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한 단계도 극복하기 어려운데 신과 인간의 사랑은?

[초이스경제 장경순의 만필세상] 한반도에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하기 시작할 무렵, 한 무리의 인간들이 이동을 하다가 쓰러진 여성을 발견했다.

사람인 것 같은데 외모가 매우 특이했다. 심하게 못 생겼다는 얘기다. 말도 통하지 않았다.

무리 가운데 전쟁에도 나서지 않는 기술자 사내가 이 여인을 보살폈다.

사실 이 여인은 이들과 똑같은 사람은 아니었다. 지구상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앞선 인류, 호모에렉투스였다.
 

▲ EBS 프로그램 '한반도의 인류' 가운데 한 장면. /사진=EBS 홈페이지.

 

경기도 연천의 구석기 유물은 이들이 남긴 것이다. 한국인과 혈통의 조상은 아니지만, 한반도에 사람의 자취를 처음으로 남긴 이 땅의 조상들이다.

기술자 사내는 구석기 여인을 곁에 두고 일을 했다. 어려운 도구를 새로 발견했을 때, 기술자와 여인은 함께 기뻐했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점차 더 많은 감정을 공유해갔다. 이들 사이에 감정이 어디까지 승화됐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호모사피엔스 눈에 호모에렉투스 여성은 너무 못 생겼다. 가장 못생긴 호모사피엔스 여자를 ‘군계일학’으로 만들어주기에 충분한 호모에렉투스 여자들이었을 것이다. 두 인류 간에는 번식도 불가능했다.

진화의 한 단계만 차이가 나도 남녀간의 ‘춘정(春情)’이 나기에는 엄청난 ‘비주얼의 제약’이 존재한다. 아마 호모에렉투스 눈에도 현생인류는 영화 속 외계인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물며,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 관계는 어떨 것인가.

신화에서는 신이 인간을 사랑하는 얘기가 많이 나오지만, 과연 인간이 신의 눈길을 끌 수 있을까.

물론,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것이 있기는 하다.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여성 혐오자다. 마음에 드는 여성이 없어 이상형으로 꿈꾸는 여인의 조각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작품에 매료된 나머지 조각여인상에 사랑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의 사랑이 너무나 처절해, 마침내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의 마음을 움직였다. 어느 날 피그말리온이 집에 돌아와 조각상에 키스를 하자 온기가 느껴졌다. 깜짝 놀란 피그말리온이 조각상을 만지자 맥박이 뛰고 있었다. 이렇게 조각상은 생명을 얻었다. 피그말리온은 갈라테아라 이름 짓고 아프로디테의 축복 속에 결혼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높은 신인 제우스(주피터)도 피그말리온 효과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 제우스신 석상. /사진=위키백과. 퍼블릭도메인.

그는 수많은 인간 여성들에게 매료돼 다양한 형태로 접근해 관계를 가졌다. 제우스와 여성들 사이에서 많은 아이도 태어났다. 헤라클레스는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이다.

질투 많은 제우스의 아내 헤라여신의 무서운 눈초리 속에서도 제우스는 용케 방법을 찾아내 나훈아 노래 “청춘을 돌려다오”를 열창 또 열창했다. 나훈아는 콘서트에서 “일본의 아키코라는 할매가 내 노래 ‘청춘을 돌려다오’를 열 번 부르고 나서 아이를 낳았십니다”라고 자랑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제우스는 자신의 여성 편력을 다른 사람 책임이라고 발뺌하기도 한다.

제우스에게는 대단한 말썽꾸러기 외손자가 있다. 에로스(큐피드)다. 사랑의 화살로 유명한 악동 신이다.

에로스는 최고 미녀여신 아프로디테의 아들이고 아프로디테는 제우스의 딸이다. 그래서 에로스는 제우스의 외손자가 된다.

장난꾸러기 외손자는 자신의 화살로 장난하다 할아버지의 가슴을 여러 차례 맞췄다. 그때마다 제우스는 마침 쳐다보고 있던 인간의 여성에게 깊게 매료돼 어떻게든 사랑을 나눠야만 했다. 에우로페가 제우스의 아들 셋을 낳은 것도 이 때문이다.

마침내 할아버지도 참지 못하고 에로스를 야단쳤다.

“너는 지금까지 나를 여러 번 골탕먹였다. 네가 쏜 화살 때문에 나는 황소나 백조로 변신해서 여자들한테 접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얘기는 제우스가 에로스와 프시케(사이키)의 결혼을 승낙하는 자리에서 한 것이다.

에로스의 아내 프시케 또한 인간이다. 원래는 이렇게 결혼을 하면 안되는 ‘사랑과 전쟁’ 상황이었다. 시어머니가 될 아프로디테 여신이 프시케를 미워했던 것.

아프로디테의 신전에 나타난 프시케의 미모에 사람들이 푹 빠진 나머지 여신에 대한 경배를 소홀히 했다. 아프로디테는 아들 에로스에게 프시케를 벌주라고 명했다. 프시케가 못 생긴 남자를 봤을 때 사랑의 화살을 쏘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에로스의 실수로 화살이 자기 자신을 맞춰 그만 올림푸스의 악동 에로스가 프시케에 대한 열렬한 사랑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아프로디테는 미모의 여신이다 보니 헤라와 같은 혹독한 질투는 없었던 모양이다. 아들이 좋다니 모른 척 해줬는데, 이 인간의 미녀 프시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신뢰를 저버리는 일을 몇 번 저질렀다. 마침내 아프로디테가 프시케에게 혹독한 시련을 안겼는데, 프시케는 주위 신들과 사람들의 도움으로 해결해 나갔다.

배신의 상처를 극복한 에로스가 할아버지 도움을 청하자, 어머니 아프로디테 또한 프시케에 대한 미운 마음을 버리고 며느리로 받아들였다.
 

▲ 프랑스 화가 프랑수아 제라르의 1798년 작품 '프시케와 에로스'. /사진=위키백과. 퍼블릭 도메인.

 

대부분의 신화에서 신은 인간을 신과 비슷한 모습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신과 인간의 사랑 이야기가 많이 전하는 모양이다. 호모사피엔스와 호모에렉투스의 관계와는 전혀 다르다.

사실 우리도 우리 나름으로 천지창조를 한다. 소설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모두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소설로 창조한 가공의 이성이나, 그림 속 미녀에게 ‘깊은 감정’을 갖는 것은 절대로 이상한 얘기가 아니다.

인간의 조촐한 ‘천지창조’에는 현실에서의 아쉬움을 달래는 기능도 숨어있다. 그런 아쉬움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다면 그 작품은 대성공작이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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