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규모 1억달러 기업 스테파니의 '격투 인생'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스테파니 맥맨은 자산규모 1억 달러가 넘는 굴지의 미국 재벌 3세다. 아버지 빈스 맥맨이 CEO를 맡고 있는 이 회사에서 그녀의 직책은 CBO(Chief Brand Officer)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맥맨 가문은 이 회사 지분의 70%를 가지고 있고 의사 결정권은 96%에 달한다. 스테파니는 말 그대로 절대 지배가문의 금지옥엽 따님인 셈이다.

놀랍게도 스테파니는 수 만 명의 사람들이 지켜보는 한복판에서 회사 종업원의 얼굴을 짓밟고 마구 구타하기도 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회사 직원도 똑같이 스테파니를 걷어차고 온 몸을 비틀어 고통을 안겨준다. TV 방송을 통해 직원이 그녀에게 “몸 파는 여자”라고 욕설도 한다. 사실 이게 이 회사가 생산하는 ‘상품’의 일부다.

맥맨 가문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 프로레슬링 WWE의 소유자이며, 스테파니는 경영진 뿐만 아니라 프로레슬링의 스토리라인을 구성하는 ‘악덕 경영주’의 배역으로 링 위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 미국 프로레슬링 WWE의 스테파니 맥맨 CBO. 빈스 맥맨 회장의 딸이며 이 기구 슈퍼스타 레슬러인 트리플 H의 부인이다. 세 아이의 어머니지만 젊은 시절부터의 미모는 여전하다. 그러나 링위에서는 젊은 시절과 달리 교활하고 직원을 억압하는 악덕 재벌 역할을 연기한다. /사진=스테파니 맥맨 페이스북.

 

그녀가 WWE 무대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98년이다. 출중한 미모를 가진 회장의 딸로 관중들 앞에 나타난 이 때는 아직 거친 레슬링 액션이 익숙하지 않았다. 순진하고 폭력과는 담 쌓은 링 외의 캐릭터로 머물렀다. 그녀의 아버지 빈스는 이 무렵 이미 운동복을 차려입고 나와 링 위에서 여러 번 레슬링 경기를 갖고 있었다.

1980년대 초, 부친으로부터 회사를 사들인 빈스는 1990년대 중반까지 WWE 중계 마이크를 손수 잡더니 아예 자신이 레슬러로 등장하게 됐다. 그만큼 자신이 하는 사업에 푹 빠진 사람인 것이다. 자기 혼자만 이러는 게 아니었다. 아들 셰인, 그리고 딸 스테파니까지 이 사업에 깊게 관여하게 만들었다. 이 집안에서 레슬링 운동과 가장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이는 빈스의 부인 린다 마저도 간혹 등장해서 무시무시한 레슬링 공격을 받고 실신하는 연기를 할 정도다.

가문의 혈통을 입증하듯, 스테파니는 WWE 사업에 열정적으로 몰입했고, 소속 레슬러 가운데 한명인 트리플H(링 위에서의 이름이다)와 결혼해 세 딸의 어머니가 됐다. 한국에서 ‘아줌마는 무서울 것이 없다’는 말을 알기라도 하는 듯, 어머니가 된 스테파니는 더욱 거친 플레이를 마다하지 않는 존재가 됐다.

그리고 처녀 시절의 꽃다운 이미지도 완전히 던져버리고 이제 선량한 레슬러들의 고혈을 쥐어짜는 불공정하고 사악한 경영진의 연기를 매주 신들린 듯 펼쳐 보이고 있다. WWE 출연진들은 레슬링 실력뿐만 아니라 연출된 상황에서의 연기 또한 헐리웃 급이다. 이들의 치고받는 동작은 정말 어색한 순간이 거의 없다. 경기 외적으로 앙숙지간이 됐다는 연기나 기뻐하고 겁먹고 초조해 하는 표정은 대사가 없어도 시청자나 관중에게 실감나게 전달된다. 이런 실력을 갖추지 못하면 곧 세계 최고의 WWE 무대를 떠나야 된다.

 

▲ 맥맨 가문의 사람들은 운동선수 출신이 아닌데도 직접 링위에서 경기를 펼친다. 스테파니가 킥 공격을 받고 있다. WWE는 각본에 의한 격투임을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부상 등의 위험은 절대 연출이 아니다. 절대 집이나 학교에서 흉내내지 말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WWE 홈페이지.

 

최근, 몸을 사리지 않는 ‘무대뽀 똘끼’ 플레이로 인기를 폭발시키는 딘 앰브로스라는 선수가 정신과 상담을 받는 장면이 나왔다.

‘헥소 짐 더갠’이라는 20년전 플레이 사진을 보자 그는 “호오~”라고 외치는 반응을 보였다. 더갠이 등장할 때 하던 동작을 흉내 낸 것이다.

이어서 스테파니의 사진을 보자 앰브로스는 똑같은 반응을 반복했다. 실성한 사람인 척하면서 사실은 스테파니에게 ‘호(ho)’라고 욕설을 한 것이다. 호는 속어로 매춘부란 뜻이다.

