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 '명월이'에게 벌어진 일, 어쩌다 한 번 있던 일이 아니다

[초이스경제 장경순 기자] 미국의 3대 테이크아웃 피자체인 가운데 하나인 파파존스를 창업한 사람은 존 슈내터다. 그는 2017년까지 이 회사의 최대주주일 뿐만 아니라 회장으로 경영을 하고 있었다.

현재 그는 회장도 아니고 최대주주도 아니다. 지난해에는 이사회 의장직도 그만뒀다.

슈내터는 지난 27일 지역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몰아낸 이사회를 비난했다. 그는 "내가 보살피고, 내가 사랑했고, 내가 백만장자로 만들어준 사람들이 나한테 그럴 줄 몰랐다"고 말했다. 자신이 쫓겨나는 일은 외부로부터 벌어지지 내부에서 일어날 줄은 몰랐다는 말도 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면, 굴지의 회사를 창업했다가 갑자기 남에게 회사를 뺏긴 사람의 아픈 심정이 절절히 느껴진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그가 회장직과 이사회의장직에서 사임한 것은 사실상 이사회 등의 요구에 의한 것이지만, 최대주주 지위를 상실할 정도로 지분을 매각한 것은 경영에서 손을 뗀 후 스스로 한 일이다.

슈내터는 파파존스 피자 맛이 자신이 있을 때만 못하다며 회사직원들은 자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연 그의 말대로일까.

그가 본격적으로 구설에 오른 것은 미국 프로미식축구 NFL가 선수들의 국민의례 거부에 너무 관대하다고 비난한 때부터다. 일부 NFL 선수들은 경찰의 인종차별적 폭력에 항의해 미국국가 연주 때 한쪽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보여줬다. NFL 공식후원사였던 파파존스의 실적부진이 NFL에도 원인이 있다고 탓을 한 건데 이것이 인종차별적인 논란을 가져왔다.

이 때만 해도 그는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몇 달 후 더 큰 일이 벌어졌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가 적절한 발언을 하도록 훈련하는 프로그램에서 슈내터는 흑인에 대한 비속어를 입에 담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고향인 인디애나에서는 흑인들을 죽을 때까지 트럭에 끌고 다녔다는 발언도 했다. 과거의 인종차별에 대한 혐오감을 나타내기 위한 발언이었는지는 몰라도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담당자들은 섬뜩함을 느꼈던 모양이다. 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회사는 파파존스와의 계약을 즉시 취소했다. 거기다 문제가 된 발언이 언론에 공개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일이 알려지고 나면, 피자는 같은 피자라도 먹는 사람이 느끼는 맛이 같을 수가 없다. 소비자들은 이 회사 피자를 볼 때마다 끔찍한 인간 살상 행위를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맛 좋게 먹어야 할 음식에서 살기를 느끼게 된다.

이것이 파파존스의 경영악화로 이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이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통령선거 과정에서부터 열렬한 지지의사를 공개했던 그다. 상당수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건전한 인종관념을 갖고 있느냐는 의심을 받고 있는 마당에 슈내터는 그 의심을 확인하는 언행을 보이고 말았다.

슈내터가 만약에라도 최대주주나 경영진으로 복귀할 경우 올해 급격히 매장을 줄이고 있는 파파존스가 그동안 인종차별 기업의 흔적을 지우려 했던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될 것이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일본의 한국에 대한 맥주 수출이 제로를 기록했다고 일본 교도통신이 28일 보도했다. 이 보도 후 "아주 완전히 0은 아니다"는 사족 같은 기사가 이어졌다.

한 때 유니클로가 공짜내복을 내걸어 한국 소비자들을 유혹했더니 등등한 불매운동 기사는 어디가고 길게 줄을 늘어섰다는 조롱 성격의 기사가 돌아다녔다. 그러나 이 또한 실상을 알고 보면 내복 덕택에 장사를 그렇게 잘한 건 아니라는 얘기가 이어졌다.

