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금융전업가 양성 호언장담은 어떻게 됐나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인사 청탁으로 시끄러웠던 모 은행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이 은행은 20년 전 쯤엔 덩치는 작아도 우량한 은행이라는 호평을 받았었다. 직원들은 잘난 척만 하는 다른 유서 깊은 은행들과 달리 발로 뛰는 서비스를 마다않는다고 했다.

20년이 지나는 동안, 이 은행은 자기보다 더 깊은 역사를 가진 다른 은행들을 인수했다. 인수된 은행 가운데는 정말 귀한 집 자제들만 다니는 은행이란 곳도 있었다.

그런데 시장경제에서 혈통이 고귀한 것이 경쟁력과는 그다지 관계없는 것이다. 귀한 집 자제들이 아무리 많아도 업계 후발주자인 다른 은행에 인수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귀한 집 자제들이 가득한 선발은행을 인수했던 이 은행에서 인사 청탁 문제가 발생했다.

지나온 세월, 우량했던 은행이 망한 은행의 행태를 닮아버린 것이다. 선입관일지 모르지만, 일선에서 체감하는 이들의 말단 서비스도 사라진 은행들을 닮아가는 면이 있다.

지나온 20년은 금융위원회가 금융전업가를 양성하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세월과 일치한다. 그 많은 세월, 금융전업가가 나오기는커녕 오히려 살아남은 은행들이 사라진 은행들을 닮아가고 말았다.

2000년 당시 금융지주회사를 도입하면서 금융감독위원회(지금의 금융위)가 했던 금융전업가 양성 구호에 대해 반신반의했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역시나다. 발로 뛰는 서비스를 마다않던 우량은행원들마저 이제는 귀한 집 자제들이 됐다.

지난 세월에 비춰볼 때, 금융당국의 호언장담을 좀체 믿지 못하겠다는 지적에 당국자들은 과연 뭐라고 답변할 것인가. 낯익은 아래한글 문서를 통해 ‘금융지주회사 도입 후 금융전업가 양성 성과’라는 보도자료를 만들지도 모르겠다.
 

▲ 국회 정무위원회에 21일 출석한 최종구 금융위원장. /사진=뉴시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21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은산분리 완화에 대한 보완대책을 밝혔다. 뉴시스에 따르면, 그는 “대기업에 대한 대출이나 출자자 대출을 금지하고 대주주 주식취득도 제한하고 그것을 관리·감독하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장담이 금융전업가 양성과는 과연 어떤 면에서 질적으로 다른지가 궁금하다. 물론, 최 위원장의 발언대로 은산분리를 완화해도 정말 아무 탈이 없기를 기원한다. 이게 잘못되면, 국가경제는 정말 1980년대 장영자 사태, 1997년 한보부도 못지않은 경제위기를 겪게 되기 때문이다.

신뢰감을 주는 사람은 온갖 비판에도 냉정하게 조목조목 구체적 대응방안을 제시하기 마련인데, 최 위원장은 비판에 대한 염증도 드러내고 있다.

카카오나 KT에 대한 특혜 여부를 묻는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최 위원장은 “일부 시민단체에서 그런 끊임없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합리적인 안을 도출하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은산분리 자체를 건드리지 말라는 목적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하는 관리 입장에서 인지상정으로 그런 생각이 들더라도 굳이 국회에 나와서 입 밖에 낼 얘기였는지 모르겠다. 만전지계를 대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기 싫은 비판을 틀어막으려는 사람처럼 보인다.

다른 감독기구와 비교해, 금융 감독이 갖는 가장 큰 문제는 ‘돈에 꼬리표가 없다’는 점이다. 부당대출 등을 막겠다고 하지만, 탈법자들이 한 단계만 우회를 해도 감독하기가 대단히 어려워진다.

최종구 위원장은 다른 금융업종에서 감독 성과가 있었다고 자부하는데, 감독 성과란 상대적인 것이다. 탈법을 하려는 자들이 별로 없는 영역과, 엄청난 이해 때문에 탈법의 충동이 가득한 곳에서의 감독 성과를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정부수립이후, 수 십 년 동안 탐욕으로부터 법으로 지켜온 은행의 신용창출 기능이다. 어떤 형태로든 이 법을 다소 느슨하게 하겠다는 금융당국은 지금까지 상대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잠재적 탈법자들을 대비해야 한다.

외국처럼 대재벌 총수를 막론하고 분식회계에 99년형의 사법적 응징을 해본 적도 없는 한국의 금융 감독 체계다.

무슨 근거로 금융위원장의 호언장담을 믿으라는 것인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은산분리를 완화하는 조건으로, 지불준비율 조절이라든지 그에 상응하는 다른 조치로 성의라도 보인다면 모를 일이다. 과도한 대응책이지만 초기의 시장불안감을 해소하는 목적이라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 이것을 점차 완화해가는 것은 은산분리 자체의 완화보다는 훨씬 쉬울 것이다.

이런 소리를 당국자들은 뭘 모르는 사람들 얘기라고 비판할지도 모르지만, 그럼 당국자들은 뭘 그렇게 잘 알아서 금융전업가를 얼마나 양성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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