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남자의 하나로서 김태희가 좋은 이유는 물론 한 두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그걸 다 일일이 기사로 쓸 수는 없다. 대부분이 감성적인 이유이기 때문이다.

 
이성(理性)적 이유로 김태희가 좋아질 때 기사를 쓸 수 있다. 이는 이성과 감성의 입장이 일치하는 매우 만족스런 경우다.
 
요즘 TV를 켜놓고 다른 일을 하다가 귀가 번쩍 뜨이는 카피가 하나 있다.
 
 
“프렌치까페 까페믹스~”
 
모 회사 커피 제품에 모델로 등장한 김태희가 경쾌한 박자로 외치는 소리다. 카피가 귀를 끌다보니 자연히 다음번에는 이를 전후한 대사까지 자세히 듣게 된다.
 
여기서 김태희는 ‘커피’와 ‘까페’를 정확한 ‘ㅍ’으로 발음하고 있다. 어디서 적당히 외국물 먹은 사람들이 우리말 중간에도 영어의 ‘f’발음을 섞어 쓰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바로 이 점이 글 쓰는 직업가진 내가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이렇게 발음했다면 영어를 모르느니 하는 생트집이 나왔겠지만 김태희라면 연예인 중에서 특히 배울 만큼 배운 사람. 잘난 척 좋아하는 사람들이 끼어들 여지도 없다.
 
그의 ‘커피’ 발음이 반가운 이유는 커피가 이제 우리말로 완전 동화됐다는 의미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도 굳이 커피는 ‘f’발음을 써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게 어떤 사람들한테는 세련돼 보일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들과 아주 딱 닮은 사람들이 있다. 오늘날에도 ‘공부’를 굳이 ‘工夫’라고 쓰는 사람들과 본질적으로 하등 다를 바 없다.
 
이들은 우리말의 포용력을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식으로 문물 변화에 대한 적응력과 포용력이 없는 언어는 시간이 갈수록 다른 나라말에 설 자리를 뺏길 수밖에 없다. (공부의 한자가 국어사전에 등록돼 있기는 하지만, 지금의 우리말에서 공부를 한자어로 여기는 사람은 0.1%도 되지 않을 것이다.)
 
9일이면 한글 창제 569돌이다. 한글 창제의 본질적 의미는 세종대왕이나 몇몇 사람의 천재성에 있는 것이 아니다. 1443년의 한국 사회가 이제 평범한 시민도 모두 문화 형성의 주체로 참여해야 되는 단계로 진보했다는 배경에서 이 위대한 문화유산이 만들어졌다.
 
모든 진보에는 수구세력의 역겨운 반발이 뒤따른다. 한글 창제에도 마찬가지였다. 한글에 반대한 자들은 여전히 문명이 자신들 소수 특권층만의 전유물이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렇게 한심한 사람들은 놀랍게도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한글을 살아서 끊임없이 변화해가는 강한 생명력의 언어가 아니라 박물관 속의 죽은 언어로 만드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우리말과 한글의 놀라운 장점을 상스러운 것으로 몰아세운다. 된소리와 의성어, 의태어 활용을 못 배운 사람들의 말버릇이라고 매도한다.
 
한동안 뉴스에서 듣기에도 한심한 ‘자장면’ 소리를 들어야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말의 된소리는 이 세상 언어 중에서 가장 생동감 넘치게 인간의 감정과 자연 현상을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나는 믿는다.
 
언어는 상고시대 도로가 생겨난 것과 마찬가지로 발달해 왔다. 앞선 수레바퀴 자국이 남은 곳은 길이 이어진 곳이니 다른 수레들도 그 자국을 따라갔다. 가늘던 바퀴 자국은 땅을 평평하게 해서 마침내 넓은 길이 형성됐다.
 
언어의 발달과 변화는 그래야만 할 필요성에 따라서 이루어졌다. 이것에 거역하는 언어는 생명력을 잃고 말았다. 깊지도 않은 지식으로 우리말이 힘차게 미래의 언어로 뻗어가는 것을 함부로 폄하하는 소리는 이제 그만 들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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