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기자회견에서 차기 한국은행 총재를 물어볼 수 있었을까?

[초이스경제 장경순 경제칼럼] 4년마다 이맘때면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개인적 호기심에서가 아니다. 경제기자로서 모든 독자들의 알권리를 위해서, 그리고 국민 모두의 재산관리와 관련해서다.

다음 한국은행 총재 인사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임기는 오는 3월 말 끝난다. 다음 총재로는 어떤 인물이 유력한지, 금융시장의 중대관심사다. 금융시장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해도 한국은행 총재가 누구냐에 따라 그의 재산이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다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차기 한은 총재 인사에 대한 취재는 매우 어렵다. 한은 총재는 대통령이 임명한다. 한국은행 출입이나 다른 금융 기자들의 접근에 한계가 있다. 누가 유력하다는 기사는 간혹 나오지만, 진짜로 유력해서 쓰는 건지, 아니면 당사자의 희망사항을 전달하는 것인지 알 수도 없다.

이 취재가 더욱 어려운 이유는, 정보에 가장 접근한 언론인들인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전통적으로 여기에 별 관심이 없어서다. 예전에 같은 회사 청와대 출입 기자에게 분위기가 어떤지 물어봤더니 그의 대답은 “출입기자나 담당 부서나 아무도 한은 총재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예전에 ‘누가 다음 한은 총재로 확정됐다’고 특종기사를 쓴 적이 있다. 총재가 바뀌기 보름쯤 전인 3월 중순에 쓴 기사였다. 새 총재가 되는 사람이 유력하다는 얘기는 해가 바뀌기 전 9월쯤부터 듣고 있었다.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들로부터 들은 얘기였다. 하지만 이런 정도로 기사를 쓸 수는 없었다. 임명 사실을 확인해 기사를 쓸 때도 역시 취재원은 청와대였다. 내가 아니라 근무하던 회사의 대표가 취재를 해 온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당장 문재인 대통령에게 질문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만사 제쳐놓고 한국은행 총재에 대해 물어볼 것이다. 묻는다고 대통령이 이름 석 자를 답변할 리는 없으니, 통화정책에 대한 소감을 묻는다는 형식으로라도 돌려서 질문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의 10일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저마다 질문신청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10일과 같은 대통령 기자회견 자리였다면 얘기가 또 달라진다. 국내외 아무런 현안이 없다면 지금의 청와대 출입기자들로부터 당연히 여기에 관한 질문도 나왔을 것이라고 믿지만, 국정이란 그 정도의 여유도 없다. 엄청난 수의 언론매체가 출입을 하는 청와대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귀하게 얻은 질문기회라면, 남북관계라든지 일제의 종군위안부 만행, 그 외 다른 정치외교 현안 등 물어볼 것이 수없이 많다. 경제 분야라고 해도 거시 정책 운용에다 재벌, 노동임금 정책 등 대통령의 한마디가 천금 같은 정보가 되는 영역들이 수두룩하다.

다른 기자 제치고 얻은 기회에 이게 과연 최우선 순위의 질문인가를 생각 안할 수가 없다.

기자회견장에서는 가끔 기자들의 전문영역에 따른 충돌상황이 나타난다.

금융지주회사 출범 무렵, 한국은행 기자실에 모 지주회사 신임 경영진이 찾아와 기자회견을 했다. 이 사실을 어디서 들었는지 IT업종의 기자 한 사람이 나타나, 이 지주회사의 정보 관련 자회사 사장 선임에 대한 질문을 연거푸 던졌다. 그의 기사를 찾아가는 취재정신은 귀감이긴 했지만, 대부분 금융기자들은 생경한 표정으로 그의 질문을 지켜봤다.

자동차회사가 외국기업에 매각된 기자회견이 채권은행에서 열린 적이 있다. 매각대금이나 회사의 부채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 자리에 자동차 전문기자가 나타나 이 회사의 새로운 자동차 모델에 대해 좀 집요한 질문들을 쏟아냈다. 이때는 다른 기자들 분위기가 좀 까칠해졌다.

