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이럴 수가” “헉!”

 
요즘 기사 제목에 흔히 들어가면서 독자들한테 별로 좋은 소리 못 듣는 어휘들이다. 그런데 오늘도 모 포털사이트의 옴부즈맨 코너에 들어가니 저런 기사들을 ‘다른 기사로 대체 서비스 중입니다’라는 관리자의 안내를 볼 수 있다. 여전히 저렇게 제목을 단다는 얘기다.
 
본지 뉴스를 편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우리 기사 제목들을 한번 나열해 봤다. 모든 기사의 제목들은 내 손을 거쳐 확정이 되고 있다.
  
 
 
광클릭을 유발한다는 “충격”같은 문구가 하나도 없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바로 느끼시겠지만 지금 잘난 척 하고 있는 거다. 하지만 잘난 척 하는 속이 아주 느긋하지는 못하다. “나는 저따위 제목을 달지 않습니다”라고 회사 사주 앞에서도 큰 소리 칠 수 있는 일인지가 약간 의심스럽다.
 
독자의 입장에 돌아가서 포털 뉴스를 볼 때는 일부러 저런 제목의 기사들을 피한다. 그동안 경험에 들어가봐야 별 볼일 없다는 경험의 소산이다. 하지만 아무런 생각 없이 인터넷 서핑을 할 때는 무의식 중에 클릭하는 일이 생기기는 한다.
 
25일도 모 매체의 “중국인들 한국와서 30대 여성을 돈으로…‘충격’”이란 기사가 클릭해 보니 실제 제목은 “중국에 빨려가는 한국 IT인력”이었다며 독자들의 항의가 제기됐다. 해당 기사는 포털에서 다른 기사로 대체돼 서비스되고 있다고 했다.
 
편집자들은 이렇게라도 해서 클릭을 유발하면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니 ‘낚시 제목’ 행태가 그치지 않는 것이다.
 
제목 작성에 관한 훈련을 받을 때 “과감하라”는 조언을 받았었다. 이것저것 따지지말고 지금 기사 속 상황이 왜 문제가 되는지 하나만 생각하라는 얘기다. 잘 만든 제목은 당사자에게 약간은 “이렇게까지는 아닌데”라는 느낌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몇몇 제목들은 너무 심했다. 제목이 심하냐 안하냐는 무슨 기준으로 나눌까. 아마 전혀 다른 이슈에 관심 있는 독자를 엉뚱한 기사로 끌어오는 경우가 한 가지일 것이다. 여성 보호에 관심 있는 독자를 IT 기사로 끌어들인 것이다.
 
제목이 자극적이어야 된다는 이유는 현상의 실체를 힘 있게 전달하라는 취지다.
 
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재상 조둔이 임금의 미움을 받아 망명길에 나섰다. 그는 아주 외국으로 가려다 잠시 변방에 머물러 상황을 지켜보려고 했다.
 
조둔이 실각한 후, 조둔의 사촌인 조천이 정변을 일으켜 임금을 살해하고 피신해 있던 조둔을 다시 재상으로 복귀시켰다.
 
얼마 후 조둔이 사관의 기록을 봤다.
 
“조둔이 정변을 일으켜 임금을 살해하고 재상이 됐다.”
 
깜짝 놀란 조둔이 사관에게 항의했다.
 
“이보시오. 나는 그때 이미 관직에서 물러나 외국으로 도망치려던 중으로 난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소.”
 
사관은 대답했다.
 
“재상되는 분이 도망쳐도 국경을 넘지 못했고 돌아와서도 임금을 죽인 역적을 처단하지 못했으니 당신이 임금을 죽인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조둔은 자신의 부족한 처신을 한탄하고 사관은 높게 평했다고 한다.
 
▲ 중국 드라마에 나온 조둔의 모습.
이 얘기만 보면 고지식한 사관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진나라가 이 때부터 조씨 위씨 한씨 문중의 세력이 막강해져 끝내 세 가문이 임금을 내쫓고 나라를 나눠먹은 일을 생각할 때, 사관의 기록은 정말 핵심을 꿰뚫은 것이다.
 
당시는 종이가 없어 죽간을 갈아 기록하고 또 기록물은 막대한 부피를 차지하던 때니, 사서의 한줄 한줄마다 오늘날 기사 제목을 정하는 것과 같은 작업이 이뤄졌을 것이다. (중국문자인 한자가 표의문자로 발달한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한다.)
 
자극적 제목이 지닌 덕목은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 독자들에게 제시하라는 거다. 엉뚱한 독자를 생각도 않던 기사로 끌어오는데 쓰라는 게 아니다.
 
이런 교훈을 명심하면서 하나하나 기사의 제목을 달아야겠는데, 아둔한 편집자가 본질을 꿰뚫어 본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인가. 이것도 역시 정도를 벗어날 때마다 독자들에게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 일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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