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일대, 유기견 무리 몰려다니며 주민 불안 극심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서울대학교 근처 낙성대는 귀주대첩의 영웅 강감찬 장군과 관계된 지명이다. 어느 날 별이 이곳에 떨어지더니 장군이 태어났다 해서 생긴 이름이다.

성종 때 과거에 급제한 그가 어느 날 한양의 판관으로 부임했다. 한양은 지금의 서울이고 판관은 부시장 정도에 해당한 듯하다. 고향으로 금의환향한 것 같지만 이건 지금 사람들 기준으로 하는 얘기다. 당시의 한양은 지금보다 훨씬 좁았다. 한강까지 건너서 있는 낙성대는 요즘 서울 사람들의 거리 감각으로는 수원 정도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래도 그가 과거 공부를 할 때 유명 고시학원의 스타 강사를 찾으려면 한양 정도로는 나와야 했을 법하다.

▲ 강감찬 장군 영정.

강감찬 부시장이 인왕산을 순찰하다 노승을 만났다. 불교를 숭상한 고려에서 노승에게는 부시장도 예의를 표해야 할 텐데 그는 대뜸 호통을 쳤다.

“너희가 어찌하여 사람을 해치느냐. 당장 이곳을 떠나라”고 하자 노승은 위장술이 통하지 않음을 깨닫고 호랑이의 본 모습을 드러냈다. 호랑이들의 우두머리였던 그는 무리를 이끌고 북쪽으로 떠나 한양 사람들이 호랑이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용재총화에 실린 강감찬의 호승(虎僧) 설화다.

설화는 대개 그 시대 실제로 벌어진 일을 근거로 한다. 이 설화에서는 당시 고려 정부가 대대적으로 한양 신도시 건설을 함으로써 이 지역 호랑이 서식환경이 크게 파괴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고려는 도읍을 개경에 두고도 한양을 남경(南京)으로 정해 상당히 비중 있는 광역시로 조성했다. 고려시대 줄곧 ‘이 씨가 새 왕조를 세운다’는 참언이 떠돌아서 한양에 오이나무를 키우다가 베어버리기를 거듭함으로써 그 기운을 자르려했다는 얘기도 있다. 오이는 곧 ‘오얏리(李)’ 글자를 상징한다. 이런 요설은 인종 때 이자겸이 반란을 도모하면서 ‘십팔자(十八子. 합치면 李가 된다)’의 소문을 퍼뜨린 것과도 관련된 듯 하다. 훗날 이성계 세력이 민중에 역성혁명이나 한양 천도를 대세로 받아들이게 하려고 조직적으로 유포했을 여지도 있다.

▲ 과천 서울대공원 시베리아 호랑이. /사진=2009년 뉴시스

한국 사람들은 한반도에서 호랑이가 멸종된 사실을 안타까워 한다. 그래서 지금도 어디서 호랑이 흔적이 발견됐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심지어 방송국 다큐멘터리도 제작된다.

이렇게 호랑이 부활을 동경하고 있다는 것은 대중 심리의 근간에 호랑이는 확실히 없다는 안도감도 함께 작용한다. 한국의 여론 구조상, 만약 정말로 호랑이 존재가 확인된다면 그때부터는 안전대책을 강구하라는 아우성이 빗발칠 것이 뻔하다.

어느 다큐멘터리에서는 러시아의 호랑이 전문가 여성박사의 의미 있는 조언이 소개됐다. 그는 ‘글쎄 호랑이 없다니까’라는 식의 매정한 표현은 안했지만 충분히 알아듣도록 돌려서 설명했다. 그리고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한국인들이 정말 호랑이를 보고 싶다면 사람들과 함께 사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수컷호랑이 한 마리의 서식영역은 1385 제곱킬로미터라고 한다. 한반도에서는 정사각형 형태의 이런 면적을 찾을 수 없으니 세로길이 수백 킬로미터는 제공돼야 한다.

한두 마리만 가지고 종 전체가 부활할 수도 없다. 근친교배도 피해야 한다. 그래서 다른 맹수들처럼 수컷새끼가 장성하면 부모형제로부터 머나먼 곳으로 이동을 한다. 태백산맥에 우두머리 수컷이 있다면 그의 아들은 백두산이나 시베리아로 진출해야 한다. 그런데 한반도에는 휴전선이라는 장벽이 있다. 철책이야 호랑이 도약력으로 뛰어넘는다 해도 남북 양측의 군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총을 맞대고 있는 이런 곳을 매일 넘나들고 싶은 호랑이는 없다.

