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이용근 전 금융감독위원회(지금의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금융정책을 지휘하던 인사다.

그는 2013년 본지를 통해 회고록을 연재했다. 회고록에서 그는 한국 경제가 다시 사느냐 마느냐 중차대한 갈림길의 생생한 기억을 독자들에게 전했다.

그 가운데 이 전 위원장이 절대 빼놓지 않고 강조한 추억이 사무관 시절 재무부 체육대회 축구 우승이다. 그가 속한 재산관리국은 약체 중의 약체로 평가받았으나 피나는 훈련과 국원들의 단합된 지원을 배경으로 이변의 우승을 차지했다. 이 전 위원장은 ‘선수’로 나서는 직원들을 후원하는 ‘단장’의 역할을 자청했다.

한국 축구가 국제축구연맹(FIFA) 순위로는 세계 최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민들의 축구에 대한 애호는 전세계 정상급이다.

1996년, 한국과 일본이 치열하게 월드컵 대회 유치 경쟁을 벌일 때 한 영국기자는 뉴스위크를 통해 “우리도 축구를 사랑한다. 하지만 여기 사람들처럼 축구하러 새벽 4시에 일어나지는 않는다”고 한국인들의 축구사랑을 촌평했다.
 

▲ 한 축구동호회 모습. /사진=뉴시스.


기자들 사이에서도 축구는 ‘자존심’이 걸린 대상인 동시에 느닷없는 ‘단합의 구심점’이 된다.

한국기자협회 축구대회는 단순히 친목을 위해 운동하는 자리가 아니다. 올해 47회인 이 대회는 월드컵대회처럼 예선, 본선을 나눠 선수 자격도 관리해가면서 치러진다.

회사마다 축구를 이기겠다는 경쟁심이 특종에 못지않아, 출전 선수들은 회사 측의 전폭적인 지원도 받는다.

경쟁심은 드높은데, 안하던 운동을 갑자기 하니 부상을 입는 기자도 빈발한다. 취재현장에서 갑자기 목발에 깁스를 하고 다니는 기자는 지금까지 대부분 기자협회 축구대회를 나갔던 사람들이었다. 2005년 한 시중은행의 외국계 매각 취재로 대상을 받은 기자도 이 무렵 깁스를 하고 다녔다.

경쟁이 지나치다 보니 올해 기자협회 축구대회는 기자가 아닌 직군이 출전했다는 시비가 벌어졌다고 미디어오늘이 23일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한 경제지와 자회사간 시합에서는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이를 지켜본 한 기자는 “집안싸움이 더 무섭다”며 “이 경기가 다른 시합보다 더 살벌했다”고 전했다.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축구는 ‘남성성’을 가장 강하게 자극하는 운동이다.

군대에서나, 대학교 동아리연합체에서나 축구대회는 이에 임하는 남자들의 눈빛부터 다르게 만든다.

기자협회는 축구대회가 과열되다보니 배구로 종목을 바꾸는 검토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치열한 경쟁을 줄이는 목적이라면, 축구 아닌 다른 종목으로 바꾸는 효과는 100% 적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대회 분위기가 축구만큼 고조될지는 모를 일이다.

한국에서 “축구 이기고 왔다”와 “배구 이겼다”는 뭔가 느낌이 다르다.

야구는 또 나름의 독특한 맥락이 있다. 야구는 이기고지고를 떠나 야구경기를 한다는 자체가 운동매니아라는 인상을 준다. 운동 가운데 가장 심각한 부상을 초래할 딱딱한 공을 다룬다는 점과, 장비가 많이 필요하다는 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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