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아베정부와 거리두고 양적완화 축소 모드

‘兎死狗烹(토사구팽)’ ‘回帰(회귀)’ ‘아베の 미스테이크(아베경제정책의 실수)’ ‘아베 겟돈(아베의 패망)’

2013년 5~6월 일본을 둘러싸고 쏟아졌던 ‘비유어’ 또는 ‘신조어’들이다. 미국이 아베정부와 거리를 두기 시작하고 나아가 미국 통화당국이 양적완화 축소 모드에 들어가면서 그간 미국의 우산아래에서 큰소리치던 아베정부의 입지가 갈수록 초라해지고 나아가 아베노믹스마저 크게 휘청이면서 이같은 표현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글로벌 금융가에 따르면 일본에게 5월과 6월은 그야말로 ‘잔인한 기간’이었다. 미국 양적완화 축소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일본마저 유탄을 맞아 휘청인 한 달이었다. 특히 그간 일본의 양적완화와 엔저정책을 흔쾌히 용인했던 미국의 일본을 향한 우호정책에도 금이 가는 듯한 양상을 보였다.

또한 여기엔 아베정부의 지나친 우경화경향도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좀 봐준다 해서 일본은 미국이란 큰 형만 믿고 자신들의 침략전쟁을 옹호하고 주변국가와는 영토분쟁을 일삼으며 심지어 위안부 망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특히 일본 아베정부의 이같은 경거망동은 급기야 미국마저 자극하기에 이르렀고 일본 스스로 우방국을 스스로 내팽개치는 우를 범하게 됐다. 또 이런 경거망동은 7월 참의원선거를 앞두고 극에 달했다. 보수세력을 자극해 표를 얻어내려는 심산에서였다. 그러자 한국, 중국은 물론이고 미국의 태도도 돌변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일본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한편 그간 소원하게 지내왔던 중국과의 관계를 더 강화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그래서 등장한 용어가 미국이 일본을 한껏 이용해먹고 내팽개친다는 이른바 ‘兎死狗烹’론이다.

반면 중국은 일본과 달랐다. 미국과의 관계강화에 힘쓰기 시작했다. 중국 리커창 총리는 지난 5월26일 독일의 포츠담에서 역사적인 발언들을 쏟아냈다. 중국의 과감한 경제개혁정책을 표명했다. 일본의 입지를 약화시키기 위한 의도도 깔려있는 듯 했다. 바로 지난 1945년 7월 미국과 영국, 중국 3개국 대표가 모여 일본의 무조건 항복과 점령지 반환을 촉구한 ‘포츠담 선언’이 있던 바로 그 자리서 이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당시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수용하지 않자 미국은 열흘 후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했고 일본은 패망했다)

그런데 70년 전 포츠담 선언이 있었던 바로 그 자리에서 리커창 총리가 일본을 견제하는 선언을 한 것이다. 이를테면 ‘新포츠담 선언’인 셈이다. 리커창 총리는 센카쿠 열도 뿐 아니라 아시아 또는 전 세계에서 갖고 있는 일본의 영향력 제거를 노렸다. 바로 중-미 정상인 ‘시진핑-오바마’ 정상회담이 있기 10일전에 이런 신 포츠담 선언을 쏟아내 눈길을 끌었다.

특히 리커창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는 미국이 원하는 자본자유화와 국영기업 지원 감축, 과잉투자 해소 등 굵직한 구조조정 계획방안을 쏟아냈다. 투자확대를 제외한 미국이 원하는 정책을 모두 쏟아낸 것이다. 위안화 절상, 수입확대 및 내수 진작, 보유외환의 미국 투자 확대 의향도 밝혔다. 그러자 미국은 이를 반겼다. 미국은 특히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자랑하는 중국의 對미국 투자방안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그러자 親오바마 매체로 통하는 ‘뉴욕타임즈’는 중국의 이번 개혁정책은 진정성이 높아 보인다고 화답했다.