스토리라인을 떠나 현실에서 딘 앰브로스는 WWE와 계약을 맺은 종업원이고 스테파니는 사주의 딸이자 회사 최고 경영진의 하나다. 딘은 전 세계로 방송되는 화면 속에서 회사 고위간부에게 “매춘부”라고 욕설을 한 것이다.

물론 이 또한 스토리라인의 일부다. 그래도 아무리 아버지 회사지만, 이런 욕까지 먹어가며 일을 해야 하나. 이런 회의마저 무색해 지는 것은 스테파니가 맡고 있는 직책이다. WWE의 CBO란 각본을 총괄하는 자리다. 스테파니 스스로가 이런 욕먹는 각본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한국적 정서에서는 참 받아들이기 힘든 장면이기도 하다. 여성 인격을 더 존중하는 나라가 미국이라고 해도, 부모가 일하는 회사에서 딸에게 이런 욕을 하는 것은 우리로서는 거부감을 갖기에 충분하다. 회장 딸인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

굴지 기업의 3세가 자학증을 즐기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이것이 사업에 도움이 돼서 만들어 넣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앰브로스가 스테파니 사진에 대고 저 소리를 하는 장면에서 경기장을 가득 채운 수 만 명의 관중은 통쾌한 갈채를 터뜨리고 있었다.

스테파니의 남편 트리플H는 지금도 메인이벤트를 장식하는 레슬러로 활동한다. 그러나 회장님 사위가 되고나자 그는 악역으로 더 많은 세월을 보내고 있다.

WWE의 각본 작성은 수많은 전문가가 달라붙는다고 하는데, 이들의 목표는 오직 단 하나다. 더 많은 인기를 끌어서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는 것 뿐이다. ‘회장님 아들 딸이니 좀 돋보이는 배역을 줘서 나도 좀 회장님한테 점수 따자’라는 생각만 앞섰다간 일자리만 잃게 되기 십상이다. 빈스 회장이 각본진을 평가하는 건 전적으로 팬들의 반응이다.

특히 WWE는 어른 팬들이 매니아적 속성을 갖고 있어 이들의 입맛을 맞추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최근 회사가 야심차게 에이스 선수로 집중 육성했던 모 선수는 늘어나지 않는 경기력으로 인해 야유를 몰고 다니는 처지가 됐다. 이 순간에 관중은 열렬한 환호를 보내줄 것을 전제로 했던 WWE는 뜻밖에 야유가 쏟아져 나오자 앞으로의 각본에 손질을 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 됐다. 회장 일가에 대해서도 ‘심기 배려를 해 드린다’는 따위 한가한 발상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스테파니와 트리플H만 굴욕을 자처하고 욕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아버지요 장인인 빈스 회장은 수 만 명의 관중 앞에서 삭발당하는 망신연기를 펼친 적도 있다.

굴지 기업의 회장이 머리까지 빡빡 밀 정도로 레슬링을 할 필요가 뭐가 있었을까. 더 거물 손님을 WWE 무대로 초빙했기 때문이다. 부동산 재벌이자 나중에 미국 대통령 선거에도 나서게 되는 도널드 트럼프다.

2007년, 빈스 회장은 트럼프와 각각 대리 선수를 내세워 대결했다. 이긴 사람이 진 사람의 머리를 완전히 밀어버린다는 조건이었다. 빈스 회장이 세계적인 재벌이긴 하지만 ‘5조원 갑부’를 내세우는 트럼프에게 손님 대접은 당연히 빈스의 삭발로 이어졌다.

 

▲ 2007년 빈스 맥맨 WWE 회장과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WWE에서 삭발 경기를 벌였다. 승리한 트럼프가 맥맨 회장의 머리를 직접 삭발하고 있다. 경기는 물론 연출이지만 맥맨 회장의 '빡빡 머리'는 연출이 아니어서 그는 한동안 모자를 쓰고 다녀야 했다. /사진=WWE 홈페이지.

 

WWE는 미국의 무수한 레슬링 단체 가운데 하나다. 몇 차례 WCW 등 경쟁단체로부터 정상을 위협받기도 했지만 최후의 승자는 지금까지 모두 WWE 였다. 과거의 경쟁이 치열한 만큼 미래의 경쟁도 거셀 것이다.

맥맨 가문이 삭발을 당하고 욕을 찾아다니는 모든 원인은 이윤 창출이다. 이미 WCW와의 경쟁에서 최고끼리의 경쟁조차 패배자에게는 사라질 것을 요구한다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맥맨 가문의 3세들은 오로지 이것만을 뼈저리게 배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스테파니에게는 그녀가 월급 주는 직원들을 옛날 사장님댁 운전기사나 노예처럼 부려먹을 여유가 없다. 시청자가 보기에 치고받는 장면이지만, 사실은 링 위의 동업자란 의식만 있는 것이다.

재벌들의 3세 교육이란 어찌보면 간단할 수도 있다. 진정으로 지속적인 이윤을 창출하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에 집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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