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냉키는 지금 레임덕중...버냉키 맘 비우고 로드맵 발표”

“QE축소와 금리인상 따로 추진한 건 시장에 긍정적”

“일본은 미국 양적완화 축소에 직격탄 맞을 수도”

“노무라...미국, 금융시장거품 때문에 QE축소 서둘렀다”

“미국...QE축소하면서 다른 나라엔 QE확대 요구할 듯”

“김중수...한국은 금리인상으로 미국 QE축소에 대응한다”
 
<최원석-장경순기자>
 
미국이 양적완화와 관련한 불확실성을 연이어 제거하고 나섰다. 5월18일(이하 미국시각)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벤 버냉키 의장을 내년 초 교체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이어 다음날인 19일엔 버냉키 연준 의장이 시장의 예상을 깨고 양적완화(QE) 축소와 중단의 로드맵을 과감히 제시하고 나섰다. 올해말 양적완화를 축소하기 시작해 내년 상반기까지 축소 작업을 계속한 뒤 내년 중반쯤엔 아예 중단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그러나 금리인상 시기는 2015년으로 멀찌감치 잡음으로써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지혜를 발휘해 눈길을 끌었다. 드디어 미국의 양적완화시대가 종말을 예고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은 대 격변을 예고하고 있다. 또한 한국을 비롯한 각국의 양적완화 중단에 대비한 대비책 마련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버냉키는 지금 레임덕중= 미국 시장에서 최근까지 가장 궁금해 했던 대목중 하나는 버냉키의 연임여부였다. 버냉키는 다름아닌 현재의 비전통적 통화정책, 즉 ‘무제한 양적완화정책’을 주도한 사람이다. 그러나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단호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18일 “버냉키가 너무 오래 근무한 것 같다”는 말로 버냉키의 연임 가능성을 싹뚝 잘라버렸다. 2010년10월부터 2기 임기를 시작한 버냉키를 내년 1월 임기만료때 교체하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밝힌 것이다.
 
오바마의 이같은 발언은 다소 의외적인 것이었다. 최근 버냉키가 프린스턴대를 방문한 뒤 “내게 대학으로 돌아갈 교수자리는 없다”고 밝혀 자칫 연임가능성도 있는 것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시장에서도 버냉키가 그간 아무도 하지 못한 비전통적 통화정책 즉, ‘무제한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해 시장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온 만큼 양적완화 종료 또한 그의 손으로 ‘결자해지’케 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버냉키의 연임가능성을 완전 배제하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오바마는 이같은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다. 버냉키를 자르기로 한 것이다. 오바마의 이런 판단 뒤엔 아마도 “엄청난 양적완화 축소의 후유증을 감안할 때 버냉키가 자신의 손으로 만든 정책을 마음 비우고 중단시킬 수 있겠느냐. 그보단 차라리 남의 손을 빌려 엄청난 정책을 중단토록 하는 게 더 맞지 않겠는가”하는 심리도 함께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옐런 연준 부의장, 티모시 가이트너 전 재무장관 등 다른 비둘기파들에게 차기 연준 의장을 맡기더라도 버냉키와 똑같은 정책을 유지하고 종료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도 버냉키 교체를 결정케 한 요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어쨌든 버냉키가 연임할 건가 아닌가 하는 불확실성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됐다. 그리고 이는 시장에 긍정적인 신호를 줄 것으로 보인다.
 
이와관련, 미국의 억만장자인 케네스 랑곤은 “버냉키는 현재 레임덕에 빠져있다”면서 “이제부터 버냉키는 다른 연준 위원들의 말을 전하는 의사전달자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버냉키, 마음 비우고 양적완화 로드맵 제시=버냉키 교체사실이 알려진 뒤 버냉키는 과감했다. 마음을 비운 듯 했다. 올 연말부터 양적완화 축소에 들어가겠다고 거침없이 밝힌 것이다. 미국 경제가 연준이 의도하는 대로 움직일 경우 올 연말부터 하루 850억달러에 이르는 자산매입규모 즉, 양적완화규모를 축소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년초엔 신중하게 양적완화 축소조치를 지속한 뒤 내년 중반쯤 양적완화 기조를 완전 중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미국 경제에 대해서도 낙관했다. 올해 미국 GDP(국내총생산) 성장률과 관련해선 지난 3월 예측했던 2.3~2.8%보다 다소 낮은 2.3~2.6%로 약간 하향조정했다. 그러나 내년과 2015년 전망은 아주 낙관했다. 2014년 전망과 관련해선 3월전망치(2.9~3.4%)보다 높은 3.0~3.5%로 상향 조정했다. 아울러 2015년엔 미국 경제성장률이 2.9~3.6%로 더 높이 날아오를 것이라고 낙관했다.
 
