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직장에서 퇴사할 때, 어느 날짜로 사직서를 내느냐도 고민이 필요하다. 제일 중요한 건 급여와 보너스 일정이다.

내가 예전 직장에서 퇴직할 때, 나름 생각으로 6월 중순의 어느 날을 퇴사일로 정하고 윗분들에게도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알고 지내던 많은 분들이 이틀을 늦추라고 강하게 권유했다.

그 때 상여금 지급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수 십 여 년 전인 그 때의 나는 ‘몸가짐에 한끝 의혹이 있어서야’라는 영웅적 선비심리를 조금 갖고 있었다.

비슷한 또래 동료들한테는 “그래서 더더욱 그날 날짜에 퇴사하겠다”고 큰소리를 좀 쳤었다. 그런데 상당히 배려를 많이 해 주시던 윗분들이 “네가 그동안 고생한 것에 대한 상여금인데 그걸 왜 다 포기하려는 거냐”고 타이르자, 그 말씀을 핑계로 나의 ‘선비 같은’ 마음가짐이 싹 사라졌다. 이틀을 늦춰서 상여금 나온 걸 고대로 다 받고 퇴사했다.

이렇게 해서 받은 마지막 보너스로 부모님께 옷을 한 벌 해드렸더니 그게 오히려 더 근심거리가 됐다. 앞날을 제대로 살펴보고 그만둔 건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녀석이 해준 옷을 볼 때마다 엄마 아버지는 마음이 무거웠던 것이다.

이직이 아닌 사유로 회사를 그만둔다고 부인에게 알렸을 때 첫 번째 반응은 “그럼 이번 달부터 월급이 안 들어오는 거야?”라고 한다.

서민들의 인생에서 퇴사날짜를 정할 때, 회사의 급여일정은 당연히 첫 번째 고려대상이다.

그런데, 이제 서민의 범주를 벗어난 사람들도 이런 서민의 정서만큼은 계속 갖고 있는 모양이다. 이른바 ‘낙하산’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최고권력자하고 연줄연줄 닿아서 지금의 자리에 가 있는 사람들이니 이들은 절대로 서민일 리가 없다. 진정한 서민을 구성하는 요건 중 하나는, 권력놀이 따위를 초개같이 여기는 담백함도 있기 때문이다.
 

▲ 지난 2016년 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낙하산 기관장에 대한 반대 시위가 벌어진 모습. /사진=뉴시스.


아무리 세상이 여러 차례 바뀌어도 이놈의 낙하산 시비는 그칠 줄을 모르니 지금도 많은 주요 기관에 전 정권의 낙하산 기관장과 낙하산 임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누가 봐도, 권력이 바뀌는 순간 따가운 시선의 표적이 돼 있는 사람들이다. 노려보고 있는 사람들은 새로운 권력층뿐만 아니다. 그동안 자신을 윗사람으로 모시고 있던 같은 회사의 부하직원들이 더욱 경멸스런 눈빛을 보내고 있다는 현실을 알아야 한다.

화장실에서 이를 닦고 있는 자신의 뒤통수를 향한 직원들의 눈빛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면, 참으로 철갑으로 두른 낯짝이라고 안할 수가 없다.

이론적으로는, 아무리 무소불위의 권력이라도 도저히 몰아내지 못할 정도로 실적이 훌륭한 낙하산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지금 현실에서, 스스로를 여기에 해당한다고 여기는 낙하산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낙하산’이란 원래 약삭빠르고 분위기 파악에 능해서 시류를 탄 사람들이니, 자신의 실적에 대한 세상 분위기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법이다.

문제는 하루하루, 한 달 한 달 더 자리를 지켰을 때 나오는 엄청난 급여다. 서민들의 연봉에 해당하는 급여가 매달 들어온다. 아이들의 대학 공부가 아직 안 끝났거나 아직 사회에서 기반을 덜 굳혔다면 한 달 치를 더 받는 이게 어디인가.

생각해보면, 굳이 낙하산이라는 이유만으로 물러나야 할 필요는 없을 듯도 하다. 몇 년 전 선거 때 업계 동료 수 백 명하고 몰려가서 누군가를 지지한다고 발표하는 자리에 서 있었지만, 그건 분위기에 따른 것이었다. 능력이나 상황에 비춰볼 때 지금 이 자리 내가 있는 것이 마땅한데, 단지 임명권자나 추천하는 측근의 입장을 편하게 하려고 그 때 그렇게 처신한 것뿐이다.

이게 바로 낙하산들이 쉽게 빠져드는 자기만의 함정이다. 퇴진의 적기를 놓치는 이유다.

낙하산에게 있어서, 최적의 퇴진시점이란 아직 아무도 안 물러나고 있을 때다.

낙하산 인생의 가장 큰 문제점은, 머리 꼭대기에 대기권 밖에서도 포착할 수 있는 표적판을 얹고 산다는 것이다. 이 표적판을 가장 먼저 벗어던지고 많은 사람들 틈으로 파고드는 것이 가장 현명한 안전책이다.

세상 바뀐 바로 그날, 앞장서서 자리를 내놓은 사람한테까지 두고두고 자격 없는 자리 차지했던 죄를 물을 만큼 세상은 한가하지 않다.

하나씩 하나씩 ‘누가 물러났다’는 소식이 들려오는데 계속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오늘 현재, 직원들은 자기 책상에서 뭣을 하고 있을까.

일부는 5년 전 자신이 선거운동에서 맹활약했다는 기사를 검색해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차피 그는 지금 달리 할 일도 없다. 현재 이 기관은 새롭게 무슨 사업을 펼치지도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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