남해안 일대에서 공방만 벌이다 다음해 완전히 물러나고 말았다.

정유재란의 전황이 임진왜란 직후와 달랐던 것은 조선의 백성들과 조정이 국난에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춰놓고 이를 맞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우리가 또 다른 바이러스 확산에 대비해 싸우고 있는 형편이 이와 비슷한 데가 있다.

하지만 최근 수도권의 감염 사례는 여전히 국민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우려하면서 지켜보고 있다는 점에서는 지난 1월 처음으로 이 병이 퍼져나갈 당시와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정유재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 활약을 다룬 영화 '명량' 포스터. /사진=뉴시스
정유재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 활약을 다룬 영화 '명량' 포스터. /사진=뉴시스

연일 지속되는 이른바 '이태원발' 감염과 '신천지발' 감염은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일부 감염자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서 문제가 심각해졌다는 점. 둘째, 한 사람의 잘못된 정보가 엄청나게 많은 감염사례로 이어졌다는 점. 셋째, 허위정보나 정보제공을 거부한 행위는 곧 당국에 의해 밝혀졌다는 점이다.

지금 여러 단계 감염사례가 나타나고 있지만 중요한 점은 방역당국이 모든 단계의 사례를 다 찾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에서는 이러다가 당국의 파악능력도 한계에 이를 것으로 우려하지만, 또 한편에서는 오늘날의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낙관론을 펼친다.

분명한 사실은 모든 구성원들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면 몇 배나 더 효과적인 대응을 할 수 있으며, 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더라도 얼마 안지나 사실이 밝혀진다는 점이다.

클럽 입장할 때 허위 전화번호를 적었어도 인근 기지국에 보관된 정보를 통해 이를 밝혀낼 수 있다. 일부 유럽국가의 제도는 이러한 조치에 대한 거부감을 담고 있다. 그러나 공공의 보건이 심각해진 현실에서는 전통적인 프라이버시에 대해 이견이 등장하고 있다.

민주적 감시사회 체제에서는 예전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전염병 확산에도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조금 범위를 좁히고 구체적으로 언급한다면, 어떤 점잖지 못한 경로로 감염이 됐더라도 최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게는 지나친 불이익이 없어야 하며 최대한의 배려가 부여돼야 '민주적 감시사회'를 가장 효율적으로 가동시킬 수 있다. 감염 자체보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행위를 공동체에 반하는 것으로 간주해 더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지금은 프라이버시를 다소 희생하더라도 공공의 안전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방침에 누가 감히 맞설 수 없다. 이런 주장을 펼쳤다가는 격분한 모든 사람의 분노를 한 몸에 감당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숙한 공동체는 모든 일에 지나침이 또 다른 화를 만드는 것을 피해야 한다.

공공의 이해를 위한 불가피한 사생활의 침해라면 그것이 정말로 공공의 이해를 위해서만 이뤄지도록 철저히 제도적, 기술적 안전장치를 마련해 둬야 한다.

이렇게 막강한 정보통제 장치가 마련되면 그때그때의 위정자가 자신의 정치적 편의를 위해 이를 함부로 남용하는 일을 막는 것이 민주적 감시사회의 근본조건이다.

또 한편으로, 민주적 감시사회가 필요로 하는 보다 더 정확하고 보다 더 신속한 정보 파악을 위한 기술, 그리고 해당 업계의 개발은 경제성장 엔진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비롯되는 부가가치는 참으로 막대해서 고용 없는 성장을 하게 될 미래 사회를 지탱해 줄 대들보가 될 수 있다.

기술의 개발은 오로지 더 훌륭한 정보파악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감시가 건전하고 민주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위협하는 정보 침탈자들을 물리치는 기술개발 역시 막대한 성장유발 요인이 된다. 여기에는 인문 사회과학의 연구도 함께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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