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은행, 구조조정 자금 지원 받기 전에 자신들 과오부터 청산해야

[초이스경제 최원석 경제 칼럼] 최근 금융권 일각에선 산업은행을 비롯한 국책은행의 공신력문제가 새삼 뜨거운 이슈로 불거져 눈길을 끌고 있다.

한국은행이 국책은행에 대한 구조조정 자금 지원 문제와 관련해 “현금출자 보다는 손실 위험이 낮은 담보부 대출이 더 부합하다”고 밝히면서 국책은행에 대한 신뢰문제가 더 크게 부각되고 있다.

이에 정부측 일각에서는 “설마 국책은행이 파산할리 있겠느냐”면서 한국은행의 출자 기피 태도를 조심스럽게 반박하고 있다는 신문기사까지 나와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행의 태도가 옳고 그름을 떠나 “국책은행은 안전하니까 맘놓고 출자하라”는 식의 정부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그간 국책은행이나 정부가 보여준 실망스런 행위가 국민들에게 아프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국책은행이 부실화 되거나 국책은행의 재원이 부족해지면 무조건 국민부담으로 필요한 돈을 확충해준다는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은 봉이 아닌 까닭이다. 국책은행이 국민의 피같은 돈을 수혈 받아 알뜰히 쓰지 못한다는 의구심을 스스로 야기한 측면도 없지 않은 게 한국의 현실이다.

다시 말해 국책은행들은 대우조선해양이 저토록 부실화될 때 까지 어떤 일들을 했는지 묻고 싶다. 한진해운이나 현대상선에 대한 관리 또한 제대로 해왔는지도 따지고 싶다. 지금까지 산업은행 등에 낙하산되어 온 여러 국책은행장들이 자신들의 역할인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고 떠났는지도 의심스럽다. 산업은행을 비롯한 일부 국책은행이 부실 대기업에 자행출신을 임원으로 낙하산 시키면서 부실기업에 스스로 허점을 드러내지는 않았는지도 확인하고 싶다.

그 뿐 아니다. 금융당국이나 정부는 국책은행의 이같은 의문스런 행보 및 관행에 제대로 된 감독을 해 왔는지도 의문이다.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산업은행과 관련된 낙하산 인사 관행을 놓고 여러차례 강도 높은 지적을 해 왔는데도 왜 시정되지 않고 있는지도 한심할 따름이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놓은 ‘부실 대기업 구조조정에 국책은행이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를 보면 국민들이 공분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8년 34조원 규모였던 기업대출 규모가 작년엔 무려 82조원으로 크게 늘었다. 특히 국책은행의 기업 대출 중 대기업 대출 비중은 2014년에 47.5%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뿐만이 아니다. 부실 대기업 대출도 크게 늘었다. 지난 2009년 1.9%였던 한계 대기업 여신 비중은 그 뒤 꾸준히 늘어 2014년엔 12.4%로 급증했다. 국책은행이 제공한 대기업 지원금의 12%가 벌어서 이자도 못내는 한계기업으로 흘러갔다는 얘기다. 이것이 국가 자산, 아니 국민 자산 낭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참으로 국민들의 억장이 무너지는 내용이다. 경제계 일각에서 “정부가 출자해서 국책은행에 구조조정 자금을 댈 경우 국민혈세로 특정 부실기업을 지원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꼬집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책은행 스스로도 자신들의 공신력 훼손을 막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책은행들이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국민혈세를 투입한다면 그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런 점에서 한국은행이 국책은행에 대한 출자를 기피한다고 해서 한국은행만 나무랄 수도 없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물론 한국은행도 부실기업 구조조정이라는 국가 대사를 놓고 자기 잇속만 차리면 안 된다. 나라의 명운이 걸린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한국은행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 한국은행만 손해보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 이 또한 비판받아 마땅하다. 한국은행도 보다 현실적인 구조조정 자금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필자가 더 크게 따지고 싶어 하는 것은 국책은행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국민들에게 스스럼없이 손을 벌릴 수 있을 만큼 떳떳한 행동을 해 왔는지 여부다. 이제 국책은행은 자기관리부터 철저히 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정부나 금융당국이 국민혈세를 갖다 쓰는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에 대해 철저히 관리 감독하지 못한 것도 비판의 도마위에 올라야 한다. 산업은행 행장 등 중차대한 자리에 낙하산 인사를 투입할 때는 부실기업 관리 능력이 뛰어난 인물인지도 철저히 따져 보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정부도 책임을 추궁받아 마땅하다.

이 시점에서 정부가 할 일이 있다. 그리고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이 먼저 할 일이 있다. 정부나 산업은행은 한국은행이나 정부로부터 자금 확충을 받기 전에, 아니면 구조조정 자금을 지원 받기 전에, 최소한 국민들 앞에 서서 “앞으로는 부실기업 관리를 제대로 하겠다”는 약속부터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과거 국책은행이나 정부의 여러 과오는 묻어둔 채 국책은행들이 어려움에 봉착할 때 마다 국민들에게 손부터 벌리는 일 만큼은 더 이상 없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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