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고받는 신부님과 공산주의자 읍장, 결론은 언제나 훈훈한 인간성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사회 지도층 인사라는 자들이 한심한 짓거리를 저지를 때마다 간절하게 떠오르는 두 사람이 있다.

돈 까밀로 신부와 주세뻬 뻬뽀네 읍장이다. 두 사람은 1950년대 이탈리아 작가 죠반니노 과레스키 소설의 등장인물이다. 논픽션의 인물이지만 인간 본성이 원래 이렇게 훈훈하다라는 공감을 던져준다. 소설의 돈 까밀로가 실제 있었던 인물을 옮긴 것이라고도 한다.
 

▲ 국내에서 출판된 돈 까밀로와 뻬뽀네 이야기의 표지 모습.


이탈리아가 뭇솔리니의 파시스트 독재 치하에 있을 때 돈 까밀로와 뻬뽀네는 함께 빨치산 투쟁을 했던 동지들이다. 뭇솔리니가 축출되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뽀 강가의 작은 마을에도 민주주의가 회복됐고 두 사람은 마을의 지도자가 됐다.

읍장으로 당선된 건 공산당원인 뻬뽀네다. 돈 까밀로와 뻬뽀네는 비슷한 점이 무척 많다. 둘 다 정의롭고 인정이 많고 마을 사람들의 신망도 두텁다. 성직자인 돈 까밀로는 말할 것도 없고 뻬뽀네 또한 공산당 천지인 마을에 소수당인 자유당 강연자가 방문했을 때 약자를 보호하는 심성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거기다 두 사람은 주먹실력도 마을 최고를 다툰다. 버릇없는 젊은이들에게 돈 까밀로가 거대한 벤치를 집어던진 사건은 한동안 사법당국이 한 사람의 소행으로 믿지 못하고 조직범죄로 수사했다. 벤치가 너무나 커서 대여섯 명이 가담했을 것이 분명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정치적 반대파인 신부가 소동에 휘말렸는데 뻬뽀네에게 가장 시급했던 것은 그 벤치를 자기도 집어던질 수 있음을 당원들에게 입증하는 것이었다.

단 한 가지 차이점, 성직자와 좌파 읍장이란 점 때문에 두 사람은 시도 때도 없이 다툰다. 맨 주먹 뿐만 아니라 기관총, 심지어 예수님이 올라계시는 대형십자가까지 휘두른다. 돈 까밀로는 한 에피소드에서 “예수님, 꽉 붙잡고 계십시오. 한번만 휘두르겠습니다”라고 외친 적이 있다.

마을의 대소사에서 치고받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뻬뽀네 아들의 세례명을 정하는 것도 곱게 지나가지 않았다. 이것이 끝내 두 사람간의 종교 전쟁으로 발전했다.

“아이의 세례명을 무얼로 할 건가?”

“레닌 리베로 안토니오요.”

“그런 이름은 모스크바 가서 받아.”

당연히 두 사람은 성당에서 또 한바탕 붙었다. 서로 너무나 잘 아는 상대를 제압하지 못하고 치고받는 와중에 십자가의 예수님이 외쳤다. “돈 까밀로, 아래턱이 비었다!”

뻬뽀네의 턱에 한방이 작렬하고 승부가 끝났다. 돈 까밀로가 다시 물었다.

“이름을 뭘로 정했나?”

“까밀로 리베로 안토니오요.” 패배는 깨끗이 승복하는 뻬뽀네다.

“아니. 리베로 까밀로 레닌으로 하게.” 돈 까밀로가 이유를 설명했다. “까밀로가 앞에 있으면 레닌이 있어도 어쩌지 못할 테니까.”

이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한 해에 주교가 마을을 방문했다. 유치원 합창단이 주교를 환영하는 가운데 정말 귀여운 꼬마가 앞에 나서 합창을 이끌었다. 환영 나온 인파가 환호성을 터뜨리는데 뻬뽀네는 돈 까밀로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비열한 인간. 아이를 가지고 날 웃음거리로 만들어요? 저 아이를 강물에 던져버리고 말겠소.” 합창단 맨 앞의 꼬마가 바로 뻬뽀네의 아들이었다. 뻬뽀네는 행사가 끝난 후 정말로 아들을 강가로 데려갔다. 거기서 그가 아들에게 시킨 건 아까 했던 노래를 해보라는 거였다.

오늘날 가톨릭을 포함한 대부분 종교는 아직 동성연애에 대해 불편한 입장이다. 동성간 결혼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요즘 가톨릭 성직자들에게는 동성연애가 까다로운 이슈지만, 1950년대 이탈리아의 성직자들에게는 공산주의자 신도들이 난해한 문제였던 모양이다. 1950년대 교조적인 공산주의는 종교가 아편이라는 식의 무신론을 강조했다. 정치적으로는 공산당원이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가톨릭국가 이탈리아의 전형적인 대중들이었다.

