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싸움'에 휘둘리지 말고 냉정하게 거시경제의 맥을 짚어나가야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제목에 썼지만, 사실 ‘여즉장재(汝則將才)’란 말이 등장하는 고전은 없다.

이와 비슷하게 들리는 말은 있다. ‘여비장재(汝非將才)’다. 열국지에 등장한다. 한 글자만 다르지만, 뜻은 정반대다.

전국시대 조나라 명장 조사는 아들 조괄과 병법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실전의 출중한 경력을 갖춘 명장이지만, 병법책을 두루 읽은 아들의 언변은 당해낼 수 없었다.

그러나 조사는 아들의 탁상공론이 매우 불안했다. 수많은 장병들의 피가 오가는 전쟁터다. 칼 한 번 제대로 잡아본 적도 없이 책만 읽은 아들이 이를 너무나 가볍게 여기는 것이 두려웠다.

마침내 그는 아들에게 “너는 장수감이 아니다”라는 말을 한 것이 여비장재다. 그는 죽음을 맞는 자리에서도 아내에게 훗날 임금이 조괄에게 장수 자리를 내리는 일이 없게 하라는 당부를 남겼다.

진나라와 장평에서 국운을 걸고 전면전을 벌이게 된 조나라의 혜문왕은 지구전만 벌이는 노장 염파(인상여와의 문경지교로 유명한 명장)가 못마땅했다. 세상을 떠난 조사를 그리워한 나머지 그 아들 조괄로 총사령관을 교체했다.

조괄의 어머니, 즉 조사의 아내는 남편의 유언대로 임금에게 부당한 인사라고 말렸지만 임금의 뜻을 바꾸지 못했다. 마침내 조괄이 대패하더라도 조씨 집안에는 죄를 묻지 않겠다는 약속만 받고 물러났다.

조괄의 조나라군은 진나라군의 유인책에 말려 식량보급이 끊어진 채 고립되고 말았다. 지구전을 벌였던 노장 염파였다면 이런 작전에 말려들지 않았을 것이다.

조괄은 최후의 전투를 벌이다 전사하고 나머지 40만 대군이 모두 진나라에 항복했다. 숫자 40만은 소설인 열국지 뿐만 아니라, 정사인 사마천의 사기에 등장하는 숫자다. 중세의 중국 소설가들과 달리, 사마천은 전세를 과장하고 숫자를 부풀릴 이유가 없는 사관이었다. 그가 나름대로 기준에 따라 기록한 숫자가 40만인 것이다.

너무나 많은 포로를 잡은 진나라는 마땅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자 이들을 전부 몰살시키고 말았다. 이 참혹한 패배는 조나라가 패망으로 가는 첫걸음이 됐다. 조나라는 34년 후 진나라에 멸망당했다.

예측 불가능한 수많은 상황들이 발생하는 전쟁터에서는 책 몇 권 줄줄 읽어본 총사령관보다 병사들 하나하나의 피가 소중함을 절감하는 장군의 경륜이 더욱 필요했다.

아들의 출세를 막아야만 했던 조사의 ‘여비장재’라는 말은 이렇게 책상의 지식만으로 따라올 수 없는 경륜의 무거움을 전하고 있다.

여비장재에서 ‘비(非)’를 ‘즉(則)’으로 바꾸면 ‘네가 바로 장수감’이라는 뜻의 ‘여즉장재’가 된다.

한국 경제가 최근 2년 동안 정책 수뇌부의 탁상지식 논쟁을 벌였다. 당국자들의 사심은 의심할 바가 없었지만, 과연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하는 정책이냐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지난 9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내정자가 임명됨으로써 이같은 탁상공론 시비가 사라지기를 기대한다. 홍남기 내정자와 김수현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의 2인 체제가 아니라 홍 내정자가 이끄는 1인 팀이라는 점을 청와대가 강조하는 것도 신뢰를 높이고 있다.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 /사진=뉴시스.

장수는 사심이 없어야하고, 학식도 출중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 결과가 중요하다. 국가의 경제정책가들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얘기다. 무엇보다 국민의 재산을 지켜줘야 한다.

경제정의감이 투철한 것도 좋지만, 그것은 재야에 있을 때 얘기다. 당국자가 된 이상은 경제실적이 나와야 한다. 전임자들이 이 점에서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더욱 결과로 말하겠다는 자세를 다져야 한다.

홍남기 내정자가 오랜 관료경험에서 정책통으로 명성을 높였고 노무현 박근혜 정부 등 정권을 가리지 않고 신임을 받았다고 하니 요란한 말잔치보다 내실 있는 국가 관리를 할 것이란 기대를 걸어본다.

물러난 경제팀은 ‘최저임금 1만원’에서 시작해서 ‘소득주도 성장’에 이르기까지 지나치게 논쟁을 초래한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때로는 정책효과를 보기 위한 사람들이 아니라 말다툼에 이기는 게 더 목적인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납득할만한 근거도 없이 말만 앞세우는 모습이 신뢰를 얻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에 대한 비판이 집중되다보니 이제는 오히려 ‘소득주도 성장’자체가 그릇된 발상이고 심지어 ‘좌파들의 주장’이란 설익은 말잔치가 역으로 난무하고 있다. 이런 입방정에 뛰어드는 것은 스스로의 무게감만 떨어뜨릴 뿐이다.

새 경제팀은 ‘소득주도 성장’이든 ‘성장주도 소득’이든 말의 유희에 얽매이지 말고,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 속에서 거시경제의 맥을 그때그때 적절히 짚어나가기를 기대한다.

상황은 정말 녹록치 않다. 경제의 피를 빨아먹으며 기생하는 ‘좀비기업’ 문제는 이전, 그 이전 정권부터 누적되고 있는데 언제 한 번 제대로 청소한 적도 없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은 오히려 이것이 양국간 더 근본적 갈등이 표출된 것이어서 쉽게 끝나기 어렵다고 한다. 이미 경제지표와 세계의 기업실적에 무역 갈등의 여파가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금리는 이미 한국보다 0.75~1%포인트 높은 터에 다음달 19일이면 0.25%포인트가 추가로 올라갈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까지 금리차가 커지면 국제투자자금이 한국에 머물 이유가 있을 것인지가 우려된다.

성장은 점점 더 고용을 동반하지 않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 성장과 별개로 고용은 국민생활 안정의 절대필수요소다.

어느 때보다 거시경제의 흐름을 제대로 포착하는 경제정책팀이 절실하다. 이러한 때에 출범하는 홍남기 경제팀은 이 사람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경력에서 ‘여즉장재’의 기대를 걸기에 충분하다. 덧붙여 정치권 또한 경제팀이 현실을 치열하게 분석 대응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정치성 주문을 자제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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