불매운동 전쟁을 벌이고 있는 국가사이에서 상대방이 궁리 끝에 출혈정책을 선택해 공짜물건을 내놓으면 이걸 받아 챙기는 것을 나쁘게만 보기보다 중간의 작은 승리로 여기면서 '득템'을 할 수도 있다. 전쟁 중에 사신이 오갈 때 선물을 챙겨가지고 간 역사적 사실도 있다.

아무튼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초기부터 과거 사례와는 지속성과 자발성에서 전혀 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 평가가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예전 불매운동의 계기는 일부 일본 위정자들의 망언이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 교과서 왜곡 등 단발성 도발에서 비롯됐다.

지금의 불매운동은 일본의 도발이 일회성이 아니라 속내에 여전한 침략적 '살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한국인들의 방어의식에서 지속력을 얻고 있다.

50년 강제침략(1895년 을미사변, 즉 명성황후 시해 사건 후 한국은 사실상 일본의 군사적 침략시기에 들어갔다)의 여파가 너무나 강해 일제강점기의 죄상들은 1945년 해방 후에도 몇 십 년 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종군위안부 범죄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 공개적으로 거론된 것이 1990년대 들어서다.

이런 현상은 침략자들의 잘못도 문제지만, 저들의 죄상을 남김없이 파헤쳐야 할 한국인들의 게으름이나 사명을 저버린 때문이기도 하다.

한 예로, 기생 '명월이'는 소설에나 전해 내려오는 이름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명월이는 실제 인물이다. 1915년 무렵 '복상사'를 조사한다는 일제경찰의 취조를 받다가 사망했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 때 일제 당국에 의해 명월이 신체의 소중한 부분이 절개됐는데 그것이 2010년까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관돼 있었다는 것이다. 이 때에 이르러서야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고 천도제를 치르는 가운데 명월이의 영면하는 의식이 이뤄졌다.

일제침략 범죄에 대해서는 무수한 일들이 이런 식이다. 파헤쳐서 과거를 정리했어야 할 일들이 무슨 이유에선지 때를 놓치고 파묻혀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외교정상화라고 해서 청구권협상이 이뤄졌고 일본은 이걸 근거로 더 이상 책임이 없다고 버티고 있다.

사람의 신체를 저렇게 훼손하는 것은 우리 전통의 관념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인데 일본제국주의는 거리낌 없이 저런 짓을 했다. 이 사건을 일회성 사건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이런 범죄는 명월이의 죽음 20년 전에 이미 한 번 벌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현장에서다. 그 또한 지금도 여전히 아는 사람만 안다.

일본의 한국강점은 전쟁 한 번도 없이 이뤄진 것이다 해서 합법적이라고 강변하는 뻔뻔한 자들이 있다.

그러나 일제의 한국강점은 인류사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잔인무도한 전쟁으로 시작됐다. 오늘날 역사에서 을미사변으로 불리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이다.

그날 이 나라 정부의 핵심부인 왕궁이 일제 침략군과 낭인들에 의해 무참하게 유린됐다. 전 세계 그 어떤 나라의 전쟁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국의 왕후가 적군에게 포로로 잡힌 끝에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때 정황을 전하는 몇몇 기록은 차마 누구에게 전하기조차 꺼려질 정도로 아주 끔찍하다. 한 나라 국모가 겪은 일은 앞으로 이 땅의 여성들이 겪을 일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침략했던 자들이 "잊고 살자"고 강변하지만, 과거의 참상들이 뒤늦게 공개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본의 당국자들은 100년 전의 '살기'를 되살리는 행동을 지속한다.

한국인들이 어떻게 일본맥주의 맛을 예전과 똑같이 느낄 수 있을까. 맥주뿐만 아니다. 일본의 멋진 자연관광지도 이런 곳에서 자란 인간은 과연 어떤 자들이 됐는지 자꾸 생각이 들게 만든다.

자기가 무슨 살기 넘치는 언행 하든 소비자들은 자기가 만든 예전의 피자 맛만 기억할 것이라고 강변하는 슈내터와 일본 당국자들의 모습이 다를 바 없다. 불매운동은 이래서 더 깊게 정착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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