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답은 대학평가 순위표가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

▲ 출처=고려대학교 홈페이지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고려대생을 시작으로 일부 대학에서 중앙일보의 대학 평가를 거부하겠다는 뉴스가 있었다.

이렇게 나선 학생들에 대해서 먼저 이의를 제기한다. 주로 그동안의 세칭 명문대생들이 대학 서열화를 조장하는 평가를 거부하겠다는 건데, 이들 학교는 중앙일보 평가가 시작되기 수 십 년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대학 서열의 상위 학교들이다.
 
대학 서열화의 혜택을 긴긴 세월 누려오다가 고착화된 서열이 흔들리자 반발하는 듯 한 모습을 보이는 건 이들 학생들의 설득력을 크게 떨어뜨린다. 학생들의 주장을 진정성 있게 보여줄 참 지식인 운동이 되살아나기를 촉구한다.
 
그런데 이 글에서 진짜로 얘기하고 싶은 대학은 대학 평가 거부에 나섰다는 얘기가 전혀 들리지 않는 학교다. 성균관대다. 우선, 이 글 쓰는 사람이 이 학교 졸업자라는 사실을 미리 얘기한다.
 
▲ 출처=성균관대학교 홈페이지
성균관대학교의 재단은 삼성그룹이다. 세간에서는 중앙일보가 삼성과 인적 관계가 깊은 곳이어서 대학평가에서 매번 성대가 후한 점수를 받는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고려대가 중앙일보 평가를 불신하는 이유라는 얘기도 있다.
 
그게 사실이라면 동문 대통령을 배출한 학교가 정권 임기 중에 서울대나 연세대를 제치자는 것과 비슷한 매우 한심하고 멍청하며, 전혀 성공을 거둘 수 없는 바보짓임을 강조한다.
 
외국의 사례에서 보듯, 대학 평가가 공신력을 얻으려면 수시로 대학의 종합순위, 전공별 순위가 변해야 한다. 만약 성대 아니라 서울대 등 그 어느 대학이라도 줄곧 붙박이 순위를 유지하는 그런 조사라면 학생들이 거부를 논하기 전에 이미 ‘대학 평가 시장’에서 그저 그런 특별히 정보 될 것도 없다는 혹평을 면치 못하고 사실상 퇴출되고 말 것이다.
 
1990년대 미국 대학 평가의 예를 들자면, 버클리나 UCLA가 아닌 다른 UC 캠퍼스와 칼텍과 같은 대학들이 부상하고 아이비리그의 대학이나 전통 명문 중의 명문 미시간이 크게 부진했던 것처럼 ‘절대 명문은 어디에도 없다’는 원칙이 전제돼야 힘 있는 대학 평가가 성립한다.
 
그래서 대학 평가의 순위 조작을 우려하는 분들에게는 “절대 그럴 일은 불가능하며 행여 한해 정도 교란이 있더라도 조만간 만물은 제 자리를 찾아가게 마련”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래도 SKY 장벽에 좀 맺힌 것이 있어서...
 
한국 사회 개혁을 가로막는 폐습 중 대표적인 것이 “팔은 안으로 굽는다”라지만, 솔직하게 성대 출신으로서 소위 3대 명문대의 장벽을 좀 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없을 수는 없다.
 
사실 내 또래는 성대 나왔다고 큰소리치기가 조금 조심스런 요즘이다.
 
내가 재학한 시기는 1984~1992년이다. 1981년 삼성그룹이 성대 재단에서 손을 떼고 1996년에 돌아왔으니 내가 다닌 동안은 단 하루도 삼성그룹과 전혀 상관이 없었다. 1981년부터 후기에서 전기로 전환되면서 성적 떨어지는 후배들이라고 선배들에게 눈총도 받은 세대다. 그래도 우리는 학교에 대한 정체성을 비로소 단단하게 세운 세대라고 주장한다.
 
