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보험사 소송 남발 문제...전부패소율 50% 달하는 곳도 있어

▲ 출처=MBC PD수첩 홈페이지 사진 캡쳐

 

[초이스경제 김슬기 기자] 지난해 기준 전체 보험 계약 건수는 1억8000만 건으로 국민 1인당 평균 보험 가입 건수는 약 3.6건에 이른다. 병에 걸렸을 때 돈 걱정을 덜기 위해 많은 이들이 보험에 가입하고 있지만 최근 보험사와 보험 이용자 간 소송이 급격히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사와 보험 이용자 간 소송 건수는 1112건으로 2013년 대비 71.8% 증가했다. 이중 보험사가 이용자에게 제기한 소송이 986건으로 88.7%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MBC 'PD수첩'이 일부 보험사들이 보험료 지급 거절을 위해 선량한 고객들을 보험 사기범으로 취급하고 소송을 남발하는 등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15일 방송계에 따르면 지난 14일 'PD수첩'에서는 보험사들의 소송제기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사연이 전해졌다.

먼저 2년 전 갑상선암이 임파선으로 제기돼 수술을 받았던 이유진씨는 "4년 전 암 보험에 가입했던 게 큰 위안이 됐었다. 임파선과 갑상선 중 고액인 임파선암 진단비를 받은 후에 보험설계사가 갑상선암도 추가로 지원받을 수 있다기에 신청했다. 보험사에서는 '갑상선암 진단금을 50%만 받으면 빨리 해결해보겠다'고 하길래 인터넷 게시판에 나머지도 지급해달라고 요청했다. 다음날 보험사가 진단금 3000만원을 반환하라고 소송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자기들이 지급을 하고서는 잘못 지급했다고 돌려달라는 게 이해가 안됐지만 소송을 당하니 취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보험사 심사팀에 무조건 잘못했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최근 4년간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을 거절한 건수는 34만 건에 달한다.

금융소비자연맹 이기욱 사무처장은 "개인은 소장이 오면 일단 당황하게 되고 변호사 비용, 스트레스, 소요되는 시간에 큰 부담을 느끼게 된다. (약관대로) 보험금을 청구했을 뿐인데 소송을 받아야하는 이유도 모른 채 당하다보니 보험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합의해주거나 진단금을 포기하는 경우도 생긴다"고 설명했다.

한 보험사에서 보험 심사팀 직원으로 일했던 이성현씨는 "사업비는 언론에서 몇 번 지적돼서 보험료에서 사용을 못하게 되어 있고 투자이익도 주식시장 금리가 워낙 낮기 때문에 결국 고객에게 지급되는 보험금을 얼마나 아끼느냐에 따라 보험회사의 이득이 달라지게 된다"고 전했다.

최근 허혈성 심질환을 진단받은 문영욱씨는 "지난 2월 보험금 지급을 요청했는데 지급거절 통보를 받은 게 2월23일이다. 그런데 보험사가 법원에 민사조정을 건 날짜가 2월 12일이다. 약관을 보면 최초의 허혈성 심질환에 대해 보상하겠다고 되어있는데 갑자기 보험사에서는 진단받은 '경도'가 아닌 '중증'만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했다. 자기네들 내부기준을 설정해놓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지급을 거절하는 게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지난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자살에 대해서도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는 약관으로 판매된 보험상품이 약 300만건에 이른다. 그러나 지난해 4월 기준 생명보험사들이 지급하지 않은 자살 보험금은 2179억원에 달한다. 관련소송이 이어지자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2개 생명보험사에 '약관대로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라'고 권고하는가하면 지난 2월 법원에선 '생명보험회사가 자살보험금을 약관대로 지급해야한다'고 선고했다.

그러나 여전히 생명보험사들은 '약관 자체가 학술적,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에 법원판결을 받아보고 그 결정에 따르겠다'는 입장을 내세우며 보험금 지급을 미루고 있다.

보험 가입자를 상대로 한 보험사의 소송도 급증하고 있다. 문제는 보험사가 보험 가입자를 상대로 소송을 남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험사는 진단금을 요청한 고객에게 지급거절 통보를 하기도 전에 소송을 제기하는가하면 보험 가입 건수가 많거나 보험 가입료가 높은 고객을 선별해 관리하기도 한다.

익명을 요청한 현직 손해사정인은 PD수첩 제작진을 통해 "몇몇 보험사에서는 내부에 소송용 고객리스트가 있다. 보험이 몇 개 이상이면 일괄적으로 소송으로 간다는 가이드라인이 정해져있고, 보험금을 많이 받아간 사람은 고객이 청구를 계속할테니 이런 사람과 계약 해지를 하는 것이 목적이다"고 말했다.

최순진 손해사정인은 "보험업계 일부에는 일명 '묻지마 해지' 전담 인력이 따로 있다. 고객에게 해지 동의서를 받아오거나 보험금을 삭감해오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식이다"고 설명했다.