시급한 현안에서 벗어난 질문은 오히려 국민의 알권리에 대한 장벽이 될 수 있다. 노회한 취재원들은 이런 질문에도 성실하게 답변한다는 명분으로 장구한 설명을 늘어놓고 시간 때우기를 하기도 한다. 어쨌든 장시간 기자회견에는 응한 것이 된다.

2016년 국정농단 청문회에 재벌 총수들이 모두 출석한 날, 국회에 갔었다. 취재 희망매체가 폭증한 나머지, 공정하게 선발된 풀기자단만 청문회의장에 들어가 있었다. 정회가 돼서 회의장 문이 열리자,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가장 먼저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순간, “LG트윈스가 FA로 나온 차우찬 살 겁니까”라는 질문을 하면 어떻게 될까라는 상상이 스쳐지나갔다. 만약 그랬다면, 나는 아마 구 회장의 수행원들에 의해 안전한 곳으로 옮겨졌을 듯하다.
 

기자회견에서 답변보다 질문이 주목을 받으면 안된다

기자회견이 일대일 토론이나 개별 취재와 다른 점은 철저하게 질문이 아닌 답변 중심이라는 점이다. 오로지 기자회견에 나선 사람의 얘기를 듣고 싶어서 만든 자리지, 질문을 하는 기자 개인기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취재원의 답변이 아니라, 물어보는 기자가 더 주목을 받는다는 건 기자회견이 속칭 ‘안드로메다로 가는’ 경우다.

그런데 이것도 취재영역마다 조금 다른 풍토가 있다. 연예인들의 기자회견에서는 답변뿐만 아니라 누가 질문을 하느냐도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

2006년 영화배우 장동건의 스크린쿼타 수호 1인 시위 때다. 그때 국회에서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 인사청문회 취재를 마치고 가던 길이었다. 유 장관 후보자가 그때까지의 ‘명성(?)’과 달리 청문회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정중겸손하기 이를 데 없는 태도로 일관해 재미없는(?) 취재가 되고 말았다. 이른바 다른 ‘뗏거리’ 없나 궁리하는데 국회 정문 앞 장동건 1인 시위 현장을 발견했다.

무수히 운집한 기자들 틈에 섞여 들어가니 행사 진행자가 기자들을 7명씩 나눠서 차례대로 장동건과의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7명씩 나누는 이유는 기자들이 저마다 질문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얼른 진행자에게 “나는 질문 안할께요”라고 했더니 그는 즉시 나를 첫 번째 그룹에 포함시키면서 “이 분은 질문 안하신대”라고 알려줬다.

빨리 취재를 하고 와서, 빨리 기사를 썼더니 그날 포털 대문에 관련기사는 내가 쓴 것이 올라갔다.

대통령 기자회견이 생중계되다보니, 청와대 기자들도 점차 미디어엔터테이너와 같은 측면을 갖는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르겠다. 답변뿐만 아니라 질문 자체가 중시되거나, 기자의 예능적 개인기가 중시되는 그런 풍토다.
 

악플 세례 안 받아본 기자가 누가 있나

인터넷, 소셜미디어를 거치면서 기자 생활 3년 이상 해본 사람 가운데 아주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면, 쏟아지는 악플 세례를 안 받아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어떤 기사에서는 내 이름만 보고 여기자인줄 알고 여성에 대한 비속어가 난무하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남자다” “40대다”라는 인적사항까지 등장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런 악플 듣고 기분이 좋을 리는 없지만, 그것 때문에 무서워서 기사를 못 쓰겠다고 하면 기자노릇을 어떻게 하나.

기자들은 스스로 대단히 호평받는 지식인으로 자부했는데, 악플로 인해 그 환상이 깨진 것을 괴로워하기도 한다. 

기사 아래 댓글 칸에는 대부분 거친 표현이 가득하다. 아무리 주옥같은 댓글이라도 기사본문의 영향력을 넘볼 수 없는 것에 대한 독자들의 일종의 좌절적 심경표현이라고 여기고 있다. 무수한 댓글이 기자 한 사람을 위축시키는 것보다, 기자 한 사람의 칼날 같은 기사 한 건이 무수한 사람들을 죽이고 살린다. 제대로 된 기사면 경종을 울리는 것이고, 그릇된 기사면 세상에 죄를 짓는 것이다. 댓글은 1만개가 쌓여도 그렇게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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