미국 지도부의 반응 또한 빠르고 민첩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이 무제한 양적완화 정책에서 벗어나려면 국채시장 안정을 위해 미국 국채에 투자해 줄 누군가 새로운 세력이 필요했는데 중국이라는 거대 지원군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국채 매입을 축소할 때 누군가 축소분 만큼의 미국 국채를 사줘야 하는데 그 세력으로 중국이 떠 오른 것이다. 심지어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미 올해 초부터 양적완화 축소 시 중국의 역할 론을 둘러싸고 미국 내에선 여러 차례 논쟁을 벌여 왔다”고 보도했을 정도다. 아니 중국이 미국 국채 매입에 적극 나서주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중국이 보유한 막대한 규모의 미국 국채를 매도케 해선 안 된다는 공감대도 형성되고 있었다.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중국 또한 자신들이 미국 국채매도에 나설 경우 채권 값은 더욱 떨어져 중국 또한 거대한 국부손실이 불가피해지는 형국이 된다. 이 때문에 최근 오바마-시진핑 정상회담에선 이같은 경제현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했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하지만 중국 자본의 미국 국채 투자확대 문제와 중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 매각 자제 건과 관련해선 양국 간 논의할 과제가 산적해 있어 쉽게 결정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다만 중국으로서도 미국 국채를 함부로 매각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 양적완화 축소로 미국 채권 값이 헐값으로 전락할 때 중국으로서도 마냥 지켜만 보고 있지는 못할 것이라는 점 등은 두고두고 글로벌 시장의 관심사로 떠오를 전망이다.

그 뿐 아니다. 중국 정부는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이 주도하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가입하겠다는 시그널도 함께 보냈다. 미국이 TPP를 통해 일본을 끌어안고 중국을 견제하려 공을 들이고 있는 터에 중국이 TPP에 가입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또한 이는 그간 중국이 주도하는 한중일 FTA(자유무역협정)와 RCEP(아시아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를 뒤로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TPP에 서둘러 가입했던 일본의 허를 찌르기에 충분했다.

그래서일까. 지난 5~6월을 거치면서 일본 시장에선 ‘兎死狗烹’이라는 한자 숙어가 심심찮게 거론됐다. 또‘回帰’란 말도 언론에 자주 등장했다. 미-일 관계가 원위치로 돌아가고 양적완화 조치로 한 것 치솟았던 주식 채권 등 일본 내 자산가치도 과거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이 단어가 부쩍 빈도 높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6월 들어 미국에선 양적완화 축소 논쟁이 확산되고 일본 시장의 변동성도 크게 확산되자 아베노믹스를 비꼬는 ‘아베の 미스테이크‘(아베의 경제실책)’라는 신조어까지 생성돼 나돌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 달러화에 대한 엔화환율의 상승세가 주춤해지자 노무라 증권의 즈웨이 장은 “일본의 경우 경기 회복 여파로 올 연말엔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89엔수준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일본에 대한 우려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월가에선 일본에 이어 앞으로는 영국 ECB(유럽중앙은행) 등 주요 선진국이 모두 양적완화에 나설 것으로 여겨지면서 그간 일본 혼자 향유해 왔던 양적완화 효과도 여러 나라로 분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이 경우 양적완화를 나홀로 만끽하던 일본은 수세적 국면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함께 제기됐다.
 
‘데이비드 우’라는 월가 전문가는 “일본에 의해 촉발된 각국의 양적완화 정책은 시간이 흐를수록 확산될 것이며 이제 일본은 양적완화와 관련해 공세적 입장에서 수세적 입장으로 몰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이 그간 양적완화와 환율조작으로 세계 경제를 겁박했으나 오해려 역풍을 맞게 될 것이란 얘기가 심심찮게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최근 미국 국채금리 불안이 일본 국채 금리 불안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일본 증시의 변동성을 키우면서 아베노믹스에 대한 불안감도 자꾸 커지는 양상이다. 일본 시장을 둘러싸고 ‘아베の 미스테이크’라는 비아냥이 쏟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아베노믹스를 비꼬는 신조어는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미국 월가에선 급기야 ‘아베の 미스테이크’라는 신조어만으로도 모자랐는지 ‘아베 겟돈’이라는 보다 강도 높은 신조어로 일본 시장을 폄하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아베 겟돈’이란 아베총리와 아마겟돈(세계 종말)의 합성어로 아베의 경제정책이 완전 실패로 끝날 수도 있음을 우려한 합성어다.
 
