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총재 옆 부총재 자리를 지킨 막후의 사연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2006년 서울 명동에 있는 서울외국환중개에 취재를 갔었다. 이때 기관장은 한국은행 부총재보를 지낸 이승일 사장이었다.

그는 평생직장이었던 한국은행에서 ‘음지’의 업무만 맡았던 사람이다. 통화정책이나 조사업무, 국제금융 등 한은의 핵심이거나 각광받는 분야와는 거리가 먼 일들만 맡았다. 한은 내 그의 이력서는 대부분 총무, 인사 분야로 채워져 있다.

한국은행의 총무, 기획 분야는 권력은 없고 궂은일은 도맡아 해야 한다. 인사부가 권력을 휘두르는 회사도 있지만 한국은행과는 전혀 다른 얘기다. 노사 문제 뿐만 아니라 정부기관과의 업무협력도 포함돼 있다. 보통 회사 같으면 정부 앞에서 무조건 ‘을’ 노릇만 하면 될 테지만, 한은은 중앙은행의 존엄성도 지켜야 한다.

무자본 법인으로 정부의 예산 통제도 받으면서, 중앙은행의 독립적 위상을 확보하려면 상당한 스트레스도 받아야 한다. 정부보다도 더 ‘상전’ 국회를 상대하는 일도 해야 한다. 이승일 사장은 이런 일만 했었다. 거기다 1988년 군사독재 체제의 종식과정에서 한국은행 독립을 명문화하는 일에도 그는 상당히 앞장을 섰다.

2000년 고 전철환 총재가 그를 부총재보에 임명한 것은 한은 조직에 상당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은 임원은 잘나가는 부서 경력을 갖춰야 가능한 자리로 여겨졌는데 전 총재는 전혀 다른 선택을 했던 것이다. 총무 관리 분야 부총재보라면 이 분야 전문가라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3년의 임기를 마친 그는 2003년부터 서울외국환중개 사장으로 옮겨 있었다.

차 한 잔 대접받으면서 한국은행의 국회 의전에 관한 사연을 그로부터 들었다.

“부총재 자리를 앞에 놓는 것도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

한은이 국회 보고를 할 때는 총재 옆에 부총재석이 마련된다. 그러나 간혹 부총재 자리를 없애고 총재만 앞에 앉아야 된다는 주장이 나왔다는 것이다.

의전원칙에서 한국은행 총재는 장관에 해당하는 예우를 받는다. 정부 부처의 국회 보고 때 장관 옆에는 차관석이 마련되니 그 기준으로는 당연히 부총재가 총재와 함께 앞에 나와 앉아야 한다. 그런데 누가 이렇게 당연한 의전까지 트집을 잡았던 모양이다. 이유는 정식 정부기관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추측컨대, 말도 안 되는 시비지만, 기싸움이나 길들이기 차원에서 이런 도발이 간간이 있었던 모양이다. 오늘날에도 한은 부총재는 기획재정부 차관, 금융위 부위원장과 ‘카운터 파트’로 금융협의도 자주 갖는 위치다. 특히 한은법의 개정으로 부총재도 대통령 임명으로 바뀌어 그 위상은 더욱 공고해졌다.

국회의전에 관한 옥신각신도 꽤나 많이 겪었던 이승일 사장이 홀가분한 표정으로 “이제 내가 그쪽 사람들 상대할 일이 전혀 없으니”라고 덧붙였다. 한국은행을 떠났으니 이제 그런 일은 자신과 무관하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이게 사람이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전형적인 한마디가 됐다.

몇 달 있다가 그는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한국은행 부총재로 임명됐다.

원래 부총재로 유력했던 사람은 따로 있었다. 그 사람이 너무나 유력해서 2배수로 올라가는 다른 후보는 스스로를 ‘들러리’ 로 여기는 정도를 넘어 자신이 후보 중 하나인 점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러나 유력자가 얼마 전 수술을 받았다는 점이 청와대의 우려를 초래해 유력자가 탈락했다는 후문이다. 그래서 부총재가 된 사람이 이승일 서울외국환중개 사장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임명해 놓고 보니 오히려 구색이 딱 맞는 부총재 인사가 됐다. 당시 한은의 수장이 청산유수에 경제 분석의 달인이라는 이성태 총재였으니, ‘넘버2’는 ‘음지’업무의 전문가 이승일 부총재가 제격이었던 것이다.

아이러니는 이제 국회 상대할 일 없다던 그가 불과 며칠 만에 아주 높은 고위인사로 본격적으로 다시 국회를 상대하게 됐다는 점이다. 참으로 사람 일이란 내일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2006년 4월21일 그가 부총재가 된 후 처음으로 한은의 국회 업무보고가 열렸다. 이승일 부총재가 실무자 시절 ‘난관’을 극복하고 지켜낸 부총재 자리에 자기 자신이 앉는 날이 됐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일체의 정회 없이 재정경제위원회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이승일 부총재는 꼼짝 않고 자리를 지켰다. 이렇게 회의가 길어지면,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정도의 이석은 양해가 되지만, 그는 이 또한 미리 다 해결하고 왔다는 듯 자리에서 움직일 줄을 몰랐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는 것이다. 옆자리로 옮겨간 이성태 총재는 부총재 시절, 의원들의 호명이 없어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때도 있었다.

이것은 총재-부총재의 스타일에 따른 차이기도 하다. 달변의 이성태 총재는 부총재 시절에도 장시간 한마디 안하고 가만 앉아있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성격의 소유자다. 또한 당시 박승 총재가 말로 인한 많은 시비에 시달린 터라, 부총재의 적절한 훈수가 절실하기도 했다.

이에 반해 이승일 부총재는 옆자리 총재가 워낙 청산유수인지라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는 차이가 있었다.

회의가 산회한 후 어떻게 그렇게 바위같이 자리를 지켰는지를 물었다.

“어떻게 자리를 떠. 그리고 할 말이 있어야지.”

돌아오리라고 생각지 못했던 자리에 앉은 이승일 부총재의 소감이었다.

 

▲ 2008년 이승일 한국은행 부총재(가운데)와 장병화 정책기획국장(현 부총재. 왼쪽)의 모습. /사진=뉴시스

 

2014년 현재의 장병화 부총재는 스타일로 본다면 이승일 전 부총재보다는 이성태 전 총재에 더 가까워 보인다. 주요 경력도 이 전 총재와 같은 조사에 통화정책도 겸비하고 있다.

지난 7일 국정감사에서 장 부총재는 몇 차례 이주열 총재를 도울 태세를 보였지만, 이 총재가 워낙 조심 또 조심 답변을 하니 별다른 솜씨를 보일만한 계기는 없었다. 어찌됐든 지금 장병화 부총재가 앉아있는 자리는 이승일 전 부총재가 내외의 압력을 모두 물리치고 지켜낸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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