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감독 선임에 이어... 기득권 인사들에 대한 대중들의 적개심 드러나

▲ 김성근 감독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마침내 야구 팬들의 간절한 소망대로 김성근 감독이 한화 이글스 감독으로 프로야구에 돌아왔다. 유능한 감독이 돌아온데 대해 한화 팬이 아닌 사람들까지 환영하고 있는 것은 매우 특이한 현상이다.

앞으로 나의 팀을 무자비하게 이길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대 팀 감독을 환영하는 ‘김성근 신드롬’에는 야구나 스포츠 차원을 넘어선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이 깃들어있다. 공공의 임무를 맡은 사람들에 대한 극도의 불신이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믿지 못하고 재야의 탄압받는 영웅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이다.

김성근 감독이 최초로 프로야구 감독으로 경기에 나선 것은 1984년 개막전이다. 그가 맡은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의 전력 평가는 5~6위였다. 팀이 6개이던 시절이니 꼴찌 후보였다는 얘기다.

비록 원년 우승을 했다지만 에이스 박철순의 부상이 더욱 심각해졌고 무엇보다도 원년 우승의 지도자인 김영덕 감독이 전 시즌 끝나자마자 부잣집인 삼성 감독으로 말을 갈아탔다. 이에 대해 당시의 OB 팬들은 상당한 배반감을 드러냈다. 그해 막판 김영덕 감독은 자신의 옛 선수들과 팬에게 돌이킬 수 없는 진짜 배반을 저지르고 만다.

급격히 초라해진 OB는 개막전부터 전년 준우승팀 MBC 청룡(현 LG 트윈스)을 만났다. 전년 방어율 챔피언 하기룡에 맞서 김성근 감독이 내세운 건 신인 김진욱이었다. MBC의 절대 우세라던 경기는 신인 계투조 김진욱-윤석환이 이어 던진 OB의 완승이었다.

이게 모든 김성근 신화의 시작이 됐다. 꼴찌 후보 OB는 전기리그 막판까지 우승팀 삼성을 추격했다. 후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두 경기를 남겨 놓고 후기 우승으로 한국 시리즈 진출이 확실시됐다.

그러나 여기서 프로야구 사상 최대의 추태가 벌어졌다. 전기 우승팀 삼성이 OB를 탈락시키기 위해 일부러 롯데에게 두 경기나 져 준 것이다. 두 경기 모두 삼성이 초반 대량 득점으로 앞서 가던 상황이었다. 삼성의 김영덕 감독은 이렇게 자신의 지난해 소속 팀과 팬, 그리고 프로야구 전체를 모욕했다. 하지만 이런 추태는 한국시리즈에서 롯데가 기적적으로 삼성을 물리치면서 통쾌하게 정화됐다.

어찌됐든 김성근 개인에게는 깊은 한이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신화만큼이나 상상 이상의 수난이 그의 30년 감독 이력에 끊이지 않았다.

태평양 쌍방울 LG SK와 같은 팀들이 그를 감독으로 영입한 것은 팀 성적이 최하위권으로 추락했을 때다. 구단과 팬들은 그에게 상위권 아니더라도 절대 만만하지 않은 팀으로 만들어 주기를 기대했다.

그는 이러한 기대를 한 번의 조정기도 없이 바로 첫해부터 초과달성했다. 김성근이 맡은 팀은 모두 첫해 정규리그 상위권의 성적으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다.

한 때는 그에게 약팀에만 제격이란 평가가 있었다. 1991~1992년 삼성을 맡은 동안의 성적이 두 시즌 모두 준 플레이오프 진출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런 평가는 2007년부터 맡은 SK 와이번스를 세 차례 우승시키면서 싹 사라졌다.

하지만 그에게는 하나의 커다란 단점이 있다. 구단과의 관계가 껄끄럽다는 것이다.

그의 강한 승부욕과 선수에 대한 리더십이 구단의 방침과 충돌하면 일체 절충이 없이 그대로 충돌해 버린다. 이 때문에 하위 팀을 코리언시리즈에 진출 시켜놓은 직후에 해임되기도 하고 시즌 2위를 달리는 정규시즌 도중에 해임되기도 했다.

이러는 사이 그는 구단들로부터 상대하기 껄끄러운 사람으로 인상이 굳어진 모양이다.

야구팬들은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그가 야구계의 기득권 세력들로부터 부당한 불이익을 받는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번 감독 선임과정도 이런 의혹을 부추기는 데 일조했다.

한화의 감독 영입이 임박해지자 돌연 ‘내부승진이 유력하다’는 보도가 나왔다. 팬들로부터 김성근을 선임하라는 요구가 감출 수 없을 정도로 빗발치던 상황이었다.

이런 보도의 취재원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과가 나온 지금에 돌이켜보면 참으로 허탈한 장면이었다. 이 보도는 내부승진을 굳힌 것이 아니라 팬들의 김성근 선임 요구를 더욱 격렬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이 과정을 돌이켜보면 얼마 전 축구 국가대표 감독 선임과정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홍명보 전 감독이 물러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국내 인사 아무개 아무개 등이 유력하다는 보도가 나왔다. 축구팬들은 이런 기사에 대해 “간보기 하지 말라”며 강력히 성토하는 댓글을 쏟아냈다. 우물 안 개구리 짓하다 월드컵 참패를 겪었으면 이제라도 기득권 인맥과 무관한 외국의 유능인사를 선임하라는데 이른바 축구의 주류 세력들은 억지로 자기 식구를 들이민다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선임되면서 논란은 크게 가라앉았고 국가대표 축구팀은 지금 새로운 기대를 낳고 있다.

이런 현상은 야구와 축구, 스포츠의 차원을 넘어 지금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기층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단순히 일개 팀의 일이 아니다. 이런 소동이 곳곳에서 빈발한다는 건 한국의 대중들이 특정한 심리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쉽게 자극되는 것이다.

스포츠 판에서 벌어지는 일이 뉴스에서 보는 낙하산이니 하는 소동 그대로다. 회사를 위해서 필요한 인재는 따로 있는데 엉뚱한 인간이 부임해 온다. 다만 스포츠는 결과에 이르러 조금 더 상식에 흡사하는 경우가 더 많아 보인다.

문제는 공공의 시스템을 담당하면서 공적인 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대중들은 이들에게 극도의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과연 우리 사회가 공정한 사회냐는 질문에 대해 바람직한 대답이 나오기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무슨 문제가 있을 때마다, 공공기관이 내리는 유권해석은 다수 대중에게 불이익이 되는 논리들, 담당자들이 교묘하게 책임을 회피하고 사익을 챙기기 좋은 논리로 모자이크 돼 있다는 것이다. 공직자들은 여기에 대해 또 기상천외한 궤변으로 난처한 순간을 모면하려든다. “위법은 맞지만 불법은 아니다” “낙하산이지만 유능한 낙하산이다”라는 따위의 말투다.

사회가 이런 식으로 돌아가다가는 공정성에 대한 대중의 인내 한계점을 뛰어넘을지가 우려된다. 공정한 시스템에 대한 신뢰는 사회 안전망의 근본이다. 국민이 법을 믿기에 앞서서 이 사람은 누구 편이냐를 먼저 따져야 한다면 그 사회의 안전망은 이미 심각하게 훼손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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