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가수도 아닌데 마리오 드라기 ECB(유럽중앙은행) 총재가 6월 들어 갑자기 백스텝을 밟아 궁금증을 나아내고 있다. 지난 5월까지만 해도 “유로존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던 드라기가 6월초 통화정책회의가 끝난 뒤부터 경기부양기조에서 돌연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6월초 통화정책회의에서 ECB는 아무런 경기부양조치도 내놓지 않았다. 기준 금리는 동결되었고 초과지준 이자율도 그대로 뒀다. 그 뿐 아니다. 앞으로 당분간은 아무런 조치도 내놓지 않을 것이란 점을 부각시켰다. 그러면서 유로존 소속 각국 정부에겐 “재정 규율을 확실히 지키라”고 강하게 압박했다. 마치 독일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드라기 총재는 6월6일 통화정책위원회를 마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유로존 경제 악화위험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필요하면 행동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는 단골 멘트도 날렸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통상적인 멘트에 불과했다. 다른 한편으론 최근 경제심리 설문조사지표에서 일부 개선이 있었다는 점을 집중 부각시켰다. 지난 5월 통화정책회의때만 해도 “유로존 내 취약한 경제심리가 올 봄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해놓고는 갑자기 한 달 만에 말을 바꾼 것이다. 또 올 유로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마이너스 0.4%에서 마이너스 0.6%로 하향조정하면서도 이는 1분기의 부진한 수치를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내년 전망치는 기존 1%에서 1.1%로 상향수정했다.

그러나 드라기 총재가 시장을 진짜 실망시킨 것은 6월 통화정책회의때 ‘마이너스 지준금리’(은행들이 ECB에 재예치한 돈을 마이너스 금리로 푸는 것, 이 경우 돈 가치 하락을 우려한 장롱 속 돈들이 소비시장에 쏟아져 나와 경제에 활력을 주게 됨)도입과 관련해 한발 빼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드라기 총재는 지난 5월 통화정책회의때 감히 마이너스 지준금리제도를 언급했었다. 용감한 발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이너스 지준금리(마이너스 예금금리)제도는 함부로 시행하기 어려운 제도다. 많은 부작용 때문이다. 물론 시행만 하면 이보다 확실한 부양대책도 없다. 마이너스 금리가 시행되면 각 가정 장롱 속에서 잠자던 돈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올 게 분명하다. 그리하여 소비시장이 들먹일게 확실하다. 마이너스 금리상태에선 돈이란 집에다 놔둘수록 그 가치가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유증도 막대할 수 밖에 없다. 소비 좀 살려보겠다고 많은 사람의 자산 가치를 훼손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금리 대책의 부작용이 클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래서 마이너스 금리제도는 경기부양책의 맨 마지막 수단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런데 마리오 드라기가 지난 5월 감히 마이너스 금리 얘기를 꺼냈던 것이다. 이는 그만큼 유로존의 경제상황이 어렵다는 얘기다.

현재로선 유로존에 ‘마이너스 금리’ 도입 가능성이 있는지, 도입된다면 언제쯤 가능한지 등과 관련한 추측만 난무할 따름이지만 적어도 지난 5월 드라기 총재가 ‘마이너스 지준금리’라는 단어를 언급한 것만으로도 시장은 환호했다. ECB가 유로존 경기상황에 따라 여차하면 이 카드를 만지작거릴 수도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그래서 마이너스 지준금리 카드를 일컬어 시장에선 일명 ‘드라기 콜’(Call)이라는 표현을 쓰기까지 했다. 그러나 6월들어 ECB가 이 드라기 콜을 다시 선반위로 얹어버린 것이다. 드라기는 그러면서 마이너스 지준금리제는 여러 부작용이 우려되는 만큼 함부로 쓸 수 없는 카드라고 일축했다.  ‘이름하여 드라기 콜 백스텝’을 연출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드라기는 유로존 경기부양과 관련해 왜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것일까. 이는 다름 아닌 미국과 일본의 양적완화 축소 움직임에 따른 반작용 때문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남유럽 국가들을 보호하기 위해 마이너스 지준금리 카드를 선반위로 다시 얹은 게 아닌가 하는 해석이 뒤따르고 있다.

우선 미국에서 양적완화 출구전략 논란이 본격화하면서 미 달러화가치는 강한 절상압력을 받게 된 반면 반대로 유로화 가치는 강한 절하 압박을 받게 되었다. 또 이 과정에서 남유럽 국채가격이 급락하는 상황을 연출했다. 여기에다 일본마저 아베노믹스의 불안으로 엔화가치 하락기조까지 주춤해지면서 역시 유로화가치 하락을 더욱 부추기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따라서 미국과 일본의 양적완화기조가 주춤해지기라도 하면 남유럽 금융시장에선 국채가격하락으로 금융시장 불안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만큼 유로화가치를 방어해야 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드라기가 백스텝을 밟은 이유다.

하지만 드라기가 더 이상의 양적완화 확대를 주저한 채 고심하는 덴 독일의 보이지 않는 압력도 상당히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최근 그리스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의 경제 상황이 더욱 악화되자 ECB를 통한 양적완화를 확대하는 대신 자체적인 미니 마샬플랜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자 독일을 향한 비난여론도 커지고 있다. 독일이 ECB를 통하지 않고 독자적인 남유럽 구제책을 준비하는 것은 곧 유로존에 대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조치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집권을 노리는 메르켈 총리가 9월 선거전 까지 ECB를 통한 대규모 양적완화를 허용할 리 만무하다. 이는 메르켈이 주창하는 경제개혁 노선에 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9월 선거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ECB의 맹주인 독일이 이처럼 적극적인 양적완화를 회피하는 상황에서 마리오 드라기가  감히 마이너스 금리라는 극약처방까지 내놓겠다고 했으니 독일이 가만 있었을 리 만무하다. 또한 독일에선 지금 그간 ECB가 시행했던 양적완화를 놓고 위헌 소송까지 진행되고 있다. 이 또한 드라기의 머리를 복잡하게 하고 있다.

아마 마리오 드라기는 지금 각종 추가 부양조치를 독일 선거가 끝나는 9월 이후로 미루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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