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돌려먹는 잔치라면 과연 기업의 스폰서가 타당한가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대한축구협회 게시판에는 팬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의견코너가 없다. 스포츠 또한 전문가의 영역이므로 어중이떠중이의 무분별한 댓글에 공간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의도인지는 모르겠다.

만약 축구협회가 순수하게 축구 동호인들만의 회비를 모아서 운영하는 곳이라면 무슨 짓을 마음대로 한들 누가 상관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축구협회는 1년 예산이 작게 봐서 500억, 크게는 1000억원이 넘는 곳으로 이 돈의 상당부분을 기업의 스폰서와 공공의 재정지원으로 충당한다. 프로축구 경기가 인기 폭발해서 중계권료와 부수 사업으로 대부분 충당하면 좋겠지만 아직은 현실이 따르지 못하고 있다.
 
▲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사진=뉴시스

기업이 축구협회를 스폰서 하는 건 국민들이 세계 수준과의 격차 따위는 상관없이 내 나라의 축구를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다른 종목에서 볼 수 없는 ‘축구=국가’라는 정서도 존재한다.
 
축구의 골수 팬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월드컵 때나 축구 보는 사람’이라는 조소를 하고 있지만, 월드컵 때라도 축구를 보고, 또 월드컵 관련 기사만은 찾아보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좋아하는 축구의 재정적 지원이 더 튼튼해지는 것이다.
 
사실상 이렇게 민심의 지원이 바탕에 있기 때문에 돌아가는 곳이 축구협회고 축구행정이다. 그렇다면 팬들의 의견 코너를 차단하는 따위의 궁색한 짓은 그만둬야 마땅하다. 욕먹는 게 두려워서 게시판도 차단하는 그런 협회임이 널리 알려진다면, 그런 협회를 지원하는 기업도 이미지의 역효과를 우려해야 할 일이다.
 
한국이 지난 브라질 월드컵에서 실망스런 성적을 내고 돌아온 후엔, 차기 대표팀 감독을 선임하는 문제로 축구 관련 커뮤니티가 달아올라 있다.
 
몇몇 기사에서 특정 내국인을 거론했더니 축구 팬들은 “또 그 X의 인맥이냐”며 격렬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외국인 축구감독을 선임해야 하느냐는 여론조사까지 실시될 정도로 유능한 외국인 감독 초빙이 축구팬들 뿐만 아닌 국민들의 시급한 희망사항이 됐다.
 
그러나 축구협회 쪽의 움직임은 국민 정서와는 아주 많이 달라 보인다. 새 감독은 외국인 초빙요구가 빗발치는데 자꾸 내국인 이름을 들이대는 형국이다. 누구 이름이 나온 들 지금은 고운 소리 듣기 힘든 지경인데 말이다. 홍명보 전 감독을 퇴진시키는 데에 있어서도 이리저리 빼다 더욱 무참한 사퇴를 하게 만들었던 협회다.
 
운동경기 감독을 여론조사 가지고 선임할 수는 없다. 전문적인 시각이 가장 중요하다는 건 뻔한 상식이고 원칙이다.
 
하지만, 한국 축구에서는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여태 축구 전문가들이 선정한 감독들이 최근 몇 년 동안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결과를 가져왔다. 승부란 승패가 교차하기 때문에 이기고 질 수 있지만, 지금 한국 축구의 초라한 꼴은 그런 승부의 속성 때문이 아니다.
 
상식으로 지킬 걸 안 지키고 파행을 자초하다 얻은 것이다. 그리고 그 상식에 어긋난 것들이 놀랍게도 축구세계에서는 전혀 생경하지 않은 집단정서임이 밝혀지고 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모르는 사람들은 입 다물어라’는 식으로 협회가 큰 소리 칠 형편이 전혀 아닌 것이다.
 
