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현대차에 외국인 지분 많다고 해서 '종속되는 것 아냐'

[초이스경제 장경순 편집장] 중국 춘추시대 수백개 나라 중에 꽤 유명한 나라가 기나라다. 국력은 정말 보잘 것 없는 약소국이 수 천 년 지난 오늘날에도 잘 알려진 것은 ‘하늘 무너지면 어떡하나’라는 걱정을 했기 때문이다. 기우(杞憂)라는 말을 만들어낸 바로 그 나라다. 기나라는 하늘이 무너져서가 아니라 땅위의 초나라한테 망했다.

중국의 민족이 통일국가로 통합돼 가는 과정이 춘추전국시대이니 기나라가 망한 자체는 크게 흉이 아닐 수도 있지만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걱정으로 에너지를 낭비한 일은 오늘날에도 측은과 냉소를 동시에 사고 있다.
 
요 근래 페이스북에서 일본의 유명한 사람이 썼다는 글을 보게 됐다. 이 사람 저 사람이 링크를 해서 처음엔 건너뛰다가 서너 번쯤 눈에 띄었을 때 한번 읽어봤다.
 
‘일본의 경제전문가가 본 한국의 경제구조’라는 제목을 갖고 있는데 상당수 사람들은 이 가운데 한국이 사실상 경제 식민지라고 지적한 부분에 충격을 받은 듯 했다.
 
핵심 논거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주요 기업들의 지분 절반 이상을 외국인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주주가 절반 이상 외국인이니 주주를 위해 경영을 해야 하는 주요 재벌들이 더 이상 한국을 위한 것이 아닌 외국인을 위한 기업이 돼서 한국은 식민지나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인터넷이나 블로그에 이리저리 떠다니는 말들을 언론인이 자신의 공신력을 동원해 일일이 대응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몇 년 전에 꽤 명망 있는 사람들이 썼던 논리라는 점에 나는 주목한다. 그때 그 얘기가 오늘날도 서민들의 온라인 공간에 나돌아 다니고 있으니 당시에 이런 문제를 어떻게 정리했는가를 독자들에게 전해드리려는 것이다.
 
처음에 소개한 일본인의 글은 사실, 신뢰하기 곤란한 숫자들이 눈에 뜨인다. 월급 88만원 받는다는 건 1998년 외환위기 직후 상황인데 16년이 지난 지금 ‘언제적 숫자’를 또 들고 나오는 건지...
 
그러나 주요 재벌의 외국인 지분이 50% 아니 70%를 넘는다는 건 실상에 어긋나지 않는 사실이다. 이게 그렇게 큰 문제라면 과연 병상에 눕기 전의 이건희 회장이나 건강한 정몽구 회장은 어떻게 매일매일 편한 잠을 잘 수 있었을까. 자다가도 전 세계 외국인 주주들이 합심단결해서 한국으로 쳐들어와 회사 경영권을 뺏는 꿈이라도 꾸면 어떻게 숙면을 취하나.
 
실제로 이런 걱정을 대단히 심각하게 한 사람들이 있다. 2004년 얘기인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지금의 새누리당) 남경필 국회의원(현 경기도지사)이다. 그밖에 유승민 나경원 등 정무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이 일제히 이와 같은 우려를 강하게 제기했다.
 
당시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이 공정거래법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재벌 보험사들이 자기 돈이 아닌 고객의 돈으로 대주주 일가의 경영권을 강화하지 못하도록 하자 한나라당 의원들이 일제히 일어나 ‘경제 안보’론을 주장하고 나섰다.
 
남경필 의원은 “돈을 들여 국방을 하듯이 주요 기업들의 경영권도 국방처럼 지켜줘야 한다”고까지 목청을 높였다.
 
그로부터 8년의 세월이 지난 2012년. 당명이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바뀌고 신분도 야당이 아닌 집권당으로 달라졌다. 3선에서 이제 5선의 ‘원로’급 국회의원이 된 당시 남경필 의원(현직은 경기도지사) 은 경제민주화의 간판 정치인이 돼서 재벌의 순환출자를 단속하는 일에 앞장서기도 했다.
 
연구에 기초한 정확한 숫자를 제시하지 못하지만 재계 안팎에서 체감으로 느끼는 바를 숫자로 옮겨 비유하겠다. 2004년 재벌 금융사 문제가 경영권에 30% 정도 심각한 문제라면 2012년의 순환출자 문제는 경영권에 70% 정도는 영향을 줄 폭풍 같은 문제였다.
 
순환출자로 없는 돈을 있는 것처럼 만들어서 재벌 회장의 1주는 7배 내지 15배 정도 부당하게 강한 의결권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다. 주주총회 지배력을 따질 때 금융사에서 몇 푼 동원하는 것은 새 발의 피에도 못 미칠 정도로 막대한 영향력이다.
 
30% 짜리에 벌벌 떨던 사람이 어떻게 70% 짜리 문제를 과감히 집적거릴 정도로 변모했을까.
 
외국인 지분이 50% 넘어갔다고 해서 한국 기업이 외국으로 넘어갔다고 펄쩍 뛸 일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바꾸어 질문하면 한국인 지분 30%나 50%는 그럼 철저하게 애국적인 투자자들인가.
 
그냥 묶어서 표현해 외국인이지 그 가운데는 한국과 일본보다 더 감정이 나쁜 국가의 사람들도 섞여 있고, 자기가 ‘미국인이 아니다’라는 점은 의식할지 몰라도 ‘한국인이 아니다’라는 점은 거의 한 번도 신경 쓴 적조차 없는 외국인투자자도 무수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한국만을 표적으로 하는 ‘외국인 연합’을 결성해 이건희, 정몽구 회장에 맞선다는 건 경제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얘기다.
 
오히려 이런 유치한 논의가 한국의 투자환경을 상당히 적대적으로 왜곡시킨다는 점이 더 심각하다.
 
한국 기업에 투자한 외국인들은 더 큰 기회를 내다보고 그 당시 여러 가지 리스크를 감수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자본을 형성해서 더 과감한 연구개발 투자도 했기 때문에 오늘날의 국제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이 됐다. 위험을 감수한 이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이 배당이나 시세차익인데, 이것을 자본의 유출이라고 적대감을 내세운다면 앞으로 누가 한국 기업에 투자할 것인가.
 
몇 년 전의 편협한 시각이 아직도 본업에 충실하는 많은 친구 분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듯해서 몇 글자 적어본 것이다. 

사족: 혹자는 지난 2003년 SK-소버린 사태를 외국인 연합의 한국 침공 사례라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정말로 한국침공이었다면 공격 대상이 SK에만 그쳤을리 만무하다. 당시 SK는 사주의 비리, 취약한 순환출자에 따른 M&A 공격 취약성 등 투기펀드가 지나칠래야 지나칠 수 없는 사냥감이었다. 몸에 피를 흘리면서 아프리카 초원을 지나가는 사람을 하이에나는 한국인인지 미국인인지 구분안한다. 상식있는 사람은 그런 바보같은 짓을 하지 않는다. 2003년엔 치명적일 뻔하게 멍청한 짓을 한 사람이 유감스럽게도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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