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소야대' '4당 체제' 1988년에도 중요 인준 투표가 개편론 계기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집권세력의 의회 과반수 차지는 정책 집행능력을 높여주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는 청신호다. 미우나 고우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통치력이 높아져야 미국 주가가 오르는 것은 이런 이치다.

한국에서도 ‘여대야소’일 때 재정탄력성이 높아진다는 구체적인 숫자도 나와 있다. 경제상황에 재정이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재정뿐만 아니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여소야대에 눌려 있다가 2004년 과반수를 차지하면서 사모회사(PEF)법, 연기금의 주식투자 법 등을 통과시켰다. 600~700에 머물던 주가지수가 노무현 정부 말기 2000을 넘어 오늘날에 이르는 배경이 됐다.

지금의 20대 국회와 같은 여소야대, 4당 체제는 한국정치가 1988년 13대 국회에서도 경험한 적이 있다. 차이가 있다면 당시는 4당이 모두 1노3김이라는 강하고 확실한 간판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단, 이런 시기는 1990년의 3당 합당으로 인해 2년만 지속됐다.

20대 국회에서 가장 쉽게 과반수 의석을 만드는 방안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연대다. 각각 121석과 40석을 합치면 과반수 150석은 넘는다.

그러나 이런 연대는 반대급부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연대를 초래한다. 정치구도가 또 다시 영호남 지역을 가르고, 보수냐 진보냐 진영을 가르는 퇴행적 시대로 회귀하는 것을 뜻한다.

지난 5월의 대통령선거에서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대활약한 것은 ‘제3의 대안’에 대한 희망 때문이었다. 이런 여망을 반대로 거스르는 연대는 미래를 보장하기 어렵다.
 

▲ 김명수 대법원장 임명 동의안이 가결된 21일 국회 본회의장. /사진=뉴시스.


1988년에도 125석의 여당인 민정당과 35석의 제4당 공화당이 합치면 과반수를 넘었다. 그러나 이는 시대상황에서 차마 입 밖에 꺼내기도 어려운 발상이었다. 국민들의 6월항쟁으로 독재를 종식하고 6공화국이 탄생한 마당에, 유신과 5공 후예들의 연대라는 비판을 살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큰 틀에서는 3야의 일원으로 5공청산과 광주항쟁 규명 등 시대적 사명에는 동참하되, 주요 인사의 인준을 포함한 국정에는 여당에 찬성하는 행태를 주로 보였다.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국회 인준이 필요한 인사에서 한 번의 실패, 한 번의 성공을 경험했다.

13대 국회 개원 직후인 1988년 7월,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에 대한 동의가 부결됐다. 헌정사상 유례없던 여소야대의 위력을 제대로 보여준 계기가 됐다.

공화당은 의원들 개별 투표에 맡겼지만, 사실상 찬성의 입장을 당 차원에서 갖고 있었다. 70석의 평화민주당과 59석의 통일민주당은 의원 이탈을 막기 위해 원천 기권으로 표결에 나섰다. 뜻밖에 민정당과 공화당 의원 사이에서도 이탈 무효표가 14표가 나오면서 부결됐다.

반면 다음해 강영훈 국무총리 임명 동의안은 민정당과 공화당 의석수를 합친 대로 160표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평민당과 민주당은 이때도 원천 기권으로 이탈표를 차단했다.

두 번의 중요한 인준 투표에서 희비를 맛 볼 때마다 정계개편론이 떠올랐다. 2년여 논란과 수면 아래 접촉 끝에 탄생한 것이 1990년 민정+통일민주+공화 3당 합당이었다.

단숨에 개헌선인 3분의2 의석까지 넘는 거대여당이 탄생했다. 그러나 이 때문에 3당의 많은 고정지지층이 이탈했다. 2년 후 총선에서 과반수도 못 채워 다시 여소야대가 됐다.

3당 합당이 있기 전, 김영삼의 통일민주당과 김종필의 공화당 간 작은 연대 움직임이 있었다. 극단적 대립에 대한 완충세력의 등장으로 상당한 호감을 샀지만, 곧 이은 3당 합당에 파묻히고 말았다.

올해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에 대한 부결과 김명준 대법원장 임명 가결로 어떻든 제3당인 국민의당은 스스로 존재를 한껏 높였다.

앞으로 정치구도를 그리는데 있어서 우선 과반수를 만드는 쉬운 방법을 택할 것인지, 중도 유권자들의 오랜 숙원인 제3세력을 제대로 형성하는 도전에 나설 것인지, 거대 정당에 대해서도 대등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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