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도 유언비어 활개...이는 정부가 제대로된 정보 제공 않기 때문

 고려 희종 때 개경 시내에 괴소문이 돌았다.

당대의 실력자 최충헌이 대궐만한 집을 지으면서 남자아이 5명과 여자아이 5명에게 오색 옷을 입혀 집터의 네 귀퉁이에 묻는다는 것이었다. 이 소문을 틈타서 최충헌 측근 행세를 하며 어린 애를 유괴해 부모에게 돈을 뜯어내는 사건도 속출했다. 아이를 가진 부모 중에는 무서워서 먼 곳으로 도망가는 사람도 있었다.
 

최충헌은 무인정권의 마지막을 장식한 인물이다. 그는 앞선 정중부 이의민 등과는 달리 문신도 우대하면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국정을 관리했다. 최씨 정권이 60년이나 이어간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친동생 최충수가 권력을 앞세워 자기 딸을 강제로 태자비로 들이려던 것도 막았던 최충헌이 이와 같이 터무니없이 무도한 짓을 저질렀을리는 만무하다. 말 그대로 근거없는 유언비어였던 것이다.
 
하지만 소문의 확산이 너무나 심각해 최충헌은 시내에 일종의 담화문을 붙여야만 했다.
 
‘사람의 목숨이 가장 귀중한 것인데 어찌 생매장하여 재앙을 물리치려 하겠는가. 만약 어린아이를 잡아가는 자가 있거든 관아에 고발토록 하라’며 민심을 달래야만 했다. 이후에 어린아이 유괴사건은 줄어들었다고 한다.
 
최충헌이 국정 관리를 열심히 했다는 것은 앞선 무인 정권에 비교해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결과적으로 그는 고려의 마지막 활력을 잡아먹은 쿠데타 통치자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 드라마 '무신'에 등장했던 최충헌의 모습. /사진=MBC 화면 캡쳐
왕을 허수아비로 삼아 자신들의 영달만 추구한 그들은 끝내는 강화도에 자기들만의 도피처를 만들어 놓고 30년동안 나라 전체가 몽고군에게 짓밟히는 참극을 방치했다. 권력도 통치 의지도 상실했지만 지위만큼은 집착했던 고려 왕들은 무인들을 쫓아내기 위해 마침내 원나라 세력에 의지하는 파행적 선택을 내렸다.
 
최충헌이 신하의 본분을 벗어난 큰 집을 짓던 시점에 이미 고려의 국가 시스템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최씨 패밀리만을 위한 씨족국가 시스템이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민중들의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니 유언비어가 마구잡이로 확산되는 최고의 토양이 마련됐다.
 
유언비어라는 말을 뉴스에서 무척 많이 들은 것은 내가 중학교 3학년때다. 1980년 서울의 봄이 무너지고 전두환 정권이 들어섰을 때다. 그들은 광주항쟁도 “유언비어 때문에 벌어졌다”고 강변했다. 그후 언론 통폐합이란 이름으로 수많은 언론인들이 해직되고 투옥됐다.
 
전두환 정권의 ‘괴벨스’라고 불리는 허문도는 1988년 국회 청문회에 불려나가 여전히 언론통폐합이 잘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내세운 근거는 1986년의 한 소문이다. 팀 스피리트 훈련에 참가한 미군 병사가 여교사를 겁탈했다는 소문이 무성해서 조사해 봤는데 전혀 근거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으로 언론통폐합을 두둔할 수는 없는 것이다. 1986년이면 이미 5공의 언론체제가 가동되던 중이다. 당시 주요 매체에서 소문의 사건을 언급한 것을 본적이 없다. 지하 언론이나 대자보에만 자주 등장했을 뿐이다. 5공 정권의 입맛대로 언론을 장악했어도 소문은 소문대로 퍼져나갔던 것이다.
 
근거없는 소문이 퍼져나가는 것은 국민들이 여론 구조에 대한 신뢰를 상실했을 때 뿐이다.
 
유언비어도 나름의 생태계가 있다. 어느 사회나 매 순간 수도 없는 유언비어가 쏟아져 나온다. 선진국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하나의 소문이 태어나도 유언비어급으로 성장하기는 쉽지않다. 굳이 궁금한 일은 뉴스를 사서 보거나 검색해서 다 해결되는 사회라면 그렇다. 소문의 자양분이 부족하니 제대로 ‘성장’도 못하다가 새로 태어난 다른 소문에게 잡아먹힌다.
 
그런데 여론 구조에 이상이 생기면 소문이 크게 성장할만한 영양분이 넘쳐나게 된다. 유언비어는 이런 때 탄생의 기회를 잡게 된다.
 
예전에는 군사 독재자들이 여론을 통제해서 언론이 굴절됐었다. 지금도 언론자유에 관한 시비는 끊이지 않지만 새롭게 부각되는 것이 기자들과 출입처의 유착이다.
 
취재영역에 대한 감시의 의지가 약화된 기자에게 언론소비자인 시민들은 금새 불만을 갖게 된다. 쏟아지는 뉴스에 신뢰를 상실한 독자들은 믿을만한 다른 대안을 찾는다. 이때 책임감을 가진 언론인이 나서서 대안을 마련해 주지 못한다면 독자들의 선택은 유언비어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요즘들어 유언비어를 틀어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은 과연 이 문제의 원인 제공자는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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