실업률도 올해 7.25%, 2014년 6.65%, 2015년 6%로 갈수록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플레 또한 올해 1%에서 내년엔 1.7%, 그리고 2015년엔 1.8%로 아주 안정적으로 움직일 것으로 내다봤다.
 
버냉키는 이런 전망을 근거로 ‘올 연말 QE 축소시작-내년초 QE 축소 지속-내년 중반 QE중단’이란 확실한 로드맵을 제시한 것이다. 그는 그러면서 “양적완화 출구전략은 미리 정해지는 게 아니다”고 했다. “경제지표의 흐름 따라 시간을 두고 결정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QE조기축소는 경제호전 때문이 아니라 금융시장거품 때문=그러나 버냉키의 양적완화 축소 및 종료 로드맵은 시장 여건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당초엔 실업률 6.5%이하, 인플레 2.5%이상이라는 목표가 달성돼야 양적완화를 축소한다고 해놓고 이를 대폭 수정한 것이다. 그러면서 연준은 유연성이라는 조건을 가미했다. 실업률 6.5%와 인플레 2.5%는 금리인하의 기준으로 돌리고 양적완화는 경제여건이 어느정도 개선되면 축소할 수 있다고 유연하게 조건을 수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설왕설래가 많다. 버냉키가 미국 경제를 낙관했지만 미국 경제는 여전히 갈길이 멀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노무라 증권은 “버냉키가 양적완화 축소시기를 앞당기는 것은 경제지표나 실업률지표가 좋아져서가 아니다”고 했다. 노무라증권은 이어 “미 연준이 양적완화 축소를 서두르는 것은 오히려 자산거품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단정했다. 연준이 시장에 무제한으로 돈을 풀어대고 대규모 투기적 차입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금융시장 안정성이 급속히 저해되는 양상을 보이자 이처럼 양적완화 조기 축소에 임하는 것이라고 노무라 증권은 덧붙였다. 실제로 버냉키 의장은 지난 4월부터 “미국 시장의 자산 거품이 심각하며 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말을 자주 언급, 노무라증권의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래도 ‘QE축소’와 ‘금리인상’ 격리한 건 천만다행=월가는 버냉키의 조기 로드맵 발표에 대해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다. 특히 ‘양적완화 축소 및 중단시기’와 ‘금리인상 시기’를 완전히 다르게 설정한 것은 천만다행이라는 반응이다. CNBC에 출연한 월가 전문가들은 “적절한 시기에 연준이 양적완화 로드맵을 제시했다”며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스티브 포브스’ 포브스CEO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5월19일 로드맵 제시와 함께 주가가 출렁인 것은 그간 공짜사탕에 길들여졌던 투자자들이 깜짝 놀라면서 일어난 일”이라며 “길게 보면 이날 로드맵 제시는 적절한 시기에 이뤄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런가 하면 모건스탠리의 부회장 등은 “연준이 양적완화 축소와 금리결정을 별개로 격리시켜 추진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라고 진단했다. 금융시장은 양적완화보다 금리인상에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다시말해 올 연말 양적완화축소에 돌입하더라도 연준이 기준금리는 한동안 0~0.25%라는 이른바 ‘제로금리기조’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밝힌 만큼 금융시장 충격도 그만큼 분산될 것이라는 주장들이다. 실제로 버냉키의장은 “다수의 연준 위원들은 오는 2015년에나 기준금리를 올리자는 의견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어쩌나=그러나 미국이 양적완화 로드맵을 밝혔다고 해서 시장 불확실성이 완전 해소되진 않을 전망이다. 일본 등 다른 나라의 양적완화 또한 많은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상당수 전문가들은 일본이나 유로존, 영국 등이 양적완화에 나서줄 경우 미국이 설사 양적완화를 축소하더라도 그 충격이 상당 수준 상쇄될 것이라고 여겨왔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부담을 다른 나라에 전가시키면 시장 안정을 꾀할 수 있다는 게 상당수 미국사람들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생각이 맞아떨어질지는 미지수다. 미국이 금융시장 거품을 우려해 양적완화 축소시기를 앞당기듯 일본의 양적완화 또한 워낙 급하고 과격하게 추진되다보니 많은 걱정거리를 안고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근 G8(선진주요8개국)회의에서 각국 대표는 일본 정부를 향해 “재정건전성 강화에 신경쓰라”고 충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은 국가부채비율이 자그마치 GDP대비 240%를 넘어선 상태에서 양적완화를 추진한 게 문제고 아울러 경제력은 미국의 3분의1수준에 머물면서 매월 돈을 풀어댄 규모는 미국수준이었다는 것도 화근거리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일까. 엘지경제연구소 배민근 연구위원은 한 증권방송에 출연, “미국발 양적완화로 인한 채권금리상승 압박은 일본의 양적완화 효과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 QE축소위해 다른나라 희생 강요할 듯=한편 미국은 자신들의 양적완화 축소를 진행하면서 소위 일본 중국 유로존 영국 등 다른 나라들에 대해선 양적완화를 확대케 하거나 경기부양에 나서줄 것을 강력히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양적완화를 줄임으로써 나타날 공백을 다른 나라들이 메워줄 것을 희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그간 일본의 양적완화를 흔쾌히 용인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양적완화를 축소, 중단하고 다른 나라는 양적완화를 새로 시작 또는 확대키로 하는 이른바 ‘엇박자’국면에서 미국의 의도가 얼마나 뜻대로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이 또한 시장의 불확실성을 확대시키는 요인중 하나로 인식될 전망이다.
 
