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윈에 되돌아보는 관중과 제갈량의 전혀 다른 방법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공자(孔子)는 관중(管仲)을 좋아하지 않았다. 관중은 관포지교로 유명한 바로 그 인물이다. 제나라 환공을 도와 춘추시대 5패의 첫 번째로 군림하도록 이끌어준 명재상이다. 강한 국력을 앞세운 패도(覇道)의 인물이니 덕으로 천하를 포용하는 유학의 왕도(王道)와는 반대 이념이 된다.

그러나 공자가 딱 한 가지 관중을 매우 존경하는 점이 있다.

“관중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피발좌임(被髮左衽)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피발좌임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옷을 왼쪽으로 여민다는 뜻으로 당시 동북부 오랑캐(?)의 복식을 말한다.

관중이 오랑캐를 물리치지 않았다면 중국인들은 이들의 지배를 받아야만 했을 것이란 얘기다. 관중이 비록 패도의 인물이지만 중화의 강토를 보존해 준 공은 공자도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

그런데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이 피발좌임은 오랑캐가 아니라 우리 한민족 조상들의 옷차림이라고 강조한다. 산둥 일대는 원래 한민족의 기세가 더 강했는데 관중의 정벌로 인해 이 곳이 중국민족의 땅이 됐다는 것이다.

중국 사서에서는 이때의 전쟁을 제환공의 산융 정벌로 부르고 있다.

 

▲ 제군의 산융원정을 그린 김구용 열국지의 삽화.

 

주나라의 동쪽 끝 제후국인 연나라가 산융의 공격을 받자, 제환공은 제후들의 패자로서 산융 정벌에 나섰다. 생소한 땅에 지세도 험한 곳에서 제나라 군은 온갖 고초를 다 겪었지만 그때마다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과 같은 관중과 공손습붕의 지혜로 타개해 나갔다.

특히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 한해(旱海)라는 곳은 사람들이 시체를 버린 곳이어서 음기마저 가득해 사람이 살아서 나올 수 없는 곳이었다. 과연 제군이 이곳에 들어서자 싸늘한 안개 속에 귀신들이 울부짖는 가운데 병사와 말은 땅에서 솟아나는 독기에 쓰러졌다. 정말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몰라도 병사들의 마음은 이미 귀신의 포로가 돼 있었다.

관중은 즉시 행군을 멈추고 전군에 금과 북을 요란하게 두들길 것을 명했다. 소리를 통해 음기(陰氣)를 다스리고 또 흩어진 병사들이 다시 찾아오게 하려는 조치였다.

기세를 회복한 제군은 한해를 큰 피해 없이 한해를 빠져나갔다. 한해만 믿고 있던 산융은 뜻밖에 나타난 제군에게 대패하고 말았다.

정예한 군기로 귀신들의 요기(妖氣)에 맞선 사례다.

반면, 아무리 군대라 해도 귀신들에 맞서기 보다는 원한을 달래고 위로한 사례도 있다. 제갈량의 남만정벌이다.

맹획의 항복을 받아낸 촉한의 군대가 귀로에 올랐다. 노수(瀘水)를 건너던 병사들이 갑자기 독기에 감염돼 쓰러졌다. 제갈량은 이번 전쟁에서 희생된 원주민과 촉군의 원혼들을 달래기 위해 제사를 올렸다. 원래 현지 풍습에서는 산 사람의 머리를 써야만 했다. 그러나 제갈량은 밀가루 반죽을 사람머리 형상으로 대신했다. 이 고사는 만두라는 음식이 유래된 기원으로 알려졌다.

제갈량 또한 사실 여부를 떠나, 병사들의 공포심 속에 자리잡은 귀신을 상대해야 했던 것이다.

관중이나 제갈량이나 모두 원정에 성공한 훌륭한 군대지만 귀신을 대한 방식이 다르다. 이는 두 군대의 처한 상황이 다른 때문으로 보인다.

관중이 한해를 통과할 때는 아직 전쟁이 진행 중이었다. 제나라 군대는 정예한 군기를 유지한 채 싸움을 지속하고 있었다.

반면, 제갈량의 촉한군은 남만 평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당분간은 누구를 살상하겠다는 날카로운 기세와 나라를 위해 죽음도 불사한다는 생사 초월의 충성심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복무기간을 마치고 가족을 만나러가는 들뜬 발걸음이었던 것이다.

싸움에 임하는 군인은 인간 본연의 심정인 죽음에 대한 공포마저 잊고 있는 상태다. 생사를 초월해 있으니 이 세계와 저 세계의 경계선에 스스로를 얹어놓고 있는 것이다.

사람에게 귀신이 두렵고 섬뜩한 것은 저 세계의 기운을 몰고 오기 때문이다. 돕기 위해서 나타난 귀신이라 해도 사람에게는 섬뜩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하지만 나라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움에 임하는 군인들은 사지(死地)를 불사한다. 한해에서 관중이 군기를 앞세워 음의 기운을 다스린 것은 이런 이치일 것이다.

지난 금요일, 고속도로가 한남동으로 진입하는 부근부터 극심한 정체를 보였다. 이 정체는 한남대교를 지나도 풀리지 않다가 장충동 약수동으로 갈라지면서 해소됐다. 이태원으로 몰린 인파로 인해 고속도로까지 막혔던 것이다.

이날은 미국에서 어른들도 귀신 복장을 하고 노는 할로윈이었던 것. 매년 10월31일인데 올해는 주말과 겹쳐서 특히 인파가 넘쳐났다. 재미난 귀신복장을 한다는 것이 한국인들의 구미에도 잘 맞는 풍습이라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는 듯하다.

혹자는 외국 풍습이라면 덮어놓고 받아 들이냐는 쓴 소리를 한다. 그러나 우리도 즐거워할 만한 것이면 굳이 배척할 일도 아니다. 사월초파일이나 크리스마스, 그리고 9월28일의 공부자탄강일도 굳이 따지면 모두 외국에서 시작된 명절 아닌가.

할로윈 인파로 틀어 막힌 길을 헤쳐 나오다보니 예전 책에서 귀신을 상대한 명장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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