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 총재 "구조조정 중요성" 역설...한국 정부도 스스로 책임 추궁해야

[초이스경제 최원석 경제 칼럼] 지난주 우리는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로부터 의미심장한 뉴스를 접할 수 있었다.

그는 지난 9일(한국시각) 브뤼셀 경제 포럼에서 유럽의 정치권을 향해 쏜소리를 마구 던졌다. 그는 “지금 유로존의 저성장 위험이 더욱 커졌다”고 했다. “이게 모두 구조조정이 지연된데 따른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구조조정이 지연된 것은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유럽 금융계 수장이 정치권을 향해 직격탄을 날린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제대로된 구조조정이야 말로 경제를 일으키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ECB 총재가 강조한 것이다.

지난주 한국에서는 대우조선 등의 구조조정 실패와 관련해 네탓 공방이 있었다. 과거 대우조선에 막대한 돈을 들여 연명조치를 취한 것은 비단 산업은행 만의 책임은 아니라는 일부 주장이 제기됐다. 청와대 서별관 회의에서 주로 결정된 사안인 만큼 산업은행 책임만으로 몰아가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쏟아졌다. 그러자 서별관 회의에 연관돼 있던 당시 정부 당국자들은 “일부 개인의 의견에 개의치 않는다”며 비켜갔다. “당시 대우조선과 관련한 정책 결정과정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는 일부 당시 당국자의 반박도 있었다.

그러나 야당이 가만있지 않았다. 야당 일각에선 “당시 서별관 회의 내용”과 관련해 ‘청문회’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출했다.

이렇듯 최근 유럽과 한국에선 구조조정 지연 또는 실패 책임을 놓고 공방이 한창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이상한 문제가 발견된다. 한국의 구조조정이 실패한 건 확실하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상황만 놓고 보면 그렇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10조원이 넘는 엄청난 구조조정 자금을 국책은행에 지원키로 한 것이 이를 입증해 준다. 그런데 아직 책임지겠다는 당국자가 없다. 검찰이 부실책임을 규명하겠다며 산업은행과 대우조선을 압수수색한 것이 고작이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서별관 회의’와 관련해 거론됐던 당시 정부 최고위 인사들도 영전했거나 그대로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한명의 장관 만이 국회의원 신분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그럼 구조조정 실패로 국민 부담을 확 키운 정부 책임은 누가 진단 말인가. 검찰이 대우조선 분식 회계 등을 문제 삼아 압수수색을 벌이고 구조조정 실패 책임이 있을 법한 산업은행을 압수수색한 것은 나무랄 수 없다. 대우조선과 산업은행의 책임 또한 회피 할 수 없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럼 정부쪽 관계자들은 정말 문제가 없단 말인가. 당시 구조조정에 책임이 있을 법한 기획재정부 장관,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청와대 경제수석 등에겐 정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일일까. 필자도 세금을 내는 국민인지라 이런 의문을 수없이 가져왔다. 그러던 차에 당시 서별관 회의와 관련해 일부 “폭탄성 발언”이 불거져 정계와 행정부, 경제계가 발칵 뒤집힌 상태다.

이번에 야당이 ‘청문회’를 추진하기로 한 것은 일리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 서별관 회의에서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 아직 모른다. 국민에게 커다란 부담을 안겨 준 대우조선 등의 구조조정 실패 책임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도 잘 모른다. 구조조정 실패에도 불구하고 아직 정책 당국자 중 어느 하나 책임추궁을 당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 만이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국민들은 “누구의 잘못 때문에 내가 부담을 더 해야 하는지” 알 권리가 있는데도 영문조차 모른 채 세금을 더 내야 할지도 모를 상황에 처해 있다.

야당이 청문회를 운운하기 전에 행정부도 구조조정 실패에 연루된 책임자를 스스로 가려 내어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자칫 관계 당국자의 무책임 또는 무사안일, 아니면 정책적 오판이 구조조정 지연을 유발시키고 나아가 구조조정 실패로 인한 국가 경제를 위험에 빠뜨리면서 국민부담까지 키웠을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없는 게 작금의 상황이다.

거듭 말하지만 청문회 여부를 떠나 행정부 스스로 구조조정 실패 책임을 묻는 일이 병행돼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야만 다시는 국가 경제를 위협하거나 국민부담을 키우는 정책적 오판이나 정부내 무사안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외친 “구조조정이 지연되면 경기침체가 심화될 수 있다”는 말을 우리가 그냥 흘려보내선 안되는 이유는 자명하다. 한국은 지금 심각한 경제 위기에 직면해 있다. 경제당국자들 사이에 더 이상 남탓 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내가 행한 정책이 실패했다면 당연히 국민앞에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아직 그런 당국자도 없다. 개탄스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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