지난 2008년 유방암 수술 후 2010년 뇌출혈로 마비증세를 보이고 있는 고은희씨는 지난 3월 18일 병원에 입원하면서 입원일당 180만원을 청구했다. 다음날 보험사는 고씨를 보험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보험사 측은 고은희씨를 보험사기 의심자로 주목해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보험사 측은 PD수첩의 인터뷰 요청에 대한 서면답변을 통해 "2007년에서 2008년 다섯 건의 보험에 가입한 것에 대해 보험 사기로 의심된다. 또한 월 납입보험료가 35만원 이상이며 병에 비해 입원 일수가 과하고 입원 중에도 6일을 외출했다는 점이 의심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고은희씨와 남편 박수복씨는 "아는 언니가 보험 설계사라서 가입해달라고 했다. 20만원 정도에 5개 상품에 가입할 수 있다고 했다. 월 납입 보험료도 수입에 비해 많은 정도는 아니었다. 유방암 수술을 받고도 일을 나갔던 사람이다. 이번에 입원한 것은 통원치료를 다니다가 몸을 못 가누다보니 교통사고를 당해 어깨가 심하게 다치면서 그런 것이다. 입원 중 외출한 것은 장인어른이 돌아가시고 49재 때와 병원 측 진료가 없었던 구정 연휴 뿐이었다"고 설명했다.

박수복씨는 "집안에 중증환자가 있어서 생업의 일부를 포기하고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대기업의 횡포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신청의 경우 소송 중에는 신청도 못하고 법률구조공단도 접수처에서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했다. 신청자가 많은데 재정과 예산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용 때문에 변호사를 고용할 엄두가 나지 않아 혼자서 소송을 준비 중이지만 법률용어 조차 익숙치 않아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김계환 변호사는 "자신들이 입원 일당을 넣어서 보험을 설계해놓고는 나중에 '입원 일당을 타내려고 입원했다'고 주장하는 격이다. 과다입원, 과잉진료가 문제되면 보험금을 청구할 때 초반부터 환자에게 고지,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 정작 가입할 때도 그런 설명은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박기억 변호사는 "보험을 여러개 들더라도 막상 보장받는 것은 한두 개로도 충분하다. 보험업법상 중복보험인지 보험사가 확인을 해서 안내해줘야 할 의무가 있는데 가입은 그대로 방치한다"고 지적했다.

한 보험사의 경우 보험 이용자에게 제기한 소송에서 모두 진 전부패소율이 50%에 이른다. 그러나 보험사기 적발과정에서 생기는 피해자들을 위한 대책도 없는 실정이며 패소한다고 해도 보험사가 받는 불이익이 없다. 결국 이런 점 때문에 소송이 남발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순진 손해사정인은 "보험사가 일단 사기라고 하면 가입자는 어떤 형태로든 피해를 보게 되는데 수사 의뢰해서 혐의가 없어진다고 해도 보험사가 책임지는 게 없다"고 말했다.

정홍주 성균관대학교 글로벌보험연금대학원 교수는 "미국의 경우 보험사가 고객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패소했을 때 소비자가 보험회사를 상대로 다시 불법행위 소송을 할 수 있게 되어있다. 그 추가적인 손해배상이 엄청나기 때문에 소비자를 보호하는 기제로 작용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보험사와 가입자간 분쟁조정을 위한 독립적인 기관의 필요성도 언급됐다. 현재 분쟁을 조정하는 기관인 금융감독원 측은 고은희씨의 남편 박수복씨에게 "보험사가 상위기관인 법원에서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건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관여할 수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보험사가 소송을 빨리 제기한다"고 설명했다.

금융감독원은 각 보험사에 대한 민원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각 보험사 인터넷 홈페이지 초기화면에 3개월 간 게시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점이 보험사가 고객을 상대로 소송을 빠른 시일에 제기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직 손해사정사는 "민원을 넣는다는 것을 파악한 고객들은 조사자들이 이틀 정도 시간을 벌어놓고 바로 소송에 들어간다. 소송을 제기한 경우에 접수되는 민원은 카운트가 안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보험 선진국 독일에서는 금융당국이 아닌 별도의 분쟁조정기구를 통해 보험사와 가입자간 이해관계를 조정한다. 지난해 제기된 1만8700건의 조정신청 건수 중 조정이 성립되지 않은 사례는 19건에 그친다.

이에 대해 김은경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거 3년간 보험사와 아무 연관 관계가 없고 전문지식을 갖춘 이들이 모여 분쟁을 해결한다. 현실적으로 잘 운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PD수첩 제작진은 "보험 사기가 근절돼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투병 중인 선량한 고객을 보험 사기범으로 몰고 소송부터 거는 보험사의 행태는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고객을 상대로 소송을 남발하거나 패소율이 높은 보험사에게 불이익을 주는 장치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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