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방에 계실 때 무슨 일이 제일 하시기 어렵더니이까.”

 
“중누비, 오목누비, 납짝누비 다 어렵지만 세(細)누비가 가장 하기 힘들었더니이다.”
 
영조와 그의 어머니인 숙빈 최씨 사이에 오간 대화다. 이 얘기는 고종이 그의 궁인에게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가 무수리가 아니라 침방나인이었다고 하면서 전해 준 얘기라고 한다.
 
엄마의 얘기를 듣고 영조는 그 자리에서 누비 토시(추위를 막기 위해 팔뚝에 끼는 것)를 벗어놓고 두번 다시 누비 옷을 입지 않았다고 한다.
 
막강한 장수 권력을 누린 임금에게 신분 낮은 그의 생모가 겪은 고생이 얼마나 심금을 파고들었는지 알 수 있는 일화다.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는 궁중에서 일을 하는 궁인이었다가 숙종의 눈에 띄어 훗날 영조의 생모가 됐다고 한다. 한동안은 허드렛일을 하는 무수리였다고 전해지기도 했는데 고종은 무수리는 아니고 침방 나인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장희빈 이야기에서 숙빈 최씨는 엄청나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장희빈 스토리는 신분 낮고 성격 악독한 장희빈이 지체 높은 집안의 덕망 가득한 인현왕후를 핍박해 만인의 분노를 사는 가운데 숙빈 최씨라는 여인이 돌연 나타나 이 나라 왕통을 착한 사람의 아들에게 돌아가게 했다는 아주 상투적으로 대중 감정을 자극하는 이야기다.
 
▲ 4월 방영 예정인 '장옥정, 사랑을 살다'에서 주연 장옥정(장희빈) 역을 맡은 김태희가 '단한복' 박선이 원장에게 바느질을 배우고 있다.

장희빈 드라마는 요런 정서를 제대로 자극하기만 하면 언제나 시청률 대성공을 이끌어냈다. 1972년 윤여정의 장희빈에서 1995년 정선경에 이르기까지 모두 똑 같은 모습이다. 피해자 인현왕후로 나오는 여배우들은 중견이 되면 지체 높은 집 시어머니 전담이 되곤 했다. (다만 1995년 장희빈에서는 설움 받는 본마누라 인현왕후를 그토록 눈물 나게 연기한 배우가, 뜻 밖에도 김원희였다는 것이다.)
 
1995년 드라마에서 정선경 장희빈은 궁중 내관, 별감들에게 날아차기 등 고난도 실력행사도 서슴지 않아 시청자들의 공분을제대로 불러일으켰다. 인현왕후전이 전하는 “일기 약(사약)으로도 신체가 다 녹을 텐데 연하여 세 그릇이나 들이부어도” 시원찮을 악독한 여자를 제대로 보여줬다.
 
이런 대중정서가 1701년 장희빈 사건 이래 300년이 훨씬 지나도 그대로 남아있는 것은 ‘인현왕후전’이라는 정치적으로 매우 악의적인(그러나 국문학적으로는 매우 귀중한) 창작물 때문이다. 마치 사건 당시 쓰인 척하는 인현왕후전은 ‘영종대왕(영조)’이란 단어를 씀으로써 스스로 허위임을 자백한다. 영종이란 묘호가 나왔다면 이 글은 최소한 75년은 지나서 쓰였다는 얘기다. 정조 즉위 후 노론 후예 벽파의 입지가 축소되는 가운데 나온 글이라고 보인다.
 
사실 장희빈은 한국사에서 가장 억울한 죄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인물이다. 상당수 사람들은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죽였다고 여긴다. 그러나 장희빈의 죄명은 무당을 불러 인현왕후를 저주했다는 것이지 실제 위해 행위를 했다는 얘기는 당시나 그 후나 전혀 나온 것이 없다.
 
인현왕후는 장희빈이 아니라 숙종이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왕후에서 폐출된 6년 기간에 심각하게 건강을 저해해 폐부를 상한 것이 그녀가 요절한 주원인으로 해석된다. 숙종은 인현왕후와 장희빈, 두 아내를 모두 죽게 만든 원인제공자다.
 
그래서 2000년 이후에는 드라마들이 장희빈의 관점에서도 접근해보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게 여의치 않다. 시청률 때문이다. 역시 ‘장희빈은 못돼 처먹어야’ 하고 악독한 천출 후첩을 제대로 권선징악해야 제 맛이라는 거다.
 
최정상급 여배우 김혜수가 2002년 맡았던 장희빈이 이런 시도를 살짝 보여줬다. 그러나 시청자 반응이 기대에 못 미쳤는지 막판에는 아들인 세자를 붙잡고 패악질하는 나쁜 여인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 2002년 드라마 '장희빈'에서 숙빈 최씨로 나온 박예진. 이 배역에 세련된 용모의 배우가 투입된 건 이때부터다. 그 대신 숙빈의 성격은 예전같은 순수하기 이를데 없는 여인에서 벗어나 정치 투쟁도 불사하는 사람이 됐다.
어떻든 장희빈이 여태까지 동화 속 악역에서 현실적인 하나의 여인으로 변신하다보니 상대역이 되는 숙빈 최씨의 이미지가 크게 변했다. 여고괴담 출신의 박예진이 이 역할을 맡았는데 한국 방송사에서 숙빈 최씨에 ‘미모’까지 집어넣은 연출은 이 때가 처음이다. 이 때부터 숙빈 최씨는 실제 정치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모사도 꾸미는 사람이 됐다.
 
그러더니 2010년 ‘동이’에서는 숙빈 최씨가 아예 주연을 맡아서 18세기 한국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내는 수퍼우먼이 되기에 이르렀다.
 
이번 4월에 시작하는 김태희 ‘장희빈’에서는 걸그룹 카라의 한승연이 숙빈 최씨로 나온다고 한다. 아이돌 스타가 나오는 판이니 무수리 이미지는 벌써 저만치 물건너 갔다. 아이돌 스타를 그런 컨셉으로 한다고 하면 그의 소속사가 가만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누비에 대한 잔잔한 한탄을 영조와 주고받는 숙빈 최씨는 아들의 ‘정식’ 어머니 노릇은 대비인 인원왕후에게 뺏긴 삶을 살았다. 비록 왕의 생모이나 정궁이 아닌 신분의 벽은 넘지 못했던 것이다.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를 낳은 영빈 이씨와,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를 낳은 혜경궁 홍씨도 비슷한 삶을 살았으니 꽤 오래 간 대물림인 셈이다.
 
살아서는 생모지만 모후는 아니었고 사후에는 청와대 옆 칠궁에 모셔져 오늘에 이르고 있는 숙빈 최씨는 일정한 테두리를 넘어설 수 없는 생애를 걸어갔다. 단지 오늘날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의 관념 속에서 물 짐 지는 여인이었다가 갑자기 아이돌스타로 돌변하기도 한다. 장희빈이 ‘인격 회복’을 모색하는 여파로 변신을 거듭하는 숙빈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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