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중앙은행 몸 사리고 미국-독일 국채금리 급반등...자산 시장 이상기류 형성

▲ 사진=뉴시스

 

[초이스경제 최원석 경제칼럼] 필자는 최근 한 금융회사 고위 관계자와 저녁식사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나온 말이 섬뜩하다. 우리나라 금융회사들이 채권을 대량 보유하고 있는데 금리가 올라 채권 가격이 떨어지면 커다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게 이야기의 골자다. 예컨대 A은행의 경우 채권 보유액이 자그마치 30조 원을 넘는다고 했고, 다른 금융회사들도 채권 보유 규모는 다르지만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최근 초저금리 속에 글로벌 금융회사들은 채권에 투자해 쏠쏠한 재미를 봤다. 각국 중앙은행의 대규모 돈풀기 경쟁 속에 채권 금리가 떨어질 대로 떨어지면서 채권 가격이 급속히 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금융회사들마다 채권 보유량을 과도하게 늘린 측면도 없지 않다는 게 이 관계자의 걱정이었다.

그런데 최근 글로벌 채권 시장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의 핵심 인사들은 “기준금리 인상을 너무 늦추면 자산 시장에 과열 현상이 일고 자산 거품이 커질 수 있는 만큼 미국 연준도 금리인상에 나서야 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당장 지난주에도 제프리 래커 리치먼드 연방은행 총재가 “미국의 경제 상황이 생각보다 괜찮다”면서 “미국 연준이 9월에 금리를 올릴만한 강한 근거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에릭 로젠그렌 보스턴 연방은행 총재도 지난 9일(미국시각) “연준이 금리인상을 지나치게 지연시킬 경우 자산시장이 과열될 우려가 있다”면서 사실상 금리인상 지지 입장을 표출했다. 로젠그렌은 그간 과격한 금리인상을 반대해 온 연준 내 대표적 비둘기파에 속하는데 그런 비둘기파 인사마저 금리인상의 필요성을 역설해 눈길을 끌었다.

이는 뭘 말하는가. 과거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이 자산 시장 과열 우려를 지적하면서 긴축(중앙은행 정책 비정상의 정상화)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것과도 맥을 같이하는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제 각국이 통화정책의 힘만으로 경제를 끌고 나가는 데 한계에 달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간 각국 채권금리가 크게 떨어지고 일부 국가에선 국채금리가 마이너스 상태로 추락해 채권 가격이 급등세를 보인 데는, 각국 중앙은행의 경쟁적인 돈풀기 정책에 의한 것이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최근엔 중앙은행들의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확연하다. 당장 지난주엔 유럽중앙은행(ECB)이 ‘추가 부양책을 내놓을 것’이라던 시장의 기대를 뒤로 하고 아무런 추가 부양책을 내놓지 않자 시장이 크게 실망한 바 있다.

한국은행도 최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한국의 가계부채가 심각할뿐더러 미국의 금리인상이 우려된다”면서 또다시 기준금리를 동결시켰다.

그간 틈만 나면 일본 경제를 위해서라면 무슨 조치든 아끼지 않겠다던 구로다 일본은행 총재도 최근 들어선 “중앙은행 조치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말을 던져 눈길을 끌었었다.

이것이 최근 각국 중앙은행이 처한 새로운 현실이다. 중앙은행이 더 이상 돈을 풀어대는 데 한계 상황을 맞고 있다는 얘기다. 중앙은행의 실탄이 고갈되었다는 진단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을 정도다.

중앙은행들이 더 이상의 통화완화 정책 대신 이제 통화정책의 정상화를 모색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면서 이제 중앙은행들은 자국 정부를 향해 “각국 경제가 통화정책에 매달리는 대신 구조개혁과 재정의 역할을 확대하는 쪽으로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지난 9일(미국시각) 에릭 로젠그렌 보스턴 연방은행 총재가 연준을 향해 “더 이상 금리인상을 늦추면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시장 과열화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로젠그렌이 자산시장 거품을 걱정하던 같은 날(미국, 유럽시각 9일) 서방의 국채시장에선 일부 특이한 움직임이 포착돼 주목받았다.

같은 날(서방시각 9일) 하나금융투자의 박문환 이사는 한국경제TV에 출연해 “이날 독일의 10년물 국채 금리가 무려 10bp나 상승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금리 상태에서 탈피해 플러스로 돌아섰다”고 했다. 그는 이어 “같은 날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도 8bp나 껑충 뛰면서 그 배경이 주목된다”고 했다. 그는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면서 “주시해야 할 대목이다”고 강조했다.

그렇다. 현 시점에서 미국이 갑작스레 금리인상에 나서고 다른 한편에서 그간 낮은 포복을 지속했던 채권 금리가 반등해 채권 가격이 하락세로 질주할 경우 글로벌 금융회사는 물론 한국의 금융회사들도 난처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비상이 걸리는 것은 채권시장 뿐만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에릭 로젠그렌은 미국 부동산 시장의 과열 양상도 우려된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일각에선 미국증시를 비롯한 글로벌 증시도 만일의 사태에 취약해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걱정한다.

전 세계가 초저금리에 도취해 있다고 해서 안주할 때가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한국 또한 초저금리 상황에서 주요 자산시장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는 진단이 뒤를 잇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의 부동산 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의 채권시장도 무풍지대가 아니다.

지금이라도 한국 정부는, 한국 금융당국은, 한국의 금융회사들은, 그리고 한국의 가계와 투자자들은 “만일의 돌변 사태에 대비하는 자세”를 서둘러 취해야 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게다가 한국은 북한 변수까지 안고 있는 국가다. 다른 나라보다 더 큰 돌변 사태가 올 수도 있는 국가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한국의 경제 주체들은 지금이라도 빚을 줄이고 나아가 위험투자를 삼가는 자세를 철저히 이행해야 할 것이다.

지난 주 한국은행이 “미국의 금리인상 우려와 한국의 가계 부채 우려가 크다”면서 추가 부양책을 내놓지 못한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 심각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최근 미국의 국채금리와 독일의 국채금리가 느닷없이 반등한 것도 우리에게 던지는 ‘위험 신호’ 중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미국의 로젠그렌이 “자산시장 거품 우려가 심각하다”면서 “거품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금리인상을 단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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