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차와 관련해선 빅딜에 생보 상장까지 숱한 논란 후 르노에 매각

은행 구조조정 얘기는 이쯤 하고 다시 재벌 구조조정 얘기로 돌아가야겠다.

다름아닌 5대그룹 구조조정과 관련해 워낙 큰 얘기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30대그룹 전반에 대해선 은행주도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나서도록 조치해 놓은 만큼 금융감독위원회의 관심은 이제 5대그룹에 집중되고 있었다.
 
앞서도 거론했듯이 5대그룹중에서도 삼성만이 부채비율 200%아래에 있었을 뿐 다른 그룹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재무건전성이 취약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장 시급한 곳은 부채비율이 무려 500%를 웃도는 대우그룹이었고 그 다음은 부채비율 300%대의 현대그룹이었다.
 
그렇다고 LG 등 다른 그룹이라 해서 구조조정의 광풍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었다. 그룹별로 자동차 전자 반도체와 같은 취약한 사업들을 하나 이상씩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삼성그룹조차도 삼성자동차라는 커다란 부실기업이 구조조정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정도였다. 다시 말해 삼성을 비롯한 모든 재벌이 구조조정의 수술대에 오를 처지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5대그룹 구조조정과 관련해선 드디어 빅딜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제기된 빅딜안은 이름하여 정부 고위관료가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삼각빅딜론이었다. 예컨대 자동차는 현대그룹에 몰아주고 반도체는 삼성그룹에, 그리고 LG그룹엔 석유화학사업을 밀어줌으로써 각각의 그룹을 특화시키자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 안은 채택되지 못한 채 곧바로 소멸되었다.
 
두 번째로 나온 빅딜안이 바로 삼성과 대우그룹간 쌍방 빅딜안이었다. 이를테면 삼성엔 삼성자동차가 있고 대우그룹엔 대우전자가 있는 만큼 이걸 두 분야로 나눠 삼성에겐 대우전자를 가져다가 삼성전자와 함께 집중 육성케하고 대우에겐 삼성자동차를 떠넘겨 대우자동차와 함께 전문적으로 육성토록 하자는 안이었다. 이 안은 재계의 특정그룹에서 내놓은 방안인 듯 했다.
 
하지만 이같은 쌍방 빅딜안 역시 산업체간 문제였기에 금융감독위원회 소관사항은 아니었다. 그래선지 산업자원부 주도아래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자율 추진토록 하는 방향으로 교통정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안 또한 그 뒤 성사되지 못했다. 논의만 이뤄지다 1999년 7월 삼성그룹이 삼성자동차에 대해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바람에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삼성자동차 법정관리 신청은 그 후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이건희 삼성회장이 삼성자동차를 법정관리신청하는 대신 삼성생명 상장을 요구하고 나왔기 때문이다. 삼성생명 주식 400만주를 70만원씩 계산해 2조8000억원을 삼성자동차 부채 상환용으로 내놓고 손을 털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의 이같은 요구에 선뜻 동의할 수 없는 게 금융감독위원회의 입장이었다. 생명보험사 상장 문제가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었던 까닭이다. 무엇보다 생명보험사는 가입자 자산과 경영자 자산으로 구성되어 있는 만큼 다른 주식회사와는 엄밀히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이 때문에 외국에선 생명보험사에 대해 주식회사가 아닌 합자회사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삼성에선 삼성생명을 상장시켜 달라고 하니 금융감독위원회로선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금감위 일각에서도 생명보험사 자산을 주식수로 나누면 주가가 된다며 상장에 별 문제가 있느냐는 의견도 있었으나 이건 보험을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가입자 자산문제가 복잡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성생명을 상장시키자면 전체 자산중 경영자 몫은 얼마이며 가입자 몫은 어느정도 인지 등 매우 복잡한 계산이 필요했다. 따라서 이 문제가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삼성생명 상장 건은 논의 자체가 불가능한 현안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부 다른 관계자들의 상장 수용론에 맞서 상장 연기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 때 나는 부위원장 신분이었지만 안되는 건 안되는 것이었다.
 
이건희 회장의 안이 무산되면서 당장 삼성자동차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다. 삼성자동차는 법정관리에 가 있지, 삼성생명 상장은 당장 어렵지,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삼성자동차 상장 지연과 함께 조업이 중단되자 당장 부산과 마산의 지역경제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삼성자동차가 멈춰서버리는 바람에 1000여개 하청업체들의 일감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삼성생명 또한 난처한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상장문제가 불거지자 계약자들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쯤 되고 보니 삼성생명 상장 이전에 삼성자동차 만이라도 우선 살려놓는 일이 시급했다. 그러나 뾰족한 대책이 없는 게 문제였다. 나 또한 부산에도 여러차례 방문했을 정도로 고심에 고심을 거듭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당시 삼성자동차건과 관련해 일화가 하나 있어 소개하려 한다. 내가 2000년초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이 되어서도 삼성자동차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이런저런 고심을 하고 있는데 당시 노무현 삼성자동차문제해결대책위원장이 면담을 요청해 왔다. 그래서 만났더니 “저는 국회의원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지역구위원장일 뿐입니다. 그러나 금융감독위원장님께서 자동차도 한 대 사주시고 은행에 가서 융자 좀 당부하면 도움이 되지 않겠나 해서 뵙자고 했습니다”하면서 난처한 요구를 해 오는 것이었다. 다시말해 부산 경제를 살리려면 삼성자동차 재고부터 처분한 뒤 삼성자동차 및 하청업체를 다시 움직이게 해야 하는데 그에 필요한 은행 융자좀 주선해 달라는 게 노무현 위원장의 요구사항이었다.
 
이에 나는 “삼성자동차를 조기에 재가동 시키자는 덴 동감합니다. 그러나 융자는 은행 소관이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건 전적으로 은행이 알아서 결정할 일입니다”하고 답변한 적이 있었다. 그 후 나는 금융감독위원장 퇴임 후 노무현 정부시절 곤혹스런 일을 당한 적이 있는데 다만 이 때 일이 괘씸죄가 되지 않았길 바랄 뿐이다.
 
어쨌든 삼성자동차 문제와 관련해선 그 후에 은행 융자도 성사되고 재가동도 이뤄지다가 프랑스 르노사에 팔리면서 일단락 되어가고 있었다. 결국 삼성 스스로 삼성자동차 문제를 해결한 셈이었다.

VI(Visual Ident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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