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공학적 타산과는 어긋나는 '해산'의 여운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1963년, 마틴 루터 킹 목사 일행이 백악관으로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찾아갔다. 킹 목사가 민권운동을 위한 영웅적인 20만 행진을 하기 직전이다.

케네디 대통령은 개인적으론 킹 목사에게 호감을 가졌지만 대통령으로서 입장은 또 별개였다. 대통령은 목사에게 산책을 제안해 둘 만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여기서 케네디 대통령은 킹 목사에게 “에드가 후버 FBI 국장이 당신을 치밀하게 감시하고 있다. 혹시 나중에 민권 운동에 악영향을 줄 공산주의자는 절대 가까이 하지 말라”고 귀띔했다.

1960년대 미국은 매카시즘, 후버 국장의 공안 공포를 겪었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이런 것들은 한국전쟁을 겪은 한국의 종북 논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19일 통합진보당 해산을 선고했다.

정당해산이란 현대 민주주의 정치에서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여차하면 해산을 추진한 정권이 엄청난 역풍을 맞을 수도 있는 일이다. 세계 헌법재판 기관의 모임인 베니스위원회는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결정문 제출을 요구했다고 한다.

당연히 통합진보당원들은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시위가 있을 경우 엄정 대응하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통합진보당 이외의 정치권 반응은 정당해산이란 이슈만큼 커 보이지는 않는다.

제1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나 한 때 통합진보당과 당을 함께 했던 정의당 모두 통합진보당을 거들고 나서서 얻는 현실적 이익이 크지 않다고 보는 듯하다.

통합진보당 해산에 대한 찬성이 60%에 달한다는 여론조사도 나왔다. 물론 법리와 여론은 별개이기는 하다.

사실 야권에서는 통합진보당 사수를 위해 팔 걷고 나서기가 마땅치 않다. “선거에서 탄생한 정당을 이 정도 논리로 해산하는 건 탄압이다”라는 성명 이상의 행동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한솥밥을 먹던 정의당은 수년간의 사상 투쟁 끝에 통합진보당과 결별한 역사를 갖고 있다. 17대 국회에서 민주노동당으로 참신한 원내 진보정치를 선보였던 심상정 노회찬 의원은 18대 총선 직전에 종북주의 배격을 주장했다. 종북이란 말이 뉴스에 주요 어휘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이 때다.

이들은 18대 총선 패배로 다시 현실적 단결을 모색해 통합진보당으로 19대 총선에서 13명의 당선자를 배출했다. 하지만 곧이어 ‘경기동부 연합의 패권주의’ 논란이 불거졌다. 본질적으로는 4년 전의 종북주의 논란이 다시 벌어진 것이었다.

상대적으로 국민적 인지도가 높았던 심상정 노회찬 의원 등은 부정 경선에 대한 책임자 징계를 추진했었다. 그러나 당내 행사장에서 극심한 물리적 충돌까지 빚게 되자 이들은 통합진보당을 탈당해 재결집하는 형식으로 정의당을 창당했다. 탈당 직전 뜻을 같이 하는 비례대표 의원들을 제명 처리한 것을 두고 통합진보당 잔류파들과 법적인 다툼까지 벌인 사연을 갖고 있다.

 

▲ 2012년 5월 12일 통합진보당의 중앙위원회. 부정경선을 징계하려는 유시민 심상정 공동대표에게 당권파 당원들이 거세게 항의하며 연단 점거를 시도하고 있다. 이런 갈등 끝에 끝내 유시민 심상정 노회찬 등 인사들은 통합진보당을 탈당해 진보정의당을 창당했다. /사진=뉴시스

 

새정치연합은 주요 고비 때마다 통합진보당에서 불거진 종북 논란으로 발목을 잡힌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2012년 총선 때 통합진보당의 당내 경선 부정이 야권 전체의 도덕성 시비로 번진 사례가 있다. 또 이석기 내란 음모사건이 제기 됐을 때도 야권 전체의 정권 견제가 위축되는 일도 겪었다. 문제는 통합진보당에서 벌어졌는데 지지율이 떨어지는 건 새정치였다.

국민들 가운데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혐의를 공감하지는 않더라도 현실 정치에서 아직은 소화하기 부담스런 정파라고 보는 사람도 상당수다. 이들은 정당해산이 부당하다 하더라도 만사 제치고 거리에 나가서 투쟁하고 싸워야 할 일로 보지 않는다. 통합진보당 인사들이 예전 민주노동당 만큼의 대중적 인기를 얻지 못한 탓도 있다.

그렇다면 그동안 통합진보당의 존재로 반사이익을 본 사람은 없을까.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승리를 굳힌 계기는 1차 TV토론이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당신을 낙선시키러 나왔다”고 일갈한 바로 그 날이다. 승리의 계기였다는 건 여차하면 패배의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이날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는 양대 경쟁자가 아닌 제3의 인물로 축소돼 버렸다. 문 후보가 만약 이정희 후보와 ‘보이지 않는’ 연대에 안주하지 않고 오히려 전선을 자신과 이정희 후보 사이로 가져갔다면 자신의 취약 계층을 파고드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었다. 최종적으로 3.6%포인트 격차로 갈린 승패를 바꿀 수 있었던 건 오직 이 날 뿐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에서 통합진보당으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지지기반을 강하게 굳히는 반사이익을 봤다. 집권 후에도 박 대통령은 통합진보당의 경선 부정, 내란 음모 사건 등을 통해 국정 추진력을 강하게 휘어잡을 수 있었다.

통합진보당이 존재하는 동안, 집권세력은 불리한 국정 반전의 계기를 이들로부터 얻은 반면 야당은 언제 또 저쪽에서 사고를 칠지 전전긍긍하는 형편이 됐다. 굳이 정치적 실리를 따지자면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서 통합진보당 해산을 밀어붙여 얻을 것은 그다지 크지 않다는 계산도 나온다.

그런데 일개 서생이 앉아서 하고 있는 이런 판단을 정치의 도가 튼 거대 정당에서 안했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정당해산을 밀어붙였고 헌법재판소는 이를 승인했다.

이번 일과 관련해서 박근혜 대통령은 그다지 정치공학적 계산을 하지 않은 듯하다. 워낙 본인의 반공 소신이 확고해 그런 건지, 그동안 논리의 관성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서 그런 건지는 대통령 본인도 알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다시 한 번 공안 분위기를 잡겠다는 ‘공학적’ 계산을 한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틀린 계산을 할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설령 정치공학과 무관한 나름의 순수한 의도였다고 해도, 그런 순수함을 좋게 봐주기는 어렵다. 어떻든 선거를 통해 민의가 작용한 선택을 받은 정파라고 한다면 좀 더 섬세한 대응이 적절했다는 아쉬움이 크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민들에게 워낙 이상한 사람들로 보인 탓으로 이번 일로 당장 커다란 반작용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단지, 시간이 지나 냉정해 지면 이리저리 다시 생각해 볼 여지는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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