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업인의 ‘추석’ 트레킹 이야기<11>...한때의 '경제적인 아픔' 잊은 채 ‘절승지’가 손짓한다

▲ 박성기 대표

[외부 기고=박성기 도보여행가, 도서출판 깊은 샘 대표] 무엇이 나를 이렇게 길을 나서게 하는 것일까? 걸으며 받아올 기분 좋을 느낌을 알기에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오늘은 황포항을 출발해 영목항까지 바람길 16km를 걷는 구간이다.

태안 해변길의 특징은 해변을 걷다가 산길로 접어들고 다시 해변을 걷는 해변과 산길의 반복으로 이뤄진다. 조금도 지루할 틈이 없다.

 

▲ 출발지 황포항 이정표. /사진=박성기 대표

(한때 대기업의 잘못으로) 죽음의 바다였던 태안이 살아났다. 검은 기름을 제거하기 위해 수많은 국민들이 다니던 길이 태안의 비경을 바라볼 수 있게 멋진 97킬로미터의 해변길이 되었다.

내가 태안을 사랑하고 자주 오는 이유는 자연과 사람의 아름다운 동행이 그리워서다. 그리고 더는 태안이 사람들의 잘못으로 인해 아프지 않길 빌면서, 다시는 태안의 경제가 상처받지 않길 바라면서 바람의 길로 들어선다.

▲ 황포항. /사진=박성기 대표

황포항이다.

아무도 반겨주는 이 없이 매서운 바람만 귀때기가 떨어질 만큼 맵차게 맞이한다. 옷 틈을 비집고 들어온 추운 바람은 몸을 잔뜩 웅크리게 했다. 단장한 옷맵시를 한순간에 버리고 가져간 비옷을 겉에 껴입고서야 한기가 조금 멈추었다. 온 몸을 둘러싸고 눈만 뾰족이 내밀고, 몸을 감싼 우스꽝스런 모습에 도반(途伴)은 마치 복면강도 같다고 놀린다. 깃을 올리고 부지런히 걸었다. 추운 날씨 탓에 발걸음이 빠르다.

▲ 운여해변. /사진=박성기 대표

2.5km를 부지런히 걷다보니 어느새 운여해변이다.

운여(雲礖)는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가 만들어 내는 포말이 마치 구름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썰물로 빠져나간 자리엔 수없는 시간을 지킨 맨들한 돌들이 아름답다. 서풍은 바다물결을 꼭 갈치 떼처럼 은빛 주름을 만들었다. 나는 세찬 서풍을 마중했다.

▲ 산 위에서 바라본 서풍이 불어오는 운여해변. /사진=박성기 대표

장삼포에 이르렀다.

장삼포의 다른 이름은 대숙밭이라 불리우는데 대숙은 고동의 일종으로 대숙을 먹은 껍질이 밭을 이룬다는 뜻으로 해변이 맑고 깨끗하여 물에 뛰어들고 싶게 한다.

▲ 장삼포 해변. /사진=박성기 대표

멀리 명장섬과 장고도, 고대도가 손에 잡힐 듯 아련하다. 해변을 지나 다시 산길로 접어들었다.

장곡해변은 장돌마을과 귀골마을이 합쳐 한 글자씩 더하여 지은 이름이다. 일몰이 아름답기가 꽂지 보다 한층 더하다는 이가 많은데 과연 그러하다. 뒤를 돌아보니 지나온 길이 온통 절승지이고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눈에 다 넣으려 사방을 훑었으나 다 담을 수 없다. 다음을 위해 남겨놓고 욕심을 버렸다.

▲ 바람아래해변. /사진=박성기 대표

바람아래해변 바람은 유난히 더 맵다. 먼지보다 가는 모래는 바람의 등허리를 타고 사방으로 흩어져 넓은 모래둔덕을 만들었다.

▲ 바람아래해변에 새겨진 필자의 발자국. /사진=박성기 대표

내 발걸음은 발목 모래에 빠져들고, 깊숙한 흔적을 남기며 멀어져간다. 맵찬 바람이 등짝을 때렸다. 몸을 깊숙이 싸안으며 걷는데 눈앞으로 모래를 실은 바람이 지나간다. 얼른 셔터를 눌렀으나 벌써 저만치 가벼렸다.

바람아래해변을 지나니 넓디넓은 백사장이 보인다. 좌측으로 돌아 고남제방을 따라 옷점항(조개부리마을)까지 간다.

사람은 왕왕 경치에 취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인가보다. 여기서부터는 제방 길을 이용하여 옷점항까지 가야하는데 미처 생각을 못하고 경치에 취해 바닷길로 계속 접어들었다. 해에 비친 넓고 아름다운 백사장과 바다가 아름다워 계속 앞으로만 나아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상당히 와 있고 앞으로 옷점항이 보인다.

▲ 웃점항 가는 아름다운 갯길. 여기까지는 너무 아름답다. /사진=박성기 대표

여기서부터 갯벌이다. 하지만 갯벌이 딱딱해서 별 걱정을 안하고 계속 앞으로 나갔다. 옷점항이 가까울수록 물길이 사방으로 나있고 물길을 피해 뛰어넘기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점점 갯벌이 질척이기 시작했다. 갯벌을 따라 옷점항 앞에 도달했다. 옷점항 앞은 물줄기가 가로막혀 있었다.

옆으로 지나쳐 물이 적은 곳으로 갔다. 발은 뻘에 발목까지 빠지기 시작했다. 어쨌든 계속 가니 조그마한 물줄기만 건너면 되는 지점에 도달했다.

여기서부터 문제였다.

갯벌은 늪으로 변해 자꾸만 내 발을 잡아당겼다. 거의 무릎까지 빠졌다. 뭍으로는 50미터쯤 남겨놓았는데 도대체 전진하질 못했다. 당황하기 시작했다. 자연의 거대함에 내가 점점 작아지는 것 같고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뻘 속에 발을 계속 놔둘 수가 없어서 얼른 빼고 다시 한 발을 전진하고.... 힘은 빠지고 몸은 천근만근이 되어갔다.

▲ 옷점항 갯벌. /사진=박성기 대표

한 40분쯤 사투를 벌여 겨우 사지를 빠져나왔다. 옷점항(조개부리마을)이었다. 갯벌을 빠져나오면서 삐끗했는지 발목이 많이 저리다.

▲ 영목항에서 바라본 고기잡는 풍경. /사진=박성기 대표

남은 거리는 4km. 거의 절룩거리며 만수동을 지나 영목항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온 몸은 뻘투성이의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너무 힘들고 아름다웠던 태안해변길 7코스 바람길 이었다.

자연은 걷는 자에게 풍성한 선물을 준다. 마음을 안정시켜주며 생각을 확장시킨다. 자연과 인간이 같이 동행을 할 때 얻는 선물이다. 자연의 선물을 받기 위해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어려움도 겪는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은 길이었다.

오늘 걸은 길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황포항~운여해변~장삼포해변~장곡해변~바람아래해변~고남제방~옷점항~가경주~만수동~영목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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