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물 욕심이 정치적 의심을 막아준 사례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비장한 원정군의 출정식에 진나라 왕과 원정 사령관 왕전이 나란히 섰다.

공격 목표는 초나라. 지금까지 싸웠던 한 위 조와는 차원이 다른 강대국이다. 초나라를 무너뜨리면 중국 통일의 90%를 이룩하게 된다. 하지만 너무나 막강한 상대다.

천하의 최정예 진나라 군대지만 상황이 별로 좋지는 못했다. 이신이라는 젊은 장수가 초나라 정벌에 먼저 도전했다가 크게 실패했다. 패배를 모르던 진군의 기세가 크게 꺾이고 말았다.

이신의 젊은 기세를 너무 믿었다가 실패한 진왕은 역전의 노장 왕전에게 다시 한 번 원정의 대업을 맡겼다. 이신의 정벌 때보다 세배나 많은 병력도 동원했다. 진나라 전군을 맡긴 셈이다.

출정하기 직전 왕전이 임금에게 청을 올렸다. 혹시 돌아오지 못할 경우 후사를 부탁하는 건 아닐까.
 

▲ 진시황제를 그린 김구용 열국지의 삽화.


평생 충성을 바친 노장이 최후의 전투에서 돌아오지 못한다면 가장 높은 예우로 그를 장사지내고 자손들에게 높은 지위를 세습시켜 주겠다고 약속하리라. 이런 요구라면 문제될 것도 없다.

그러나 만약, 초나라 원정에 성공해 그 곳에 별도의 속국이라도 세우겠다는 청을 해오면 어찌하나. 이것은 진나라 통일 정책에 어긋나는 것이다. 진은 이제 주나라 시대의 봉건국들을 없애고 점령지를 군현으로 통합하고 있다. 그래도 승리가 중요하니 일단 청을 들어 주겠다 해야 하나. 군신이 한마음으로 승리를 기원하는 자리에서 복잡한 이해타산을 해야 할 지도 모른다.

왕전은 위풍당당한 갑옷 차림의 소매 속에서 어울리지 않는 목록을 하나 꺼내들었다. 거기에는 함양성 내 터가 좋은 고급 주택들이 적혀 있었다.

뜻밖에도 왕전의 요구는 이기고 돌아왔을 때, 이 좋은 집들을 상으로 내려달라는 거였다.

야전의 명장이 승패를 가늠 못할 무거운 자리에서 이런 실없는 요구를 하다니. 잠시 심각한 생각을 했던 진왕 자신이 머쓱할 지경이었다.

왕은 안도의 미소를 띠고 왕전을 위로했다. “걱정 마오. 경이 이기고 돌아오면 부귀를 그대와 함께 하리라.”

요구는 좀 실없는 것이지만 왕전의 태도는 의외로 심각했다. “저는 이제 늙었습니다. 제 자손들이 대왕의 덕을 입어 이 곳에서 살게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진왕은 마침내 큰 웃음까지 터뜨리고 흔쾌히 요구를 수락했다. 평생 싸움터만 다닌 노인네가 어떻게 저 땅들 좋은 줄은 알아가지고 하필 이런 근엄한 자리에서 얘기를 꺼내고 있을까.

원정군이 함양을 떠나 초나라 접경에 가기 전, 왕전은 함양으로 전령을 보냈다. 전령은 전황 보고 뿐만 아니라 “먼저 약속하신 땅과 집들을 꼭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왕전의 요청도 함께 들고 갔다.

옆에서 부관이 근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좀 해도 너무 하시는 거 아닙니까?”

진왕이 누구인가. 어려서 임금이 되자마자 대부였던 여불위를 숙청하고 모후를 감금시키고 모후가 낳은 불륜의 형제들을 직접 잔혹하게 살해한 사람이다. 냉혈한 권력의 화신이다. 이로부터 몇 년 후엔 호칭이 진시황제로 바뀌어 수많은 유생들을 생매장할 바로 그 사람이다.

국운을 걸고 전쟁을 하는 마당에 이런 무시무시한 권력자에게 땅 타령이나 하고 있다니. 아무리 명장이지만 너무 늙어서 분별력이 떨어진 것 아닌가.

왕전이 부관에게 말했다. “자네, 우리 대왕을 잘 모르지? 지금 진나라 전군을 몽땅 털어서 우리가 거느리고 있는 걸 대왕이 속 편하게 생각할 것 같은가? 대왕의 근심은 내가 요구한 땅들이 아깝다는 게 아니라 내가 행여 이 군대를 거꾸로 돌려 반역을 일으키는 것일세.”

“내가 땅 욕심이나 내는 사람이란 것을 잘 보여드려야 우리가 대왕의 의심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네.”