1996년 삼성이 돌아오면서 의대도 생겼고 제반 위상이 크게 신장된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이참에 소위 ‘SKY’라는 장벽을 깼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안 들래야 안들 수가 없다.
 
그런데, 이런 희망과 달리 ‘넘사벽’은 더 단단해지지 않았냐고 절감하는 계기가 있었다.
 
 
고려대생들의 이건희 명예박사 반대 시위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2005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고려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날, 고려대생들이 반대시위를 벌였다.
 
고려대 교수들은 ‘불미스런 사태’ 운운하며 보직교수들이 일괄 사표를 내는 ‘생쇼’를 벌이기도 했지만, 내가 취재해 본 바로는 불미스런 점이란 이건희 회장이 들어선 건물 셔터가 일부 휘었다는 점만 확인이 됐다. 이것은 학생들 시위를 본 이 회장의 수행원들이 성급하게 셔터를 내리는 바람에 일부 학생이 여기에 매달린 때문이라고 했다. 물리적 충돌이란 말을 갖다 붙일 정도의 충돌은 확인된 것이 없었다.
 
유명 인사들이 대학을 방문했을 때 찬반 시위가 벌어지는 건 지금 세계에서 이건희 회장만의 일도 아니다. 유학도 갔다 와서 충분히 알만한 교수들이 이런 천박한 호들갑을 떤 것은 고대 잠재력에 보탬 될 일도 아니다. 당사자인 이건희 회장은 “개의치 않는다”고 할 뿐이었다.
 
그러나 성대출신 기자 눈에 돋보였던 건 고려대생들의 할 말은 하는 결기였다.
 
이미 그 때 성대에서는 삼성을 비판한 기사 때문에 교지가 회수되는 일이 더 이상 새롭지도 않은 형편이었다. 우리 시대, 군사독재를 깨는 일이라면 선봉을 다투던 두 학교인데, 지나온 세월동안 이렇게 전혀 딴판인 학교가 됐다.
 
최근에는 세월호 간담회를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성대 측이 불허했다고 한다. 이런 일련의 일들이 재단인 삼성그룹의 방침인지, 대학의 본질에 전혀 무식한 ‘알아서 기는’ 일부 교직원들의 독단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대학이 ‘정치적이다’ ‘재단에 비판적이다’라는 이유로 담론에 벽을 친 후유증은 냉정하게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정말 SKY 아성에 도전할 포부가 있기는 한 건가
 
대학이 다른 고급 기술학원과 다른 건 시대정신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바쁜 세상 무슨 쓸모없는 고담준론이냐고 하겠지만, 우리가 모델로 삼는 미국에서도 아무리 머니게임으로 대학 순위가 부침하면서도 역시 바탕에는 대학의 자유정신이 깔려 있다. 자본도 확충되고 신입생들의 학력 수준, 재단의 유형 무형의 지원 등 모든 조건을 다 갖췄는데도 학교 위상에 변화가 없다면 자유정신이 실종된 대학은 아닌지 돌이켜봐야 한다. 4학년 졸업생이 배운 것 가운데 기업 실무에 곧바로 갖다 쓸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다. 기업이 대학 졸업생을 채용한 건 그 안목의 깊이를 내다봐서지 지금 당장 갖고 있는 지식주머니 때문이 아니다.
 
스탠포드 대에서 1993~1995년 학교에서 가장 권위 있는 메모리얼 처치에서 연설한 사람은 달라이 라마와 아이티의 망명지도자 베르트랑 아리스티드였다. (아리스티드는 훗날 복권돼 불명예스럽게 퇴진했지만 이 당시 그는 군부의 박해로 쫓겨난 민선 대통령이었다.) 외교적으로는 두 사람모두 매우 부담스럽고 대단히 정치적인 사람이다. 학교는 이렇게 부담스런 인사들에게만 가장 권위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반전운동이 휩쓸던 1960년대 유명한 포크가수 존 바에스의 당시 남편이자 스탠포드 학생회장이던 데이빗 해리스는 교내 화이트 플라자에서 징집거부 투쟁을 주도했다. 그의 투쟁이 담겨있는 화이트 플라자는 지금도 스탠포드 구내서점 앞에 그 모습을 지키고 있다. 이곳에서 지금은 한인학생들의 사물놀이 등 다양한 활동이 펼쳐진다.