강감찬 장군이 고려 때 호랑이 무리를 크게 쫓아내긴 했지만 조선시대도 인왕산엔 호랑이가 많았다. 특히 무악재는 포수와 함께 무리를 지어서 넘어가야만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인왕산 근처에서 민간의 호랑이 피해가 컸다는 자체가 강감찬의 흔적에 해당한다. 원래 사람이 맹수를 두려워하는 것 몇 배 이상으로 맹수들이 사람을 두려워하고 혐오한다. 죽어있는 동물 사체에서 사람 냄새가 나면 경계심이 식욕을 앞서 그냥 지나가기도 한다.

그럼에도 사람을 공격하는 건 맹수가 절박한 상황에 몰렸을 때다. 야생의 먹이가 없어서다. 최후의 선택을 했는데 그것이 성공해보니 의외로 인간의 전투력이 허약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상습적으로 인간을 공격하는 것이다. 이것은 해당 지역에서 맹수가 멸종되기 직전의 말기 현상에 해당한다.

삼국시대와 달리 고려는 한양을 새로 건설해 숲과 산림은 파괴되고 사람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호랑이들에게 사랑의 계절이 찾아와 암컷의 향기를 따라가다 나무꾼하고 마주치고, 노루와 토끼를 열심히 쫓아갔는데 고을 사또 의뢰를 받은 전문헌터들이 풀어놓은 미끼였던 경우가 빈발했다. 살 곳이 못된다며 상당수 호랑이들이 북쪽으로 멀리 떠나게 됐다.

서식환경만 갖춰지면 집에서 기르던 가축도 금새 야생의 짐승으로 돌아간다. 돼지는 가출한 지 한 세대만 지나면 다시 송곳니가 자라 멧돼지가 된다는 다큐멘터리 해설도 있었다.

개도 마찬가지다. 호주의 들개 딩고가 그런 경우다.

▲ 딩고의 모습. /두산백과

제국주의 시대 영국은 호주를 유배지로 썼다. 영국에서 온 사람들이 개를 데리고 왔다가 개는 놔두고 자기들만 돌아갔다고 한다. 버려진 개들이 호주의 광활한 자연에서 자기들끼리 결속해 살아남으면서 야생의 들개가 됐다.

새끼 때는 황구들처럼 귀엽고 깜찍하다. 그러나 장성한 딩고는 개처럼 짖는 게 아니라 늑대처럼 울부짖는다. 호주 야생의 복싱 챔피언 캥거루가 딩고와의 시합은 일대 일로 해 볼 수도 있겠지만 혼자 다니는 딩고는 거의 없다. 우루루 몰려다니기 때문에 캥거루는 오로지 열심히 도망가야 한다. 새끼를 지키는 암컷은 딩고 한마리만 봐도 도망간다.

딩고는 늑대에서 온 개들이 늑대로 돌아간 사례다. 수 만 년전, 인간의 음식 쓰레기를 매개로 늑대들이 우리의 곁으로 다가와 반려동물로 변신했다. 인간의 보살핌이 없다면 이들은 언제든 사납고 용맹한 초원의 지배자 늑대로 돌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딩고다.

지금 서울 인왕산 지역에 자칫하면 딩고가 나타날 지경이 됐다는 연초 JTBC의 뉴스다. 개들이 인왕산에 살면서 무리지어 동네에 나타나 길고양이를 죽이고 사람들을 위협한다고 한다. 이들이 해친 고양이가 30마리가 넘는다니 주민들의 불안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모두 사람들이 내다버린 유기견들이다.

당국이 심각하게 여기고 즉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 이전에 함부로 개를 내다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근원적인 처방부터 필요하다. 생물을 내다버리는 그따위 심성으로 어디 감히 가축을 기를 생각을 하는지.

강감찬 장군이 노승을 꾸짖어 호랑이를 쫓아낸 인왕산 지역이 유기견들의 무법지대가 돼서야 1000년 고도 서울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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