왕전은 초나라 군대를 크게 물리치고 초왕을 사로잡았다. 초나라 방위사령관 항연은 초왕의 동생을 추대해 저항을 계속했지만 왕전은 이마저도 물리치고 항연은 자결했다. 항연은 훗날의 초패왕 항우의 할아버지다.

왕전은 개선하자마자 모든 병권을 반납하고 약속대로 하사받은 땅으로 은퇴해 편안한 여생을 보냈다. 만약 왕전이 조금이라도 병권에 미련을 보였다면 그의 마지막이 이렇게 순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伴君如伴虎, 임금을 가까이 하는 것은 호랑이와 함께 있는 것과 같다

신하의 뜻이 드높아 임금보다도 훨씬 더 웅대한 그릇이라면 끝내는 임금의 의심을 사게 된다. 한나라의 명재상 소하가 자꾸 장안 백성들의 땅을 갈취함으로써 황제 유방의 의심을 모면한 것은 진나라 왕전과 같은 사연이다.

관포지교의 관중은 왕전보다 400여 년 앞선 시대 사람이다. 그는 제나라 환공을 도와 춘추5패의 첫 번째로 이끌었다. 그런데 관중의 사치가 또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마천은 사기(史記)에 관중이 삼귀(三歸)와 반점(反坫)을 소유했다고 기록했다. 삼귀는 세 명의 여인이란 설과 세 채의 누각이란 설이 있어서 어느 정도 사치인지 확실치 않다. 반점은 제후들이 회맹할 때 의식에서 쓰는 도구다. 오늘날 G20이나 아펙 정상회담의 최고급 의전행사에 쓰이는 기물을 대통령도 아닌 국무총리가 개인 재산으로 가지고 있었다는 얘기다.

고대 사회에서 의식에 쓰이는 물건은 지극히 신성한 것이어서 최고의 재료에 최고의 기술이 더해진다. 그 가치는 이루 말 할 수도 없는 것인데 국력이 중간 이상은 되는 나라만 갖출 수 있다. 그런 것을 제후도 아닌 신하가 개인 재산으로 가졌다니 제나라의 막강한 국력을 시사하기도 한다.

관중의 친구 포숙은 신하와 선비의 몸가짐에 철저한 사람이었다. 정책과 책략에는 친구 관중이 뛰어남을 잘 알고 전적으로 그를 신뢰했지만 신하의 도리를 벗어난 처신을 한마디 안할 수 없었다. 포숙은 관중을 찾아가 사치를 그만두라고 충고했다.

관중의 변명은 이랬다. “우리 임금께서 ‘사치한다’는 모든 비난을 혼자 받으시지 않도록 내가 그 비난을 나누어 받고 있는 것이네.”

오로지 정직함으로 살아온 포숙이 관중의 능란한 말솜씨를 당할 수가 없었다. 속으로만 ‘이 친구 뭔가 잘못 생각한다’고 한탄할 뿐이었다.

사치를 공유한 덕택인지, 관중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제환공의 신뢰를 잃지 않았다. 제나라의 간신 역아와 수초가 지속적으로 관중을 모함해도 제환공은 “너희가 나설 일이 아니다”라고 꾸짖었다.

재물에 대한 탐욕을 부림으로써 권력에 대한 탐욕을 제거하는 이치를 옛 사람들이 터득하고 있었다. 독으로써 다른 독을 해독하는 것이다.

재물에 연연하는 사람이라면 큰 뜻을 펼 만큼 많은 사람을 끌어 모으지 못한다. 탐욕스런 인물로 공인되면 정치적 야심을 가질 그릇이 못 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일부러 재물에 눈이 먼 사람인 척하면서 살아남은 사례가 오늘에도 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방법을 썼다가 오히려 명을 재촉한 사례도 있다. 청나라 옹정 연간에 정서대장군 연갱요는 옹정제의 의심을 받아 하루아침에 항주장군으로 좌천명령을 받았다. 그는 새 임지로 가는 길에 자신의 재산을 실어 나를 마차만 수 십 대를 동원했다. 탐욕스런 인물임을 스스로 드러내 큰 일을 도모할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보고를 받은 옹정황제는 부정축재 혐의까지 씌워 그에게 18계급 강등 명령을 내렸다. 장군에서 18계급이 강등되면 가슴이 ‘병(兵)’이라는 글자가 적힌 조끼를 입고 문지기 노릇을 하게 된다. 연갱요에게는 곧 이어 자살명령이 내려졌다.

탐욕을 가장하는 것은 야심이 드러나지 않았을 때만 유효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황제로부터 이미 정적으로 낙인찍힌 연갱요의 재물 욕 과시는 자신을 죽일 수 있는 편리한 방법만 알려준 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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