하지만 고집을 꺾지 않는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세상이 아무리 외국인 감독을 요구하고, 또 몇몇 잘 알려진 외국인들이 한국팀 감독을 자원하고 나서도 이걸 다 물리치고 축구협회 내부의 ‘끼리끼리’ 인사로 감독을 선임하는 방법은 있다.
 
이제부터 축구협회가 모든 외부의 지원을 사양하고 순수하게 협회 회원들만의 회비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럼 자기들 학맥 인맥대로 향후 100년의 감독을 미리 정해놔도 누가 함부로 간섭하지 못한다. 축구가 더 이상 국민들의 신경체계 내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완벽하게 그들만의 동호활동으로 돌아가면 뭐든지 제멋대로 해도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국민들의 존경과 마땅한 지원을 받고 싶다면 축구하는 높은 양반들의 태도부터 시급히 뜯어고쳐야 한다.
 
요즘 ‘축피아’라고 까지 하는 축구인들 사이의 인맥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감출 수 없는 지경이다. 지금처럼 처참한 상황에서도 또다시 ‘감독 연봉 8억원은 기어이 내 식구들끼리 차지해야겠다’는 식이라면 과연 이런 축구에 유수의 기업이 막대한 지원을 해야 되는지, 해당 기업들도 심각하게 재검토해야 된다. 파벌놀이의 ‘봉’노릇이나 하는 기업이 무슨 이미지로 고객들에게 파고들 것인가.
 
여전히 대한민국에는 돈이 부족한 곳이 많다. 스포츠계만 해도 따뜻한 밥 대접한번 못 받았어도 올림픽에 나가 장한 성적을 내고 오는 비인기 종목도 많다. 축구 지원 아니라도 돈 쓸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대대로 정씨 집안의 회장들이 축구협회장을 맡는 것도 좀 재고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의 돈을 안 받으면 그것처럼 홀가분한 처지도 없다. 뭐든지 내 멋대로 해도 된다.
 
남으로부터 땡전 한 푼 받는 순간부터, 이런 자유는 더 이상 없다. 그건 세상 불변의 이치다. 특히 그 돈이 국민의 혈세와 마찬가지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원래 축구선수들은 유럽이나 남미에 비해 턱없이 어려운 환경에서 이 나라 국민들에게 정말 어마어마한 감동을 줬던 사람들이다. 한 예가 지난 1991년의 남북 단일팀 청소년 축구다.

▲ 1991년 청소년축구 남북단일팀이 아르헨티나를 물리친 소식을 전하는 뉴스의 모습.

한국이나 북한이나 양쪽 모두 모처럼 세계 청소년 축구 본선에 진출했을 때다. 그런데 당사자 축구인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남북 단일팀 구성이 타결됐다. 그들에게는 이게 왜 청천벽력이냐 하면 남북한 모두 절반의 인력이 일자리를 잃는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남북단일팀이라는 민족역사의 더욱 큰 개념 앞에서 축구인이라는 소아를 과감하게 내던졌다. 책 많이 읽고 툭하면 민족지사처럼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이 때의 선수들처럼 ‘남북이 하나됨’의 감동을 실감시켜 준 사람은 드물다. 이 팀은 조별리그에서 축구의 강호 아르헨티나를 격파하고 본선 토너먼트에 올라가는 엄청난 승전보를 남북의 모든 겨레에게 안겨줬다.

축구만 하느라 책도 제대로 못 봤다는 선수들이 한 팀으로 만나서 곧바로 분단의 장벽을 허물어간 뒷얘기는 경기 결과보다도 더 감동이다. 이게 바로 이 나라의 축구선수들이다.
 
우리에게 수없는 감동을 안겨준 선수들이 축구 행정가가 돼서 펜을 잡고 나면 너무나 다른 사람이 돼 버린다. 지금 국민들은 그래서 화도 나지만 더욱 가슴이 아픈 것이다. 젊어서 영웅들이 왜 나이들면서 욕바가지 인생을 자초하는지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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