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노조 총파업에 적극 나서 해결...대통령께서 또 크게 칭찬

외환위기이후 금융권은 크고 작은 파업의 연속이었다. 부실금융기관이 속속 퇴출되고 있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러다가 5개 부실은행을 퇴출시키던 1998년엔 1차 금융노조 총파업이 있었고 2000년에 또다시 총파업의 먹구름이 금융권을 덮치고 있었다.

 
내가 2000년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하고 나니 이젠 금융지주사법 문제가 노사갈등의 핵심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었다. 노조측은 특히 금융지주사 제도에 대해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가 급기야는 총파업을 선언하고 나온 것이었다.
 
파업이유인즉 간단했다. 금융지주사 제도가 도입되면 공적자금투입은행들에 대해 또한차례 구조조정 한파가 몰아칠 것이며 이 경우 고용불안이 예상되는 만큼 공적자금 투입은행에 대해 향후 3년간 구조조정을 유예해 달라는 것이었다. 노조측은 여기에 예금자보호한도를 5000만원으로 축소하지 말고 전액 보장하는 기간을 연장해 달라는 요구까지 곁들였다.
 
이 두가지를 요구하며 2000년 7월5일과 6일 서울 명동성당에 금융노조원들이 집결키로 돼 있었다. 이에 우리는 곧바로 노정회의를 시도했다. 당시에도 노사정 위원회가 있었지만 이번 금융파업건과 관련해선 노사정위원회 대신 정부측에선 금감위원장인 나하고 재정경제부장관 등만 참석하는 노정회의를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이에 나는 노조측을 향해 시장이 인정할 수 있는 수준으로 요구안을 만들어 올 것을 주문했다. 앞서 1998년 5개 부실은행을 정리할 때와 달리 이번엔 인력감축과 관련해 정부가 어떤 간섭도 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인적 구조조정 문제는 시장상황을 판단해 전적으로 은행 경영진이 알아서 할 문제라고 일축했다. 그런만큼 노조측도 정부를 상대로 파업을 할 이유 또한 아무것도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노조측은 무슨 이유에선지 시간끌기에 들어가는 모습이었다. 다행히 당시 금융파업을 주도하던 이용득 한국노총위원장과는 안면이 있던 사이였다. 다름아닌 2년전 1차 금융노조파업때 나는 노사정 위원으로, 그리고 이용득 위원장은 한국노총 간부로 협상을 벌인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가 2년 뒤인 지금 한국노총위원장이 되어 다시 파업 협상의 노조측 수장으로 나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용득 위원장에게 2000년7월7일 오전10시 1차 노정회의를 가질 것을 제안했다. 정부측에선 나와 재경부장관, 그리고 금융당국 간부 등이 참석하겠다는 방침도 전달했다. 그러나 7일 협상은 큰 소득 없이 끝났고 우린 7월9일 2차협상을 다시 갖기로 했다.
 
이어 9일 저녁 나는 “농성장으로 들어가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주변의 만류를 뒤로하고 농성장이 있는 명동성당에 들어갔다. 그러자 노조원들 모두 박수를 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오늘은 협상이 잘 이뤄지려나보다”하고 기대했으나 역시 헛걸음이었다.
 
7월10일 우린 다시 3차협상에 돌입키로 했다. 재경부장관은 일본 출장이 있다해서 이날 3차협상부터는 내가 정부측을 대표하기로 하고 협상장에 들어갔다. 그러자 노조원들은 “이용근 잡아라, 이용근 금감위원장 죽여라”하며 데모로 맞서는 바람에 나 또한 일단 은행연합회에 마련된 금감위원장 방으로 한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이용득 위원장에게 그리로 와줄 것을 요청했다. 그랬더니 밤 12시30분경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이 은행연합회로 찾아왔고 나 또한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나는 이용득 위원장을 향해 “이 위원장, 우리 이름도 비슷하고 피차 통하는 것도 많은 사이인데 이쯤해서 원만하게 마무리 합시다”했더니 이용득 위원장 역시 “예 알았습니다. 아무튼 잘 도와주십시오”하고 화답했다. 이에 나는 “알았습니다. 금융감독위원장 직을 걸고 내가 할 수 있는 약속은 다 지킬테니 제발 이번 파업에선 전산망을 건드리지 말고 잘 수습해 달라”고 다시한번 당부했다.
 