◆한국 등 각국, 대비책 마련 만전 기할 듯=무엇보다 미국이 양적완화 축소 임박신호를 보내면서 한국을 비롯한 이머징 마켓의 변동성이 커졌다. 특히 이머징 마켓의 채권시장은 그 풀이 아주 낮고 빈약하다. 따라서 앞으론 이머징 마켓보다 미국 등 일부 강대국 채권시장만 건재함을 과시할 전망이다. 이머징 마켓으로 나갔던 돈들이 채권시장의 풀이 깊고 큰 미국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관련, 미국시장에선 설사 미국 국채금리가 연 4%로 오르더라도 놀랄 필요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아울러 버냉키 의장도 “미국에서 채권금리 좀 오른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고 단언했다. “미국 경기가 호전되면서 금리가 오르는 건 당연한 이치”라는 것이다. 또한 양적완화를 조기에 축소하더라도 “당분간 ‘제로금리’를 유지하고 기준 금리는 아주 먼 훗날인 2015년에나 이뤄질 것”이라고 밝힌 것도 주식-채권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그런 만큼 시장 불안이 우려되는 곳은 미국이 아니라 한국 등 힘없는 국가들이다. 이머징 마켓 국가들이 대비책 마련에 적극 나설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이와관련,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미국의 양적완화가 종료될 경우 이에 대비하기 위해 한국도 금리 인상기조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지난 5월17일(한국시각)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설훈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이 “미국이 양적완화의 출구전략을 한다면 한국은행은 어떻게 해야 하나”하고 질문하자 김 총재는 “금리는 올라갈 것으로 본다”고 답변한 것이다. 명목상으로는 시장금리에 대한 언급이지만, 시장금리의 상승은 중앙은행의 정책금리 인상까지 동반하는 속성을 갖고 있어 기존의 완화적 통화정책이 전환될 수 있음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만약 미국의 양적완화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 경우, 김중수 총재는 자신이 한국은행 부임 때부터 강조해온 ‘지나치게 낮은 금리의 정상화’ 기조를 본격 단행할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그의 임기 또한 내년 4월까지여서 양적완화가 종료될 경우 김중수 총재 후임자의 정책 행보가 관건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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