이런 시대의 잔잔한 정서들이 돈 까밀로와 뻬뽀네의 이야기에 잔뜩 녹아있다.

늙은 주교의 방문에 앞서 뻬뽀네는 당원들을 모아놓고 “‘외국인’을 품위 있는 무관심으로 대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여기서 외국인이란, 주교를 이탈리아가 아닌 바티칸의 국민으로 간주한 말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차에서 내린 ‘외국인’ 늙은 주교를 손수 안내한 사람은 읍장 뻬뽀네다. 주교의 마음이 흐뭇한 틈을 타 뻬뽀네는 “돈 까밀로 신부님이 성당 지하실에 박격포 기관총을 숨겨놓고 있어요”라고 고자질했다.

주교는 뻬뽀네에게 “그래서 저 사람은 위험한 인물이라고 내가 그러지 않았나”라고 반문했다. 앞서 돈 까밀로가 더 작은 산속 마을로 좌천됐을 때, 마을 사람들을 모두 데리고 주교를 찾아가 돈 까밀로의 귀환을 청원한 사람이 뻬뽀네였다.

돈 까밀로의 호기가 지나쳐 소동이 벌어지면 뻬뽀네가 읍장의 지위를 이용해 수습해주고, 뻬뽀네가 이념의 함정에 빠져 중앙정부의 강경진압마저 초래할 지경이 되면 돈 까밀로가 완력으로라도 뻬뽀네를 주저앉혔다.

작가 죠반니노 과레스키는 가장 정치적 정파적인 상황을 설정해놓고 거기서 잔잔하고 감동적인 인간성을 이끌어냈다. 이것이 이 소설의 묘미다.

요즘 미국에서는 때 아닌 종교 논쟁으로 전국이 떠들썩하다. 말이 종교 논쟁이지 실상은 동성연애자에 대한 시비가 더 크다.

▲ 동성애자 차별법으로 논란을 일으킨 마이크 펜스 미국 인디애나 주지사. /사진=퍼블릭도메인.

발단은 인디애나 주에서 공화당 소속의 주지사가 ‘종교의 자유’를 핑계로 상인들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어긋나는 소비자에게는 서비스 제공을 안 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법을 만든데 있다. 비슷한 법을 아칸소 주에서도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들은 명분으로 가톨릭에서는 동성연애를 신의 가르침에 어긋난 것으로 여기는데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거부하다가 소송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례를 들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에 미국 사회가 전부 벌컥 뒤집혔다. 성당이나 교회 뿐만 아니라 일반 상점에서도 동성연애자에 대한 차별을 대놓고 하려는 속셈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시가총액 전 세계 최고인 애플의 팀 쿡 CEO가 공개적인 비난에 나섰고 월마트 등 굴지의 기업들이 인디애나 아칸소에서 사업축소를 발표했다.

차별법 흉내도입에 나섰던 아칸소 주지사가 먼저 백기를 들었다. 그는 “평상시 같으면 문제가 안됐을 일이지만, 지금은 평상시가 아니다”는 논리를 제시하며 주의회를 통과한 법안을 서명하지 않고 돌려보냈다.

성적 소수자 보호 시대에 꽤나 불만이 많은 보수층 결집을 시도했을 법한 인디애나 주지사도 이미 자신이 서명한 법안을 주의회와 함께 다시 고치기로 했다.

여러 다양한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지만 아주 확고한 한계가 있다. 인권, 인종 등 민주주의 발달사에서 얻은 근본의 가치에 관한 것이다. 이를 훼손하는 일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 미국의 강한 체질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하지만 주지사나 되는 막중한 자리에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사람들이 남아있음이 드러났다.

유명 대학에서 배울 만큼 배운 주지사들이다. 성명서를 붙일 때마다 할머니 선생님 크리스티나가 틀린 곳을 빨간 펜으로 죽죽 긋고 “0점. 바보”라고 표시를 할 정도로 무식한 뻬뽀네와는 차원이 다른 학식을 가진 이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소동과 망신을 자초한 건 무식해서가 아니라 다른 뜻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 번 튀어보겠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나쁜 검색어라도 한번 1등을 먹어 보자라는 심보를 미국의 대중들이 용납을 안 한 것이다. 여기에 굴지의 기업들까지 보편의 가치를 옹호하고 나섰다. 미국의 사회구조가 탄탄한 것은 이런 시스템의 작동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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