한국인들에게 이미지가 별로인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 국무장관이 스탠포드 교수시절 보직에서 해임된 적이 있다. 그를 복직시킨 건 라틴계를 중심으로 한 학생들의 거센 반대였다. 오늘날 그는 다른 대학 졸업식에 연설하러 갔다가 이라크 전쟁 전력 때문에 학생들로부터 거부되는 처지가 됐다. 정숙한 면학에만 익숙한 사람들한테는 적응 안 되는 얘기겠지만, 대학은 이렇게 소란을 통해서 성장하는 곳이다.
 
버클리만 데모를 많이 해서 위상이 떨어지고 스탠포드는 전혀 분위기가 다르다고 하는 건, 틀려도 아주 틀린 얘기다.
 
사회과학을 하는 사람치고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연구소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네오막시스트들의 본산이기도 한 이곳은 나찌 정권에서 폐쇄됐었다.
 
이것을 제2차대전 후 다시 살려낸 것은 대학보다도 프랑크푸르트 시 당국이다. 동독도 아닌 서독의 시 당국이 이런 좌파학자들을 다시 초빙해 예전의 명성을 되살려주기를 요청했던 것이다.
 
물론, 1960년대 폭풍의 시기에 깊게 관련된 연구소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긴 역사적 관점에서 극히 짧은 혼란의 시기일 뿐, 암마인 연구소는 오늘날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명성을 단 하나 단어로 설명해 주는 위대한 과학의 훈장이 됐다.
 
시대의 과실과 고난을 함께 하지 않는다면 대학의 성장판은 완전히 막혀 있는 것이다. 그런 대학은 고급 기술전문 학원이나 다를 바 없다.

 
일제 강점기 친일 경학원으로 성대 실종, 심산 선생의 성균관 회복
 
일제 강점기 식민정권이 성균관을 경학원으로 전락시킨 것도 독경만 하고 연구와 학문적 고민은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걸 깨부수고 친일 유학자들을 몰아내고 원래의 성균관을 부활시킨 분이 심산 김창숙 선생이다.
 
만약 성대생들이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전혀 무관심하고 칼큘러스 공학 책이나 냅다 파는 대학을 원한다면 사실 그들은 일제 식민도배들과 근본적인 차이가 별로 없는 사람들이다.
 
전 세계 대학 역사에서 사상 통제를 하면서 일류대학으로 발돋움한 사례는 한 곳도 없다. 있더라도 오래지 않아 자유정신을 존중하는 다른 대학들에 밀려 특수 교육기관으로 변질되거나 아예 사라져버리게 된다. 이렇게 된다면 기업이 굳이 막대한 자본을 들여 경영을 맡을 이유도 없어진다.
 
삼성과 성대의 시너지가 제대로 작렬하는 순간을 상상한다면, 성대 교지에 여태 그 누구도 접해 본 적 없는 삼성과 같은 거대 경제주체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게제 되는 때다. 이걸 들고 거리에 나가서 데모하라는 그런 자료가 아니라, 당대의 석학들이 함께 모여 고민할 만한 그런 획기적인 연구의 토대까지 제공하는 냉정한 고민을 의미한다. 건설적 토론의 결과물은 삼성의 싱크탱크들도 공유해 가게 마련이다.

S대 K대 Y대를 제치는 순위 파괴는 이 때부터 가능해진다. 본질을 틀어막고 신문사 평가순위나 끌어올린다고 바뀌는 게 대학 위상이 아니다.
 
교수들이 “그런 기사 쓰지 마”한다고 해서 입을 닫는 학생들이라면 명문대로의 발돋움은 일찌감치 포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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