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프로야구에서 이른바 ‘벤치 클리어링’이라고 하는 양팀간 무력 충돌에는 메이저리그 모든 팀에 공용되는 관행이 존재한다. 출장 선수들은 뛰쳐나가 팀과 팬에 대한 충성심을 과시해야 한다. 오늘 어디 몸이 좀 안 좋아서 어슬렁거리고 다녔다가는 이런 선수 내보내라는 팬들의 미움을 살 수도 있는 노릇이다.

 
한국 프로야구의 에이스 류현진의 합류로 오랜만에 박찬호 시절의 친근감이 되살아나는 LA 다저스다. 하지만 개막 직후 뜻밖의 마운드 난투극으로 인한 투수진의 손실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 12일 LA다저스의 잭 그레인키와 샌디에고 패드리스 카를로스 쿠엔틴이 육탄전을 벌인 현장, LA불펜의 모든 투수진들도 일제히 현장으로 돌진했다. 이 가운데는 크리스 카푸아노도 섞여 있었다. 육박전의 당사자인 쿠엔틴이 명문 스탠포드대 출신이라면 카푸아노 또한 동부의 오랜 명문 듀크대 출신이다. 여기서 그는 경제학을 전공했다.
 
▲ 지난 12일 LA다저스와 샌디에고 패드리스의 경기 중 벌어진 '벤치 클리어링'. /자료사진=뉴시스

이 싸움으로 인해 선발투수 그레인키는 쇄골 부상을 입고 팀 전력에서 이탈했다. 하지만 손해는 그레인키 뿐만이 아니었다.
 
카푸아노는 그레인키의 선발 자리를 보충하는 임무를 부여받아 팀의 위기가 개인의 기회가 되는 듯 했다. 그러나 그는 선발 등판 경기에서 2이닝 5실점으로 물러났다. 뿐만 아니라 부상자 명단에까지 올라가 당분간 출장을 못하게 됐다.
 
카푸아노 또한 12일 육탄전의 부상자였던 것이다. 그는 싸움이 벌어진 것을 보고 “불펜에서 마운드로 달려나갈 때 상당히 빡빡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선발 등판까지 4일 치료면 충분할 줄 알았지만 2회 1루베이스 커버를 들어가면서 근육이 파열되고 말았다.
 
메이저리그에서 내로라할 정도로 똑똑하다는 카푸아노였지만 난투극의 현장에서는 ‘똑똑한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불펜 구석에 숨어있는 행위는 상상조차 할 수 없거니와 격앙된 동료들 틈에서 혼자 어슬렁거리고 돌아다니는 행위는 팬들에 대한 ‘불충’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소년가장(?)’으로 오랜 세월 한화 이글스를 지탱하다 올해 메이저리그에 진입한 류현진에게는 아직 생소한 관행일지도 모른다. 어린 나이의 박찬호는 이런 치열한 현장에서 두 차례나 주역을 담당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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