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그룹의 허창수 회장 일가 어린이들이 미성년 갑부 순위를 휩쓸었다. 초등학생 나이에 보유 주식이 500억원에 이른다.

 
그게 다 무슨 일 하는 회사 주식인지 알기도 어려운 나이다. 정작 그 회사에 돈을 벌어주는 서민들은 한 달 한 달 이자내고 세금 내기도 눈물 나는데 말이다. 먹고 살기 고달픈 나날 중에 재벌가 어린 애들의 보유재산이 얼마라는 얘기는 발표될 때마다 새삼 푸념을 쏟아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특정한 재벌의 자손들이 이번처럼 상위 1~3위를 휩쓴 경우라면 더욱 곱지 않은 시선이 집중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20세 넘어 장성한 재벌 2세나 3세가 5000억원 정도 주식을 갖고 있으면 좀 곱게 보일까.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의 경우 부친인 이건희 회장과 별도로 본인만 보유한 주식이 1조원에 달한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부회장의 보유주식은 3조원을 넘는다.
 
그러나 ‘이재용 보유주식 1조원’이나 ‘정의선 3조원어치 가졌다’ 이런 뉴스 제목으로는 그날 신문 팔기 어렵다. 하루 하루 고달픈 서민들에게도 별다른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이다.
 
편법 상속이 절대 잘했다고 하는 건 아니지만, 재벌가 어린 애들이 벌써 얼마나 재산을 움켜쥐었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대중적으로 발끈발끈하는 것도 그다지 합리적인 반응은 아니라는 얘기다. 지금까지 사례로 보건대 꼬마 재벌에 대한 대중의 위화감은 이 아이들이 장성하면서 사라져갔다. 물론, 우리도 언젠가 투명한 상속 관행이 지배하는 경제체제에서 살아가야 할 필요는 있다. 
 
다소 우려되는 건, 요즘 강조되고 있는 ‘경제 민주화’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사례로 허씨 집안 애들을 집중적으로 몰아세우다가 정반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자극적인 뉴스흐름에 방향 감각 없이 따라다니다 오히려 ‘경제 민주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악용될 소지도 있다.
 
이번에 재벌닷컴이 발표한 내용을 보니, GS 그룹의 ‘허’군들이 보유한 주식은 주식회사 GS의 지분이다.
 
요즘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자세한 발표를 안해서 2006년 이후 사정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GS LG 이 그룹의 재벌은 지배구조에 있어서 ‘모범생’들이다. 순환출자가 해소된 지분구조를 가지고 있다. “순환출자 해소가 ‘좌파 빨갱이들’의 적화 음모”라고 강변하는 자들에게 보기 좋게 한 방 먹이는 살아있는 사례다.
 
아직 상속을 당연시여기는 한국 풍토에서, 무슨 놀이터 지분으로, 광고대행회사 지분으로 뺑뺑 돌리고 이리저리 섞어서 애들 앞으로 해 놓는 다른 재벌들보다 특히 더한 욕을 먹어야 할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어려서는 주식 한푼 없었지만 스무살 쯤에 무슨 전산대행사 대표로 이름 걸어서 계열사 전산 사업 싹쓸이 해 전체 그룹의 후계자로 등극하는건 지극히 아름다운 상속인가.
 
애들이 가졌다는 게 눈에 거슬리긴 하지만, 이 아이들의 주식은 어느 재벌 회장 지분처럼 보통주식의 15배, 20배 의결권을 가진 주식이 아니다.
 
삼성전자 주식을 전부 국유화해서 전 국민에게 골고루 나눠줘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아니라면, 다시 말해 순수한 좌파가 아닌 바에야 순환출자 해소의 현실 가능한 사례로 GS그룹의 지배구조는 진지하게 연구할 필요도 있다.
 
‘경제 민주화’ 잣대로 손 볼 재벌이 많다고는 해도, 지배구조 개선을 잘 해놓은 데부터 몰매를 주는 건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초등학생이 벌써 수백억...’ 운운 하는 게 상큼한 기분을 주는 얘기는 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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