그러나 11일 새벽 4시40분 금융노조측은 해산은커녕 되레 파업을 선포하고 신촌 연세대쪽으로 자리를 옮겨 실질적인 대외 투쟁에 돌입하는 바람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다시 11일 낮 1시에 명동성당으로 이용득 위원장을 불러 독대를 청했고 이 자리에서 “어제 밤에도 얘기 했듯이 이쯤해서 끝냅시다. 나 또한 현대구조조정 문제로 바빠 시간이 없습니다”하고 말했고 이용득 위원장 또한 “어느정도 시간이 필요합니다”하며 3시간이나 되는 독대 끝에 오후 4시10분경 다시 정회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두시간 뒤인 오후 6시에 다시 은행회관 14층에서 만나기로 했다.
 
은행회관에서 다시 만난 우리는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갔다. 이용득 위원장은 “오늘 신촌쪽에 비가와서 연세대에 갔던 노조원들이 모두 비를 맞고 큰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3년간 공적자금 투입은행들에 대해 인적구조조정을 막아주십시요”하고 또다시 똑같은 요구를 해 왔다. 이에 나는 “공적자금은행 구조조정 문제는 경영진이 책임지고 하는 것이지 정부가 간여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전액 예금전액보호 문제 또한 절대 연장이 안되니 그건 그리 아십시오. 그리고 파업을 계속할 경우 전산시설에 대리급 직원들을 투입해 보호에 나설 밖에 없습니다”라며 우리측 입장을 전달했다. 최후 통첩이었다.
 
그러면서도 이용득 위원장과 나는 원만한 대화를 이어갔고 오후 7시 드디어 전격적인 합의를 도출할 수 있었다. 이에 우리 둘은 손을 잡고 은행회관 협상장 밖으로 나와 바로 옆 기자실에 들러 노정 협상 타결을 공식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노조측은 “관치에 따른 부실은 정부가 책임질 것, 3년간 인적구조조정은 하지 말 것, 그리고 예금 전액보호기간을 연장해줄 것”등 많은 것을 요구해 왔음에도 나와 이용득 위원장은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대타협을 이뤄낼 수 있었다.
 
아울러 이번 노조파업과 관련해 금융감독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해결하라는 주변의 조언이 있었고 나 또한 몸을 던져 타협을 시도한 것이 큰 결실로 이어졌다고 생각하니 그간의 고생이 한꺼번에 해소되는 것 같았다.
 
물론 노사정 위원중 한 몰지각한 인사가 우리의 협상 타결과 관련해 “이면협상이 있었던 것 아니냐”며 엉터리 억측을 펴기도 했지만 내가 “대통령께 보고할 사항을 갖고 무슨 수로 이면합의를 하나, 그리고 이면 합의를 한들 노사정위원회에 보고되지 못할 내용들이 무슨 효력이 있는가”하는 항변을 하는 통에 그의 코도 납작해질 수 밖에 없었다. 참으로 한심한 사람이었다.
 
금융총파업이 나와 이용득 한국노총위원장간의 대 타협으로 마무리 되자 다음날인 7월12일8시55분 대통령께서는 “내 취임이후 정말 기쁜 일이다. 앞으로도 모든 일을 독자적으로 알아서 잘 해달라”며 내게 큰 격려를 해 주었고 청와대 비서실 인사도 “어르신(대통령)께서 굉장히 좋아하신다”며 청와대측의 밝은 분위기를 전달해 주었다. 아주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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