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지식, 대중을 무시하는 자세로는 진리로 자리잡기 어려워

[초이스경제 장경순의 만필세상]

1.

불교 설화에서 악귀의 제왕인 아수라왕이 해를 물면 일식이 벌어진다고 한다. 이 때 부처님이 시로써 질문을 던지면 아수라왕이 도망가 해가 본 모습으로 돌아온다.

우리 역사에서도 오래 전부터 일식이 알려져 왔다. 그런데 옛날 사람들이 말한 일식이 과연 일식일까. 월식보다도 훨씬 드물게 벌어지는 일식인데 천문 관측시설도 없던 시절에 태양 한 부분이 가려지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혹시 비구름이 짙게 끼어 대낮이 한밤중처럼 어두워진 것을 일식으로 여기지는 않았나.

어쨌든, 우리 민족도 일식 월식을 인지해서 개가 해나 달을 한 입 무는 설화를 갖고 있다.
 

▲ 2012년 5월 21일 일식의 진행 과정. /사진=뉴시스

 

1398년 9월 조선 정종이 태조로부터 선위 받고 임금이 된지 석 달이 지난 12월18일 경연을 열었다.

정종이 시강관 전백영에게 “일식은 어째서 그렇게 되는가”라고 물었다.

전백영은 “사람의 하는 일이 아래에서 감촉(感觸)되면, 하늘이 실로 위에서 반응(反應)하는 것이니, 부처가 말한 아수라왕의 일은 그릇된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불교 설화가 허황되다고 하면서 전백영 또한 오늘날 관점에서는 말도 안 되는 설명을 임금에게 하고 있다. 고려 말 이인임을 탄핵했다가 귀양까지 갔던 선비이니 헛된 소리를 할 사람은 아니지만, 오늘날 지식과는 너무나 안 맞는 답변이다.

아무리 옛날이기로 임금이 저렇게 잘못 된 지식을 갖고 있으면 국정에 아무 차질이 없을까. 만약 정종이 200년 후 이탈리아 인물인 조르다노 브루노를 신하로 두고 그에게 질문을 했다면 어땠을까.

조르다노 브루노는 무한 우주설을 주장하다가 로마 교황청의 종교재판을 받고 1600년 화형을 당해 죽었다. 그로부터 300년 가까이 지난 1899년 빅토르 위고 등이 앞장서서 그가 목숨을 잃은 이탈리아 로마 캄포 데 피오리 광장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다. 동상 건립에 항의해 당시 교황인 레오 13세가 89세의 나이로 금식 기도를 했지만 브루노의 동상은 지금도 광장에서 그가 원했던 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진실과 과학의 힘을 웅변하고 있다.
 

▲ 이탈리아 로마 캄포 데 피오리 광장에 있는 조르다노 브루노의 동상. 근처의 쓰레기는 시장이 이곳에 열려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임을 보여준다. 그는 이렇게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과학과 진실을 웅변할 수 있는 곳에 서 있다. 친구가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이다.

 

추측컨대, 정종에게 답변하는 사람이 전백영이 아닌 조르다노 브루노라고 해도 조선 역사가 달라질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물론 조선 조정이 로마교황청처럼 브루노를 극형으로 다스리지는 않았을 것으로 본다. 조선에는 지동설이나 무한 우주설을 심각한 도전으로 여길만한 종교 권력이 없었다.

그러나 당시의 상식과 너무나 어긋나니 “임금 앞에서 허튼 소리를 했다”는 이유로 두 번 다시 조정에 못 나오게 쫓겨났을 가능성이 매우 크고, 그날 왕의 심기에 따라 태형을 받았을 위험도 다소 존재한다.

설령 정종이 오늘날의 우주 지식을 받아들였다고 한들 달라질 것이 뭐겠는가. 모든 사회구조는 평평한 땅 위에서 하늘에 하나 뿐인 해를 보며 곡식을 재배해 이끌어가는 세상을 전제로 조직돼 있던 시대다.