지난 6월7일(한국시각) 월가에선 하루 환율변동폭이 무려 3%나 되는 급등락을 연출했다. 한국시각으로 익일 발표될 미국 고용지표가 어떻게 나올지에 온통 관심이 쏠린 가운데 미국 달러화가치가 요동친 것이다. 이런 가운데 희생양이 된 것은 역시 엔화였다. 시장이 요동치자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엔화매입에 적극 나선 것이다. 당연히 엔화가치가 솟구쳤다. 이날 달러당 100엔대에 있던 엔-달러환율이 장중 95엔대까지 급락했다가 간신히 96엔대로 마감했다.
 
특히 엔저를 겨냥했던 일본의 양적완화정책에도 불구, 이날 엔화가치가 오히려 강세로 전환되자 이러다가 일본 경제가 완전 망가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흘러나왔다. 특히 CNBC출연자중 일부는 “일본의 경우 양적완화조치로 자산 가격은 상승하고 있는데 실질성장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는 게 문제다”면서 “이처럼 계속 자산가치만 오르고 실질 경제성장으로 이어지지 않을 경우 일본의 경제와 금융시장은 매우 불안해지는 이른바 ‘아베 겟돈’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또 RBS은행은 6월초 “미국 달러화에 대한 엔화 환율이 다시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일본시장에선 아베총리에 대한 실망감이 고조되고 있다”면서 “시장은 지금 6월10~11일 열릴 구로다 총재 주재 일본은행(BOJ) 통화정책회의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6월11일 끝난 BOJ통화정책회의에서도 일본 국채시장과 증권시장을 진정시킬 만한 추가적인 양적완화 조치가 나오지 않자 글로벌 시장에선 ‘구로다의 침묵’이 일본 시장의 미래를 더욱 불안케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아베정책의 성공이나 실패를 논하기엔 아직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많아 ‘아베の 미스테이크’나 ‘아베 겟돈’이라는 신조어가 현실화될지는 미지수다. 또한 일본 일각에선 엔저의 효가가 나타나려면 최소한 양적완화 시행 후 8~9개월이 소요되는 만큼 엔저로 인한 일본 경제의 호전 여부는 올 하반기에 본격 나타날 것이란 얘기도 나돌고 있다. 지난해 말 양적완화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또한 구로다가 6월 통화정책회의에서 추가적인 조치를 내놓지 않은 것은 이런 일본 경제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조치였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일본은 지금 굉장히 큰 도박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자국의 양적완화 출구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그간 유로존으로 하여금 양적완화를 촉구했으나 독일이 이에 반대하자 막연해진 상황에서 일본이 스스로 미국식 양적완화를 하겠다며 나섰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자 미국은 일본의 양적완화를 몹시 반겼다는 게 시장의 정설이다. 미국 자신이 국채 매입을 줄일 때 대신 돈을 풀어 이를 사줄 대체세력이 필요했는데 일본이 손을 들고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과도한 돈 풀기에 나서고 양적완화 시행 6개월 만에 비틀거리는 모습을 나타내자 미국은 일본을 버리고 다시 더 큰 대체세력인 중국을 아주 중시하는 정책을 쓰고 있는 듯 한 양상이다. 미국이 자신들의 양적완화 부담을 각국에 전가하려는 움직임 속에 세계는 지금 미국의 환심을 사기 위해 치열한 샅바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아베가 큰 도박판을 벌이다 궁지에 몰려가는 형국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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