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자, 머크 등 거대 다국적 제약사들의 위세가 전만 훨씬 못하다. 국내 제약사들을 의약품 판매상이나 하청업체로 얕보던 기세가 한풀 수그러진 것이다. 최근들어 상호보완 내지 동반자로 여기기 시작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제약사가 개발한 복제약(제네릭)을 공급받아 자사의 오리지널 약품명으로 출시하는가 하면 토종제약사를 인수해 제네릭 비중을 높이고 국내시장 판권을 사들이기도 한다. 국내제약사에 일방적으로 특허 의약품을 팔기만 하던 지금까지의 패턴과는 정반대다. 어떤 면에서는 처지가 뒤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다국적사들이 개발한 블록버스터 의약품의 특허만료가 줄을 잇고 있는 반면 그 빈 자리를 메울 신약개발은 부진해 값이 싸면서도 약효가 우수한 복제약을 개발, 시장을 확대하고 있는 국내 제약사들과 경쟁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졌기 때문이다.

다국적제약사들이 생존을 위해 기꺼이 ‘갑’의 입장에서 ‘을’로 내려오는 것이다.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로 전세계 남성들에게 어필해온 화이자는 최근 국내 중소제약사인 서울제약이 개발한 필름형 발기치료약 ‘불티스’를 10년간 독점공급받는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오리지널 제약사에 역수출한 쾌거로 평가할만 하다. 원조 비아그라 메이커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화이자는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고개숙인 남자들에게 복음이던 비아그라의 한국산 제네릭이 쏟아져 나옴에 따라 화이자의 고개가 수그러졌다.

지난 5월 화이자의 비아그라가 특허만료되자 한미약품 대웅제약 CJ제일제당 등 국내 30여 제약사들이 복제약을 출시해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비아그라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세계 1위 제약사인 화이자의 연간 매출은 국내 1위 동아제약의 70배가 넘는다. 부동의 세계 1위 제약사로서 자사가 개발하지 못한 필름형 발기부전치료제를 공급받는 굴욕적인 계약을 맺을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세가 껶였다.

화이자의 비아그라는 알약밖에 없는데다 물질특허가 만료됨에 따라 비아그라 복제약에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그동안의 자만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비아그라 매출이 국산 복제약 공세에 밀려 반토막났다. 상반기 중 월평균 처방규모가 21억원 선이었는데 국내 복제약이 출시된 이후 처방액이 급감, 지난 9월에는 9억원규모로 줄었다.

최근 화이자측은 ‘복용 편의성’을 내세운 제형 다양화와 함께 제네릭 침투에 대한 뚜렷한 대안 마련이 없었던 상황에서 국내 중소형 제약사의 필름형 복제약을 비아그라 상표로 판매해야할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다.

미국계 다국적 제네릭 전문제약사 알보젠은 한국을 발판으로 아시아지역으로 복제약 판매사업을 확대하기위해 최근 연 매출 600억원대의 제약사 근화제약 지분 50.5%를 인수했다.

지난 10월엔 세계 제네릭 1위 기업인 이스라엘 테바사가 연 매출 1000억원대의 국내제약사를 인수한다는 설이 나돌면서 동국제약 한국유나이티드제약 휴온스 경동제약 이연제약 등 13개 중견 제약사들의 주가가 크게 출렁거리며 증시에 파문이 일었다.

테바가 한국시장으로 진출키위해 한독약품과 합작사를 세우기위해 접촉중인 것으로 확인돼면서 주가 널뛰기는 일단락됐지만 다국적사들이 국내 제약사들을 괄목상대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사례로 꼽힌다.

유럽계 다국적사인 사노피-아벤티스는 한미약품이 현재 임상 3상을 진행중인 고혈압-고지혈증 복합치료제의 한국내 판권을 사갔다.

미국의 다국적 제약사 MSD는 한미약품의 고혈압 복합신약 ‘아모잘탄’의 해외판매를 맡고 있다. 또 영국계 글로벌 제약회사인 GSK는 한미약품과 복합신약 공동개발 및 판매 계약을 체결했다.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국내 제약업체들의 위상변화다. 다국적 제약사들의 국내 판매상 역에 불과하던 국내 제약사들이 연구개발을 통해 세계 제약시장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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