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동 한전 부지에 담겨있는 서울 올림픽의 기억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이번 아시안게임이 어떻게 개막식부터 좀 뒤숭숭하게 시작을 했는데, 26년 전 88올림픽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개막식 논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국민들이 기대했던 것은 주최국으로서 아시안 커뮤니티 전체에 감동을 줬으면 하는 것이었다.

최근 뉴스에서 88올림픽을 생각나게 하는 또 하나가 있다. 삼성동 한전 부지다. 현대자동차 그룹이 엄청난 돈을 투자해 매입하게 된 곳이다.
 
▲ 서울 삼성동의 한전 부지. /사진=뉴시스
 
1987년부터 18개월의 단기사병 근무를 했던 나는 군복무 대부분을 88올림픽 지원요원으로 근무하는 엄청난 행운을 누렸다. 그때 내가 근무한 부서가 기자촌국이다. 언론과 첫 번째 인연을 갖게 된 것이 88올림픽이었던 것이다.
 
88올림픽의 기자촌은 지금의 서울 오금동 선수촌 아파트의 일부다. 그러나 이 곳을 기자촌으로 가동한 것은 대회 개막하기 석 달 쯤 전 부터고 이전 대부분의 시간은 조직위원회 건물에서 보냈다. 원래 1개 국으로 운영하다가 기자촌 현장으로 전개하는 시점에서 기자촌 운영본부로 확대됐었다.
 
24회 하계 서울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지금의 방이동 올림픽회관에 있었는데 시설이 좁아서 일부 부서가 삼성동 한전 별관에 나가 있었다. 내가 근무한 기자촌국도 별관 근무부서의 하나였다. 이 건물을 86 서울 아시안게임 때는 메인프레스 센터로 써서 조직위 사람들은 MPC라고 불렀다. 지금처럼 테헤란로에 무수한 건물이 들어서기 전, 곳곳에 공터가 널려 있던 시절이다.
 
우리 지원 대대는 1987년 5~6월 입대자 150명으로 구성됐다. 서울올림픽에 100명, 장애자올림픽에 50명이 지원을 나갔고 1개과에 1명씩 배치됐다.
 
5000년 역사에 다시보기 힘들 군복무 특과 중의 특과였던 것은 분명하다. 그럴수록 지휘관들은 완전히 군기가 이탈하는 일이 없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해서 한 달에 한 번씩 성남 본부에 들어가 군인의 본분을 되새기는 한바탕 얼차려 교육도 받기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조직위원회 안전관리 부서에서도 우리가 시내에서 눈살 찌푸리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일정한 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이 부서 국장이 우리를 모아놓고 몇 가지 주의사항을 준적도 있다.
 
아침저녁 점호도 빠지지 않았는데, 조직위에서 제공한 운동복을 입고 올림픽 공원 인공호수를 매일 구보한 것은 지금 생각하면 엄청난 호사였다. 기간병장 지휘 하에 일사불란하게 군가도 불렀는데 일반인 방문객이 없는 아침시간이니 가능했을 것이다.
 
점호 후에는 부대의 버스를 타고 한전 별관으로 이동해 근무부서에 투입됐다. 우리가 아침 점호를 마치고 부서에 도착했을 때는 조직위 직원들이 모여서 아침체조를 하고 있었다.
 
1988년 5월 한 달은 아직 현장 전개를 하지 않았지만 대회가 너무나 임박해 본부 출근을 안 하고 삼성동 별관 자체 점호를 했다. 군복무의 본분은 여기서도 여전해서 선임병 인솔 하에 삼성동 아침 골목을 구보했다. 지금 삼성동에서는 20대 젊은이 50명이 아침에 단체로 뛰어다니기 좀 곤란할 것이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특히 본분을 잊지 말자고 다짐 또 다짐하는 경향이 있어서 일을 열심히 하는 티를 좀 냈던 모양이다. 덕택에 우리 부서 직원들의 열렬한 지원으로 여태껏 생애 유일한 상훈이라고 할 수 있는 박세직 올림픽 조직위원장 표창을 받았다.
 
복사는 말할 것도 없고 기자촌국에서 근무하게 될 1000여명의 자원봉사자, 공공기관 지원요원, 용역요원에게 발송하는 편지 겉장을 1주일에 두 세 번은 전부 내가 만들었다. 워드 프로세스조차 없던 시절이라 일일이 볼펜으로 노란 편지봉투에 손으로 썼다. 팩스도 드문 시절이어서 본관과 삼성동 별관 사이를 하루 두 세 차례 왕복하는 봉고차를 타보면 조직위 말단 직원 절반, 우리 부대원이 절반이었다.
 
그 때 별관 2층을 기자촌국하고 같이 쓴 곳이 개폐회식국이다. 한전 별관에 나와 있던 부서 가운데 사업국 다음으로 가장 비밀이 많았던 곳이다. 개막 한 달 전 개회식 예행연습의 시나리오를 본 적이 있는데 그 내용도 나중에 실제 개회식과는 참 많이 달랐다. 그렇게 철저하게 보안을 지켜야 마땅한 곳인데, 이번에 최종점화자가 어이없는 실수로 누설됐다니 참으로 맥 빠지는 얘기다.
 
나중에 국회 출입기자가 됐을 때 국회에서 박세직 전 조직위원장을 만난 적이 있다. 내가 건넨 명함에는 박 전 위원장이 절대로 좋아하기 힘든 당시에 ‘친노’매체라고 알려진 회사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름의 조촐한 ‘올림픽 리유니언’을 매우 반가워하고 있었다. 그가 작고하기 4년 전이다.
 
말단의 스탭이었던 우리들한테 올림픽을 생각나게 하는 곳은 경기장이나 선수기자촌보다 삼성동 한전 별관이다. 이 곳을 현대자동차그룹이 가져간다고 한다.
 
이 곳의 잠재성만 본다면 땅을 매입하는데 들인 10조5000억원 이상의 가치를 크게 뛰어넘을 곳이라고 본다. 다만 기업은 그때그때 기회비용의 최적화를 이뤄내야 한다. 이렇게 막대한 돈이 한동안 묶이는 형태를 견뎌내기는 전 세계 굴지의 기업 그 어디라도 힘들 것이다.
 
설마 여기다가 자동차 공장을 짓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발상은 서울의 강남 강북 격차를 해소(?)하는 데만 상당한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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