전백영 답변의 핵심은 정확한 일식의 지식보다는 불교에 대한 신진 사대부들의 합리적 비판에 담긴 것으로 보인다.

조선 초의 불교 배척을 오늘날 관점에서 평가할 일이 아니고, 고려 시대 종교가 지나친 권력을 행사했던 것을 타파하려는 시도로 봐야 한다.

‘일식 같은 하늘의 일을 묻기는 왜 물어. 그냥 정치를 열심히 하소서’가 그의 앞부분 대답이고 뒷부분은 ‘모르는 거 묻지 마시고 행여 불교를 다시 진흥할 생각은 접으소서’라는 뜻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괜히 지동설이나 ‘코스모스, 신비의 우주’처럼 감당 안되는 지식보다 전백영 같이 단순하고 시대 순응적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그 시대의 해법을 찾는 데 더 적합한 경우다.

 

2.

최충은 고려 전성기 명군 문종을 보필한 현신으로 ‘해동공자’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가 변방에 나가 있는 동안 임금에게 포로로 가둔 지 여러 날이 지난 동여진의 추장 등 86명 처리에 관한 상소를 올렸다.

“오랑캐란 본시 사람의 외모에 짐승의 마음을 지닌 자들인즉 형벌만으로 버릇을 고칠 수도 없고 인의로도 교화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같으면 정부 고위관계자의 발언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인종차별적 발언이다.

이런 인식이라면 당연히 다음 논리는 모두 죽이자는 것이 된다. 그로 인한 후환은 오늘날 뿐만 아니라 11세기인 당시에도 하루도 편할 날 없는 북방 정세를 초래할 것이다.

하지만 1000년 전에는 논리 구조도 오늘날과 좀 다른 모양이다. 최충은 이어지는 문장에서

“그들을 억류한지 오래 되어 제 집을 그리워하는 심정도 깊을 것이고 이로 인해 반드시 원한을 품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많은 비용을 들이며 굳이 잡아둘 이유가 없다고 판단되니 그만 돌려보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이렇게 해서 붙잡힌 동여진 86명이 석방됐다.

북방 기마민족을 인면수심을 지닌 오랑캐라고 하는 편견을 지닌 시대지만, 그 또한 사람은 사람이다라는 철학이 기본에 깔려있다. 더 나아가 훌륭한 재상답게 어떤 것이 국정에 더 이익인가를 따져서 최충은 논리를 풀어나가고 있다.

 

3.

시대에 따른 지식의 변천은 단편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지식이 보편적 믿음으로 이어지려면 그 시대를 이루는 지식체계 전체의 재조정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중병을 앓다가 일어난 64살 늙은 아버지는 다섯째 동생을 인간백정이라며 내 손으로 죽이겠다고 펄펄 뛰고 있다. 일찍이 아버지 따라 종군하며 칼과 활만 잡았지 정치 공부는 한 번도 한 적 없었다. 욕심 많은 이 동생이 어느 날 무수히 사람을 죽이고 이 인정많은 형을 임금으로 만들었다.

그런 임금에게 “믿기 힘드시겠지만, 하늘이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와 달이 도는데 가끔씩 달이 해를 가려서”라고 설명한들 정종이 모든 동생을 제압하고 몇 십 년 통치하는 강한 군주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해동공자’라고 받드는 재상을 “당신은 평소부터 지닌 생각이 지극히 인종차별적”이라고 비난한다면, 전선의 장수들이 목숨 걸고 잡은 포로들을 무조건 방면해야 되나?

개혁은 개혁돼야 할 예전 관념을 가진 사람들의 입장에 대해서도 배려를 하며 진행 되야 힘을 얻는다. 이전의 논리를 조장해 이득을 챙기는 자와 이전 논리에 길들여진 사람을 대하는 자세는 달라야 한다. 이것이 구분되지 못하면 그저 ‘잘난 척 하고 싶은 자의 개혁 타령’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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